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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 간호문학상 수필 당선작
고장난 녹음기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3-12-18 오전 09:30:12
- 이봉경(서울 포근한요양병원)


- 대변 치웠어? -

- 네, 어르신. -

- 음, 그래 시원하다. 아니, 그러니까 대변 치웠냐구? -

- 네, 어르신 치웠어요. 엄청 깨끗하게요.-


당뇨성괴사로 인해 움푹 들어간 어르신의 발을 소독하는 시간은 총 40분, 이 40분의 시간동안 어르신은 위의 질문을 정확히 140회 하신다. 이 계산은 바로 옆 침대에 누워계시는 이기현 어르신의 계산으로 팔십을 훌쩍 넘은 연세이지만 셈 하나만은 나와 조과장님을 앞선다.


- 네, 어르신. - 네 어르신 치웠어요. 엄청 깨끗하게요. -


소독세트를 펼쳐 조과장님이 처치를 하는 동안 그 옆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적시에 건네주며 위의 두 문장을 고장 난 녹음기 마냥 반복한다. 그런데 만약 이 과정에서 어르신의 질문에 단 한번이라도 대답을 놓치면 어르신은 이제 당신의 온 힘을 다해 두 다리를 흔들기 시작하고 이렇게 되면 상처소독이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병동의 참사로 이어진다.

이런 병동의 참사는 주로 환자파악이 덜 된 신규간호사에 의해 발생되는데, 바로 2개월 전에도 단 한 번의 사이클을 놓친 탓에 어르신의 발놀림이 극단으로 치달았고 이 끔찍한 상황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심지어 진정제투여라는 최후처방까지 내려진 바 있다.

결국 박태근어르신의 당뇨발 소독의 관건은 치매라는 질환으로 인한 어르신의 반복적인 질문에 단 한 사이클도 빠짐없이 대답을 해 드림으로써 40분의 소독시간을 견뎌 내는 것에 있다.

매일 오후시간을 이용해서 진행되는 이 소독처치가 끝나면 나는 한 컵의 물을 빛의 속도로 들이킨다. 사람이 말을 많이 하면 정말 물을 많이 먹게 된다는 생리적 현상이 이 순간만큼은 나에게 절대적 진리로 다가온다.


- 경희샘! 우리 시작 할까요? -


조과장님의 활기찬 목소리다. 짧은 컷의 귀여운 얼굴, 그 속에 있는 눈이며 코며 모든 부속품들도 하나같이 귀염성 있게 생겼다.


- 아 , 네..... -


소독카를 밀며 다소 성의 없는 목소리의 내 몸이 602호를 향한다.


- 아이휴~ 또 시작이구먼, 우리 이 선생 입 돌아가는 거는 시간문제여... -


나에 대한 걱정이 진정성 있게 묻어나는 이기현 어르신의 음성에서 약간의 힘을 얻는다.


- 어르신 ~ 발 소독해 드릴게요. 자, 옆으로 누울게요. -

- 대변 치웠어? -

- 네, 어르신. -

- 음, 그래 시원하다. 아니 그러니까 대변 치웠냐구? -

- 네, 어르신 치웠어요. 엄청 깨끗하게요. -


소독이 시작되자마자 한 번의 사이클이 돌았다. 자, 이제 시작이다. 남은 139번의 사이클을 무사히 완주해야 오늘의 상처소독도 끝날 수 있다. 우선 입주변의 근육들을 풀어보자. 두 입술에 침도 묻혀보고 근육들을 크게 움직여 입 운동을 해본다. 그래, “시작이 반이다. 할 수 있다.” 온갖 긍정적인 말들과 마인드로 정신을 무장하고 어르신 옆에 서본다.


- 대변 치웠어? -

- 네, 어르신. -

- 음 그래 시원하다. 아니 그러니까 대변 치웠냐구? -

- 네, 어르신 치웠어요. 엄청 깨끗하게요. -


이제 막 소독을 하려는 조과장님과 나, 너무나 깜짝 놀란 나머지 소독세트를 엎을 뻔한다.


- 방금 누가 말한 거죠? - 놀란 토끼눈의 조과장님이 나를 향해 물어온다.

