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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간호문학상 - 수기 가작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9-12-24 오전 08:39:21

후회가 남지 않도록

박정하(삼성서울병원)

 

어느 날,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한 친구가 말했다.

- 나는 이제 간호사가 아닌 너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

 

나도 내 자신이 다른 직업을 가진 모습을 상상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내심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순간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며 탈(脫) 임상을 꿈꾸었던 고난과 역경의 신규시절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일은 어느 정도 손에 익었으나 끝없는 감정노동으로 피폐해져가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서, 조그마한 일에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찌할 줄 몰라 눈물부터 차올랐던 수많은 날들도 떠올랐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치열한 임상의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 그러게. 어쩌다보니 그 모든 시간을 견뎌내버렸네. 다 돈 때문이지 뭐!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끝이 없기에 실없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이래저래 속이 곪고 나아지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마음에 굳은살이 생겼고 버텨낸다는 말이 더욱 익숙해져버린 나의 직업, 또 다른 나의 이름 ‘간호사’.

 

그 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는데, 어릴 때부터 간호사를 꿈꿔온 기억이 전혀 없었다. 고3의 어느 날, 어쩌다보니 성적에 맞춰서 간호학과에 지원하게 되었고 입학도 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그 뿐이었다. 언제나 나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했던 삶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뜻밖의 사명감을 요구하는 전공을 택하게 되어 심히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신입생 시절, 간호학개론 책을 들고 캠퍼스를 누비고 다닐 때는 ‘이 정도면 나도 간호학에 소질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라는 거만한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으나 2학년 간호학 전공수업을 수강하면서 어마어마한 좌절감을 맛보았고 전공 책을 바라보기만 해도 두통이 생기고 한숨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올 지경이었다.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았으며 3, 4학년 때는 병동 실습도 나간다는데 나는 등록금만 축내고 있는 게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덕분에 합리적으로 공부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많은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 중 ‘징검다리’라는 이름의 친목 겸 봉사동아리도 있었다. 매주 토요일, 소아암 병동에 방문하여 환아들의 일일 친구가 되어주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봉사활동이었다.

보통 봉사동아리에는 저마다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진심으로 봉사하기 위해 가입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으나 인맥 교류를 목적으로 동아리 뒤풀이에만 얼굴을 비추는 부류나 단순히 봉사시간이나 취업 시에 봉사동아리 경력을 한 줄 추가하고 싶어 가입한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징검다리’는 다른 동아리에 비해 순수한 목적의 봉사동아리였다. 당시, 동아리 회장단이 직접 발로 뛰어 병동 출입허가를 받기는 하였으나 봉사시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모두가 자발적으로 봉사에 참여했고 별도의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덕분에 시간이 지나서 봉사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동아리가 더욱 번창하기를 바랐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 환아들을 만나러갔다. 환아들은 치료과정에서 대체적으로 면역력이 저하되어 보호격리를 시행하고 있었고 대개 혈액암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때문에 병실에 들어가 환아들을 면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꼼꼼히 소독을 시행해야했다. 헤어 캡과 마스크 사이 작은 공간으로 오가는 눈빛, 그리고 다정한 말과 마음을 나누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함께 여러 가지 게임도 하고 종이접기, 책읽기, 산책 등의 취미도 공유하였으며 병원학교 수업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다보니 자연스레 환아들도 우리를 언니, 오빠라고 부르며 따르게 되었다.

그 중 유난히 재원기간이 길었던 백혈병 환아 ‘A’가 있었다. 당시 나의 짧은 간호지식으로 아이의 상태를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반복적으로 상태가 악화되어 만날 수 없는 날도 많았던 기억이 난다. A는 당시 나보다 6살가량 어렸던 내 친동생의 또래였다. 나이에 비해 왜소한 체구로 인해 마치 어린아이 같아 보여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던 첫 만남 이후, 나는 A와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A는 항상 하얀 마스크를 쓰고 수줍게 눈웃음을 지었고 병실에 들어서면 다정하게 우리의 이름을 불렀다. 위로 언니가 하나 있는데 학교를 가야해서 자주 놀러오지 못해서 무척 심심했다고 했다. A는 토요일마다 언니, 오빠가 생겨서 정말 기쁘다고 했다. 주중에는 모든 시간이 지루하고 길게 느껴지는데 토요일만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며 귀여운 투정을 늘어놓기도 했다.

하루는 병원 면회시간에 깜짝 방문을 한 적이 있었다. A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에 다른 아이들 몰래 작은 선물을 이것저것 옷 속에 숨기고 들어가서는 커튼 뒤에서 잔뜩 늘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A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들킬 새라 입을 막으며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분명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는데, 이내 A가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할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는 빈손으로 와도 괜찮아.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혹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A가 ‘치킨이 너무 먹고 싶다’는 말을 하기에 ‘다음에 치킨 사올까?’ 하고 되물은 적이 있었는데 A는 잠시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이번엔 이렇게 답했다.

- (병실의) 다른 친구들은 못 먹는데 나 혼자 먹을 수는 없지.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못 먹으면 다들 엄청 힘들어할 거야. 엄마도 내 몸에 안 좋을까봐 그러는 거 다 알아. 난 괜찮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A는 그런 아이였다. 생각이 짧았던 나의 말과 행동을 부끄럽게 하는, 의젓하고 사려 깊은 아이.

