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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간호 역사여행⑫ 첫 한국인 간호원회 조직, 1910년
세브란스병원과 보구여관 간호원들 모여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3-03-26 오후 04:02:21


◇ 한국인 간호원 최초의 조직 만들어

◇ “간호업무와 간호원 발전 위해 서로 협력”

 1910년 6월 10일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학교에서 제1회 졸업식이 거행된 후, 쉴즈 간호원장의 지도 하에 세브란스병원 간호원들과 보구여관의 간호원들이 함께 모여 두 병원의 한국인 간호원들로 최초의 한국인 간호원회가 조직되었다. 이 한국인 간호원회는 현 대한간호협회의 첫 출발로 볼 수 있다.

 이 간호원회에 대한 자료 부족으로 그 실상을 알기 어렵지만, 한 자료에서 그 명칭을 `세브란스병원간호원회'로 했으므로 자료집에서는 이를 취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1908년 개신교 선교사 간호원을 정회원으로, 일부 여자 선교사와 하란사를 준회원으로 `대한졸업간호원회'(Graduate Nurses' Association in Korea)가 조직되었다. 1910년 6월 졸업간호원 김배세가 배출되고 세브란스병원과 보구여관의 한국인 졸업간호원을 구심으로 독립된 한국인 간호원회가 조직되자, 기존의 대한졸업간호원회는 1910년 6월 대한서양인졸업간호원회(Western Graduate Nurses' Association in Korea)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명칭 변경에서 미루어보면 한국인 간호원회는 `대한한국인간호원회'(Korean Nurses' Association in Korea)로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 조직들의 이름에 있던 `대한'은 8월 29일 한국이 일본 식민지로 병합되면서 `조선'으로 변경되었고, `간호원'은 `간호부'로 변경되었다.(`간호원'도 함께 사용) 즉 `대한서양인졸업간호원회'는 `재선서양인졸업간호부회'로 바뀌었는데, 이처럼 `대한한국인간호원회'도 `조선한국인간호부회'로 바뀌었을 것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1910년 6월 서울에서 조직될 당시 한국인 간호원회는 졸업간호원 3명(보구여관의 김마르다와 김엘렌, 세브란스병원의 김배세)과 학생간호원(보구여관 11명, 세브란스병원 9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졸업간호원 이그레이스는 평양에서 활동 중이라 사진에는 없다.) 간호복은 졸업간호원은 상하 흰색으로 두 병원이 동일했으며, 학생간호원은 보구여관의 경우 흰칼라를 오른쪽으로 냈고, 세브란스병원 소속은 V자 모양의 큰 흰색 칼라를 했다.

 1910∼11년에 보구여관에 간호원장이 없었으므로 쉴즈 간호원장이 이 간호원회를 지도했다. 동시에 동대문부인병원 건물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정동의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가 폐쇄되고 평양으로 임시로 옮겨가고, 서울에는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학교만 존재하게 되면서, 쉴즈는 세브란스 간호원들을 위한 별도의 조직을 만들 필요를 느끼고, 1911년 6월 세브란스병원 간호부 동창회를 조직했다.

 그 헌법(정관)에 나타난 목적은 “회원 상호 간과 모교에 대하여 충성되며, 우리 학무에 대하여 배울만한 좋은 방법과 피하여야 할 나쁜 방법을 서로 고하여 직업적으로 일치협력하며, 어린 아이가 장성하여 가는대로 점점 중대한 직무 행하기를 배우는 것을 기억하여 우리도 매일 그 전일보다 나은 간호부가 되기를 힘써 지식과 능률로 증진케 하기를 쉬지 말며, 주를 섬김이요 또한 주께서 그와 같이 받으실 줄 알고 나날이 최선의 직무를 행하며, 적은 일에 충성한 자는 많은 일에도 충성하라 하신 말씀을 잊지 아니한다”였다.

 이를 보면 1910년에 조직된 한국인 간호원회의 목적도 상호 일치와 협력을 통해 간호학 지식을 증진하고 더 나은 간호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 성과의 하나가 바로 김마르다와 김배세가 협력해서 연구하고 발표한 “환자를 위한 한식”이었다.

 한편 1911년 3월에 중국의료선교사회의 지부 형태로 조선의료선교사회(Korea Medical Missionary Association)가 조직되었는데, 이후 재선서양인졸업간호부회는 이 조선의료선교사회의 자매회 형태로 존재했으며, 여자 의사와 간호 선교사들은 의료선교사회에 정식 회원으로 참석했다. 평양의 홀 의사는 김마르다와 김배세의 연구를 발전시켜 1913년 의료선교사회 3회 연례회의 때 “환자를 위한 한식” 논문을 영어로 발표했다. 이처럼 한국인 간호부회는 재선서양인간호부회와 조선의료선교사회 조직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의료 선교사들의 지도를 받았다.

 1912년 간호부장 앤더슨이 내한하면서 가을에 동대문부인병원 간호원양성소가 정상화되었고, 보구여관과 세브란스병원의 한국인 간호부들의 간호부회도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상호 교류하였다. 점차 두 병원의 간호원양성학교와 다른 선교병원들에서 한국인 간호부들이 다수 배출되면서, 마침내 1923년 4월 `조선간호부회'(Korean Nurses Association)가 조직되었다. 이 조선간호부회와 재선서양인간호부회가 공존하다가, 1926년 국제간호협회의 1국 1단체 원칙에 따라 17명의 한국인 간호부와 30명의 서양인 간호부가 `조선간호부회'로 통합 조직되어 오늘의 `대한간호협회'로 발전했다.

 따라서 대한간호협회는 1908년 대한졸업간호원회를 기원으로 잡으면 올해 105주년이 되고, 1910년 한국인 간호원회를 기원으로 하면 103주년이요, 1923년 조선간호부회를 기원으로 하면 90주년이 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1910년 6월 10일 한국인 간호원회 조직을 그 기원으로 보고 추가 연구와 토론을 제안한다.

글·사진 : 옥성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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