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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간호문학상 - 수필 가작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8-12-19 오전 09:12:26

죽음의 체험 앞에서

오주훈 (서울시)

 

솔직히 말하자. 병원은 근무하기에 썩 유쾌한 곳이 아니다. 그 불유쾌함은 일단 감각적인 차원에서 기인한다. 시큼한 소독약 냄새. 괄약근에 힘을 잃은 환자들이 침상에 지린 배변 냄새. 24시간 끊이지 않는 신음 소리. 환청까지 만들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각종 기계 알람. 아무리 창을 열어도 결코 흡족하지 못한, 어딘지 병들어 보이는 햇살. 매일 청소를 해도 지워지지 않는 구석구석의 붉은 핏자국들. 소위 나이팅게일 정신으로 아무리 무장을 해도 이 모든 불쾌한 감각의 쇄도를 막을 순 없다.

 

병원 근무의 어려움은 감각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간호 업무는 일차적으로 ‘몸의 사용’을 요구한다. ‘감각’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몸의 사용’은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환자 체위를 변경할 때는 허리의 큰 근육을 사용한다. 주사를 놓을 때는 손가락의 미세한 근육을 긴장시킨다. 병동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때는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만일 간호사의 이러한 동작들에 문제가 생기면, 작게는 업무 지연에서 크게는 의료 사고까지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긴장을 할 수밖에 없고 퇴근 후에는 녹초가 된다.

그런데 병원 근무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이러한 불쾌한 감각이나 육체적 혹사에 있지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정신적 차원에서 기인한다. 혹자는 이 대목에서 간호사들 특유의 ‘태움 문화’를 떠올릴 것이다. 이제는 일반인들 사이에도 꽤 알려져서 부정하기 힘든 현실. 그 배경에는 간호 업무 특유의 성격이 놓여 있다. 약물 용량의 사소한 계산 실수. 활력 징후 측정의 일시적인 누락. 비정상적 증상에 대한 잠깐의 오인. 생각지도 못한 착오들로 인해 중대한 의료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에 간호사는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 서로 간의 감시와 지적에 날이 설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소위 ‘태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간호사의 태움 문화는 상당 부분 교정 가능한 면이 있다. 인력의 충원, 병원 시스템의 개선, 사회 구조적 접근 등등은 이미 각종 언론에서 수도 없이 거론되어 왔다.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일정 부분 법제화 등을 통해 실천으로 옮겨지고 있기도 하다.

 

정작 간호사가 감당해야 할 정신적 ‘혹사’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제아무리 열심히 간호를 해도, 제아무리 최신의 의료 기술이 동원되어도, 제아무리 환자의 현재 상태가 양호하더라도, 간호사는 환자의 죽음을 결국 목격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고, 현대인 대부분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물론 근무지나 상황에 따라 환자의 죽음을 직접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일반인보다 죽음을 더 선연하게 인식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아니, ‘인식’이라는 단어는 좀 어감이 약하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소설 제목처럼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를 ‘체험’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간호사 대부분은 환자들의 죽음을 체험하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매일 나와 인사를 주고받던 그 환자분이 돌아가셨어.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도 언젠가는…그리고 나도 언젠가는…모든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시커멓고 막막한 섬뜩함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그저 불쾌한 감각정도가 아니다. 끔찍하고 냉혹하며 거대한 무언가의 엄습이다. 그때 우리 안에는 톨스토이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묘사한 당혹과 공포의 ‘왜’들이 맹렬히 솟구친다. ‘왜? 왜 돌아가셔야 하지? 왜 죽어야 하지? 왜 우리 가족이? 왜 내가? 왜 인간은?’

 

아마도 전쟁터의 병사를 제외하고 간호사(기타 의료진을 포함해)만큼 그토록 생생하게 죽음을 겪어내는 직업군도 없을 것이다. 물론 모든 간호학 교과서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퀴블러 로스의 유명한 ‘죽음의 5단계’ 이론에서부터, 죽음에 직면한 환자 간호의 방법들, 심지어 간호사 자신들의 정신건강 유지를 위한 조언까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이다. 시퍼렇게 변해버린 환자의 시신을 앞에 둔 채, 나 역시 언젠가는 저렇게 변해버리고 말 필연성을 받아들인 채, 그저 담담하게 ‘교과서처럼’ 반응하고 모범적으로 간호사의 직무를 수행할 사람은 없다. 현실 속 간호사들은 크든 작든 우울증에 빠진다. 모든 간호업무의 결과적 무용함, 모든 생의 결과적 허무함, 세상사의 근원적 무상함을 절감한다. 교과서 속 간호사에게는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이다.

매일 죽음을 체험하는 것 때문에 간호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의 수는 적지 않다. 상술한 사정을 안다면 당연히 비난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상한 일은 저 치명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왜일까? 환자들을 돌보는 것이 간호사의 당연한 사명이라서? 글쎄. 그런 관념적 이상과 현실 속 우리 사이에는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아마도 더 솔직한 답은 ‘그냥 반복되는 일상 때문에’라는 말에 가까울 것이다. 어쩌면 간호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는 분들은 이런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라는 표현에 내심 불쾌할지 모르겠다. 간호업무가 지닌 특유의 고귀한 면을 무시하는 처사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저 사소한 ‘일상’에는 사실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은 출근하자마자 환자들의 낯빛을 살피는 일이 있다. 무수한 수액 라인 사이로 때로는 힘없이 때로는 눈빛으로 간절히 간호사를 찾는 목소리에 응답도 해야 한다. 배식 때면 병동 전체를 휘어 감는 음식 냄새를 외면한 채 식사를 돕는 일도 있다. 주변을 바쁘게 오가는 동료들 사이에서 매 순간 끝없는 숙제들을 해야 한다. 혈압을 재고, 차팅을 하고, 오더를 받고, 약물을 주입하고, 다시 차팅을 하고, 여기로 뛰어가서 A할머니의 의식을 확인하고, 저기로 달려가서 B할아버지의 욕창 상태를 확인한다. 그 와중에 생기는 잠깐의 짬은 허겁지겁 우리들의 배를 채우고 화장실을 가는 일에 쓰인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과를 마치면 간호사 각자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과제들. 퇴근하자마자 각자의 가족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저녁거리. 집안 청소. 씻기. 자기. 일어나서 다시 씻기. 출근하기. 그리고 또 마주 대하는 환자들의 창백한 얼굴들. 흔히 굴레라고 칭하는 반복되는 일상.

매일매일의 일상 안에 포함된 소소한 것들. 그것들은 죽음의 체험 앞에 잠시 멍해진 우리를 움직이도록 떠민다. 결국은 죽을 운명에 처한 모든 우리를 다독인다. 그리고 말한다. ‘일단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라’고.

 

일상. 그것은 달리 표현한다면 삶이다. 생(生)이다. 우리가 병원 근무의 그 모든 감각적 불쾌함과 육체적 고단함과 부조리한 태움조차 감수하면서 구해내고자 하는 생. 환자들의 생. 간호사 자신들의 생. 끝날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결코 그 끈을 놓을 수 없는 생. 유한한 길이를 가졌기에, 결국은 지는 싸움인 것을 알지만, 포기할 수 없는 생. 간호사라는 직업에 어떤 숭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생을 움켜쥐기 위한 순간순간의 작은 분투(奮鬪)들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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