 

A와 함께한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 A의 같은 학교 친구들이 롤링 페이퍼에 응원의 메시지를 잔뜩 적어 보낸 날이었다. A의 친구들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의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졸업앨범을 촬영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A는 편지를 한참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이내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A를 처음 만난 계절이 봄이었는데 그 뒤로 계절이 여러 차례 바뀐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마주 앉아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A는 나와 눈을 맞추며 까르르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애써 무거운 침묵을 걷어내었다. 친구들과 다른 자신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A는 그 시기를 참 잘 견뎌내주었다. A가 대견하게 느껴지면서도 가장 마음이 아팠던 날이었다.

 

교양수업의 비중이 많아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1학년과는 달리 학년이 올라가자 점차 전공과목의 비중이 늘어 봉사에 나갈 수 있는 시간과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즈음 종종 안부를 묻던 A의 연락도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서로의 일상에 집중하게 된 시기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학과생활을 하던 어느 날 함께 봉사를 다니던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한 환아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고 했다. 수줍음이 많았고 형들과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낯을 가리다가도 어느 순간 친근하게 다가와 누나라고 부르며 따르던 아이였는데, 이제 영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난생 처음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차려입고 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다녀온 뒤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동아리 사람들과 뒤풀이를 가졌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와중에 갑자기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A도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내면 어떡하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먼저 떠난 아이를 추모를 하는 와중에도 스스로 겁을 집어먹은 나의 마음에 집중한 것이다. 부리나케 A에게 안부를 물었고 바로 답장이 왔다. ‘언니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이번 주에는 오는 거지?’ 나는 A가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음에 안심했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A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종종 시를 쓰기도 했고 우리에게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그런 A를 생각하며 책을 골라서 예쁜 리본이 달린 상자에 담았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였다. 마치 A가 나의 도둑맞은 시간을 되찾아준 ‘모모’ 같아서 자연스레 손이 갔다. 그리고 어느 무더운 날, 오랜만에 A를 만나 책을 전해주었다. A는 품 안에 책을 꼭 안고 웃으며 말했다.

- 언니! 나 이거 정말 읽고 싶던 책이었는데, 정말 고마워!

한결같이 나를 반겨주는 A에게 또다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날은 어찌된 일인지 A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어서 짧게 인사도 나누었다. A의 어머니는 항상 잘 챙겨주어 고맙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는데 언뜻 어두운 표정이 스쳐갔으나 별일 아니겠거니 넘겼던 기억이 난다. 나는 A에게 여름방학이 끝나면 학기 초라 바쁠 테고 봉사활동을 자주 못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A가 갑자기 내게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하나 하자고 했다.

- 공부 열심히 해야 간호사 선생님이 되는 거지? 언니는 정말 좋은 간호사가 될 거야. 바빠서 못 오는 건 이해하니까, 나랑 계속 친구하자. 약속해.

그리고 그것이 내가 본 A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시험과 실습의 지옥에서 헤매던 어느 날, 동아리 선배의 연락을 받았다.

사실 A가 그동안 많이 힘들어했는데 이번에는 고비를 넘기지 못 했다고. 얼마 전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했다. 내가 다른 병원으로 실습을 다닐 동안 선배는 A가 있는 소아암병동으로 실습을 나갔고 모두를 대신해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고 했다. A의 부모님이 동아리에 알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고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함께 봉사활동을 다녔던 동기는 사실 A의 소식을 먼저 전해들었으나 내가 충격이 클까봐 미리 알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나는 강의실 앞 복도에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렸다. 그동안 이런저런 게으름과 핑계로 미뤄두었던 A와의 만남이 생각났다. 분명 1주일 전에 보고 싶다는 문자가 와서 전화통화도 했었는데, A가 힘들어보여서 치료 잘 받고 곧 만나자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던 기억도 스쳐갔다. 그 인사가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조금만 더 다정할 걸, 토닥여줄 걸, 의젓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좀 더 귀 기울여 볼 걸. 돌이켜 생각할수록 끝없는 후회만 남을 뿐이었다.

 

어김없이 계절이 바뀔 때면 A가 생각난다. 벚꽃이 휘날리는 예쁜 꽃 아래 혹은 낙엽이 지는 길 사이를 함께 걸어보고 싶었는데, 우리의 시간은 병원 안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은 까닭이다.

 

가끔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고 지치면 모든 것을 놓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때마다 A와의 시간을 떠올린다. A는 나에게 ‘좋은’ 간호사가 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고, 나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곤 했다는 것을. 물론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고 힘들고 지치는 상황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A를 떠올리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금세 가라앉곤 한다.

 

수 년 째 현실의 ‘나’와 이상 속의 ‘좋은 간호사로서의 나’ 사이에서 좁혀보고자 노력 중이지만 쉽지가 않다. 그저 한 사람이라도 나를 필요로 하고 믿어준다면 참 좋겠다는 마음으로, 내 몫으로 주어진 일에 매일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헤어짐이 있더라도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나 후회가 남지 않았으면 하고 매일 바라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A와의 약속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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