대한간호협회가 1953년 6월 26일 발간한 잡지 `대한간호(속간1호)'에 실린 글을 발췌해 시리즈로 게재합니다. 원문(국·한문 혼용)을 서지학자가 한글화한 버전으로 게재하며, 간호사 명칭은 당시 불렀던 그대로 간호원으로 싣습니다.
*아래의 글은 당시 대한간호협회 홍옥순 제2부회장이 `우리의 당면한 문제'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요약한 것이며, 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간호사업 발전과 진보의 길 열기 위해
국가적으로 간호대학 설치를 요구한다
[대학문제] 때는 바뀐다. 어제와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우리의 아는 것이 많아도 못하거니와 세계는 날로 나아가고 달로 바뀌는 것이 한 초 한 초를 다투어 이십세기 전반에 비교한 오늘의 속도는 일 년에도 몇 십 년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으니 우리는 그저 머무를 수 없고 배워야만 산다.
우리의 간호사업은 유약을 보호하며 질병을 예하고 또 간호함으로 행복을 가져오고자 함이니 이를 실천하기 위한 질적 향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간호대학 문제를 중요하게 본다.
간호부 양성소로부터 고등간호학교에 이르기까지 입학자격과 교육내용을 올려 일반의 새로운 인식을 꾀하면서 보다 나은 간호를 이바지하려는 우리 교육기관의 노력은 꾸준하였다. 그러나 지도자의 부족과 사회적 모든 조건을 갖추지 못했음은 교수 간호원과 간호연구기관에 긴급한 국내의 처리를 하지 못한 채 해방 후 5개년을 보냈다.
배움의 부르짖음이 한 정도에 이르러 우리사회 여성 교육에 최고관인 이화대학 안에 우리 선배 이정애 선생의 큰 노력이 간호과 설치를 보게 되매 전국 내 각 사회 인사를 비롯한 우리 간호원들의 기쁨은 최고에 달했었고 새로운 자랑과 만족을 품었던 일 어제와 같다.
뜻밖에 6.25 동란이 원인으로 우리 간호대학은 문이 닫아졌거니와 그렇다면 왜 다른 대학은 다 텐트 토막집에서도 계속해서 힘차게 나아가는데 우리의 앞길만은 캄캄해졌나? 배우려는 학생이 적어서인가? 가르칠 선생이 부족해서인가? 학교집이 없어서인가? 간호대학의 필요가 약해져서인가? 학교당국으로서? 사회적으로? 경영곤란으로? 등등 심심한 연구와 조사를 해보아도 분함과 원망만이 생각을 막는다.
금년에 들어서 세브란스 간호학교는 고등학교 졸업생에 한해서 입학을 허락했다. 물론 대학수준이다. 머지않아 뚜렷하게 간호대학으로 인정받고 더욱 연구과를 두어 다른 일반 간호학교를 나올 자격 간호원들에게 또한 나아갈 기회를 열어주기 바란다.
경제 어학 기타 문제들로 외국유학이 어려운 이때 희망이 있고 유능한 우리 간호원과 학생들에게 국내에서 배울 수 있고 동시에 사회에 인식을 높일 수 있는 길이란 무엇보다도 긴급을 요하는 과제의 하나이다. 배움은 실천을 위함이요 경험 역시 배움을 위함이나 우리는 보다 더 기초와 사회와의 관련 그리고 후배를 기르기 위한 지도자의 양성 그리고 사업의 발전과 진보의 앞길을 열기 위해서 국가적으로 간호대학의 설치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