- 몰라요. 전, 아무 말 안했는데요. -


귀신이 나타나도 이정도의 놀람과 당황은 아니리라. 나와 원장님과의 어리둥절한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어르신의 질문은 이어졌고 연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들려오는 지점을 발견한 나는 너무나 웃긴 나머지 미친 듯이 웃다가 그만 소독세트 하나를 건드려 오염시켜 버린다.

그러고 보니 상처소독이 진행되는 40여분의 적지 않은 시간동안 늘상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어야 할 이기현 어르신이 오늘따라 반대편으로 누워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지금목소리의 진원지가 바로 이기현어르신인 것이다. 최대한 여성스럽게 심지어 콧소리를 내가며 내가 담당해야 하는 대사를 치고 있는 이기현어르신... 그리고 약 2초 후, 어르신과 나 그리고 조원장님의 웃음소리가 602호를 완전히 채워 버린다.



매일 소독을 해야 하는 양쪽 발은 박태근 어르신이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해야하는 절대적 이유이다. 치매에 당뇨발, 더욱이 뇌질환의 흔적으로 인한 와상상태는 엄청난 효성심과 경제력을 두 주머니에 차고 있다 해도 자녀가 친히 모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주 2회정도 얼굴에 효자라고 쓰여 있는 둘째 아들이 면회를 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스테이션으로 다가와 당뇨발의 상태부터 묻는다. 그럴때마다 나는 좀 번거로운 일이긴 하나 소독되어 있는 거즈를 떼어내어 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해준다.

- 와 ~ 새살이 좀 찬 건가요? -

- 네, 저는 매일 봐서 덜 느껴지는데 아드님 시각이 맞을 겁니다. -

- 아이구 다행이네. -


효성스런 얼굴에 웃음까지 만들어내니 아들의 얼굴이 더 효성스러워 보인다.

'죽으라는 은 없다.’ 치매로 인한 어르신의 식욕증가는 하루 네 끼 식사를 만들어냈고 바로 이 알찬 식사 덕분에 양쪽 당뇨발에 새살이 조금씩 차고 있는 것이다. 당뇨발을 확인한 둘째아들은 이제 자신의 할 일을 다 완수 했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원 문을 나선다. 벌써 3년째 병원침상에 누워계신 어르신의 얼굴, 게다가 치매로 인한 엉뚱한 대화의 반복은 이제 자녀들로 하여금 그들의 시선을 얼굴에서 양쪽 발로 이동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독거즈를 걷어 내었으니 이제는 다시 소독을 해야 한다.


- 기현어르신! 우리 박태근 어르신 소독 좀 할까요?-

- 어, 그리어 하자구, 잠깐만 나 옆으로 좀 눕고.....


밝은 목소리의 대답을 만들어내는 이기현 어르신이다. 게다가 얼굴에는 엷은 미소까지 만들어낸다.

3주 전부터 기현어르신은 박태근 어르신의 양쪽 발 소독에 있어 소독거즈보다 더 중요한 존재로 우리 팀에 합류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형성된 어르신의 밝은 모습은 이미 나의 얼굴로도 옮겨와 있다.



어제와 거의 똑같은 노인병동의 오늘이 시간을 타고 지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하루하루가 가끔은 모두에게 무기력과 우울감을 부여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기현어르신은 태근어르신의 발 소독 시간을 군생활하는 이등병이 애인면회 기다리듯 기다리신다.

“다행이다.” 드디어 기현어르신에게 할 무언가가 생겼다.

이승희님에게 투여할 인슐린을 준비하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연다. 그리고 인슐린 펜들과 나란히 놓여있는 야쿠르트 4개가 내 눈에 들어온다. “좋다, 오늘 오후에 태근어르신 발 소독시간에 기현어르신과 함께 야쿠르트를 들이키자.” 맘속으로 생각한다. 아니 작정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도달하고 내 두 손은 야쿠르트 4개를 보이지 않게 검은 봉지에 담아 냉장고 뒤쪽 후미진 곳으로 밀어 버린다. 아주 신속한 속도로 위의 생각과 행동은 진행된다.

그리고 어제와 약간 다른 오늘이 시간을 타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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