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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간호문학상 수필 당선작
매뉴얼에 정서적 프로세스가 있다면…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4-12-16 오후 13:53:34
채지선 (서울아산병원)


지현이가 불덩이다.

‘불덩이’. 이렇게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으로 발열증상을 설명한 적이 있었던가. 지금은 별다른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내 품에 불덩이처럼 뜨거운 지현이가 안겨 있고 내 마음속도 불덩이가 떨어진 듯 녹아내린다. 일이 많아서, 너무 피곤해서, 집에 늦게 들어와서, 이런 이유로 요 며칠 아이를 품에 안은 적이 언제였던가. 수 만 가지 생각들과 미안한 마음들이 뒤엉켜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다.

칭얼거리다 지쳐 주먹을 꼭 쥔 채로 잠든 모습이 내 가슴을 콕콕 찌른다. 겨우 8개월, 말 못 하는 아이의 고통이 고스란히 어미에게 전해진다. 속눈썹에 맺힌 눈물로, 가느다란 숨소리로, 꿈속에서도 아픈 듯 끊어질 듯 내뱉는 옹알이로! 잠든 지 30분 만에 아픔에 울면서 나에게 또 매달린다. 이렇게 작은 몸으로 39˚C까지 치솟는 열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잠든 지현이를 내려놓자 한껏 무거워진 눈꺼풀이 스르르 감긴다. 그렇게 한 발 물러나 좀 전의 내 모습을 바라보니 낯설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나는 지현이 엄마다. 그리고 간호사다. 지현이 엄마로는 이제 8개월 차, 간호사로서는 13년 차에 접어들었다.

열이 나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해열제를 먹이고 병원에 다녀오기까지 내 모든 세포는 온전히 지현이 엄마로만 움직일 뿐 또 다른 내 모습은 작동 불가 상태였다. 지현이를 만나기 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엄마가 되는 일,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잘 해내겠다는 의지가 충만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 또한 매뉴얼대로 프로세스를 따르면 될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이 한 몫 했다.

나도 모르게 체온 없는 ‘매뉴얼’이란 장치에 지나친 신뢰를 부여하게 된 걸까? 시간에 맞춰 수유하고, 기저귀 확인하고, 목욕시키고, 월별 발달 사항 체크하고, 시기 별로 예방접종 하고, 그렇게 육아 매뉴얼에 충실하면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병원에서의 일도 매뉴얼에 충실하게, 정해진 프로세스를 따라 정확하고 착오 없이 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8개월 차 초보엄마로 좌충우돌 부딪히면서 점점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매뉴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중요한 프로세스가 있다는 것을…. 활자로 달달 외운다고 외워지는 것도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행동할 수도 없고, 동일한 결과를 낳지도 않는다.

‘감정’이란 정서적 프로세스가 그것이다.

병원에 들어서면 감정은 잠시 떼어 놓아야 간호사가 된다고 생각했다. 감정이 있다는 것과 앞선다는 것의 온도차는 미미하지만 그 끝은 극명하게 달라 아예 떼어 놓지 않으면 매뉴얼대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이 나는 지현이를 안고 허둥지둥하는 내 모습이 그러했다. 안쓰러운 감정으로 흠뻑 젖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육아 매뉴얼에 따라, 시쳇말로 ‘스마트’하게 육아하겠다는 내 의지가 엄마라는 감정 앞에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무너져버리니 알았다. 내 아이를 낳아 보니 알게 됐다. 아픔이 무엇인지, 가족이 아프다는 것의 깊이가 무엇인지. 아이에게 엄마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환자에게 간호사라는 나의 존재가 어떨지 까지도….

매우 정확하고 전문적이라 할지언정 매뉴얼을 복사해 붙여 넣는 식의 단편적 간호가 환자에게 남기는 공허함과 냉랭함에 대해 곰곰이 반성해본다.

고열에 끙끙대는 지현이를 보며 느낀 뜨거운 감정을 매뉴얼에 더해 간호한다면, 환자에 대한 공감은 설명이 되고, 친절로, 미소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빛을 내뿜을 것이다.

엄마가 되니 비로소 알았다. 어느 대상에 대한 감정이 내 몸에 이입되면 그 대상에 대한 밀도가 촘촘해진다는 것을. 그래서 느껴지는 행복 또한 무한 확장된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이 순간도 아이의 옹알이에, 투레질에, 움직임 하나하나에 감동과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나는 엄마로 간호사로 성장통을 겪으며 한 뼘 더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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