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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간호 역사여행⑪ 나이팅게일 간호원 선서, 1911
근대 한국 간호교육에 나이팅게일 큰 영향 미쳐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3-02-26 오후 03:14:05


◇ 나이팅게일 선서 국·한문 번역해 사용
◇ 고귀한 간호원의 직무 진실하게 행하겠다 맹세

 1911년 6월 17일 세브란스병원간호부동창회가 조직되고 헌법(정관)을 출판했을 때, `나이팅게일 간호원 선서'도 인쇄하여 보구여관과 함께 사용했다. 그 이전에도 이 선서는 사용했지만, 자료로 남아 있는 것은 사진에서 보는 것이 처음이다. 당시 국한문 번역문을 현 맞춤법으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나는 주의 앞과 증인의 앞에서 다음의 네 조건으로 맹세하나이다. 1. 청결한 마음과 진실한 뜻으로 직무를 행하며, 2. 약이 해있는 줄 알고는 자기나 사람에게 복용케 하거나 시술치 아니하며, 3. 근면하여 본직으로 고귀한 위치에 이르게 하며, 병인과 자기만 아는 바 병인의 신분에 해로운 모든 일은 입 밖에 내지 아니하며, 4. 충심으로 의사를 보조하며 자기 담당한 병인에게 마음과 몸을 다하기로 함.”

 환자를 돌보고 보호하는 고귀한 간호원의 직무를 깨끗한 마음과 진실한 뜻과 근면으로 행하되 환자의 신상정보의 비밀을 지키겠다는 간호원의 원리와 윤리에 대한 선서였다.

 이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수정한 것으로, 1893년 미국 미시간의 리스트라 그레테르 부인과 파랜드 간호원양성학교 위원회가 작성했는데, 미국 간호학을 위해 크게 공헌한 나이팅게일(1820∼1910)을 기려서 그녀의 이름을 붙였다. 이후 그레테르는 `건강의 선교사'로서 `인류의 복지' 향상을 위한 노력을 추가하여 개인 병상간호를 넘어 공중보건간호 개념으로 직무를 확대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1911년에 국한문으로 번역한 원래의 선서를 수정해서 사용하고 있다.

 19세기 근대 간호학의 기초가 된 나이팅게일 간호학은 크리미아 전쟁(1853∼56) 야전병원에서 부상병을 치료하고 간호하는 구급간호로 출발했는데, 그녀는 밤에 등불을 들고 병상을 도는 야간근무로 유명했다. 그녀는 1859년에 쓴 “간호학”을 기초로 1860년 런던 성토마스병원에 설립한 나이팅게일 간호원양성학교에서 가정간호학, 개인위생, 병상간호학 교육과정을 발전시켰는데, 미국에서 남북전쟁(1961∼65)이 일어나면서 나이팅게일의 삶과 이론은 미국 간호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어 `세균 이론'이 발전하면서 그녀는 소독법과 공중위생을 강조한 간호교과서를 새로 썼으며, 이 새 간호학이 미국과 아시아에 전파되었다. 또한 나이팅게일은 여성지위 향상과 여성해방운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참된 기독교 신앙은 봉사와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보았으며, 동시에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청일전쟁(1894∼95)과 러일전쟁(1904∼05) 때 활약한 일본의 적십자병원 간호부들이 나이팅게일 간호학으로 훈련 받았으며, 같은 간호학이 1907년부터 대한의원과 총독부의원에 도입되었다. 이보다 앞서 1885년부터 내한한 영미 선교사 간호원들도 나이팅게일 간호학으로 교육을 받았으므로 한국인 간호원들은 에즈먼즈나 쉴즈로부터 나이팅게일 간호학으로 교육을 받았다. 곧 병동의 환자를 간호하는 병상간호, 개인위생과 소독법, 구급간호가 초기 간호의 주 내용이었다. 이는 한국에 근대 간호학이 도입될 때 러일전쟁, 군대 해산(1907), 항일의병전쟁(1907∼10)이 진행되면서 많은 부상병이 발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편 개항기에는 각종 전염병이 창궐했으므로 공중위생 분야가 중요했는데, 전도를 목적으로 한 선교병원의 간호가 상대적으로 피병원에서의 감염자 치료와 간호에 중점을 두었다면, 광제원과 대한의원과 같은 정부병원에서는 천연두 예방주사와 공중위생 등 예방간호에 좀 더 치중했다. 그러나 통감부와 총독부는 위생업무를 경찰 관할에 둠으로써 식민지 조선인의 몸을 제국에 봉사하는 자원으로 통제하는 정책으로 나아갔다.

 또한 선교병원이 간호원의 기독교 정신과 선교와 봉사정신을 강조했다면, 1907년 이후 대한의원과 총독부의원은 일본 제국 건설에 충성하는 선량한 신민 만들기에 공헌하는 간호업무가 되도록 노력했다. 따라서 1907∼1910년 대한의원과 1910∼11년 총독부의원과 자혜의원은 일본인 환자 간호에 우선권을 두었고, 합방 이후에는 `교화'와 `동화'를 위해 위생교육에 적극 나섰다.

 기독교 국가가 아닌 일본은 나이팅게일 정신에서 여성해방적, 기독교적인 측면은 무시하고 희생적, 순종적, 여성적인 미덕을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일본 정신과 유교의 도덕으로 포장하여 제국에 봉사하고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나이팅게일 간호부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곧 가정과 제국을 위해서 희생, 순종하는 `백의의 천사' 이미지를 강조하고 재생산했다.

 한일합병 이듬해인 1911년 6월에 나온 세브란스병원의 나이팅게일 선서는 한국 간호가 제국보다는 개인, 총독부 정권의 동화정책보다는 선교병원의 기독교 정신에 충실하고 한국 여성의 지위 향상에 노력하겠다는 선서였다.


글·사진 : 옥성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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