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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간호 역사여행⑩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학교 제1회 졸업생 김배세
교사 경력 갖추고 영어에 능해 두각 나타내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3-01-29 오전 11:19:06


◇ 미국 간호학회지 논문과 영어교재 한글로 번역

◇ 보구여관 학생들과 연합 강의·실습 통해 교류

 김배세(金背世, 1886∼1944)는 1906년 9월 쉴즈(Esther Shields) 간호원이 설립한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학교(Severance Hospital Nurses' Training School)에 1907년 1월에 첫 학생으로 입학하여, 1908년 예모식을 거쳐, 1910년 6월 10일에 제1회로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 최초의 한국인 졸업간호원이 되었다.

 그녀는 서울 정동의 가난한 선비인 아버지 김흥택과 어머니 연안 이 씨의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아펜젤러 선교사 집에서 일하게 된 것을 계기로 기독교와 접하게 되었다. 이후 언니 신마리아(Mary Shin)는 정신여학교의 초대 교사와 교감이 되었고, 작은 언니 김점동은 보구여관 조수를 거쳐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00년부터 10년간 보구여관과 광혜여관에서 최초의 한국 여의사로 활동한 박에스더(Esther Kim Park, 1876∼1910)였다.

김배세의 영어 이름은 `Bessie Carnahan Kim'이었는데 중간 이름 `캐너한'은 세례명(아마도 평양남산현교회 노블 선교사로부터 받았을 가능성이 있음)으로, 이후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언니들과 달리 성은 바뀌지 않았다.

 김배세는 1894년 청일전쟁 직후 언니 에스더를 따라 평양에 가서 의사 홀(Rossetta S. Hall) 부인의 진료소에서 보조로 일했다. 이어서 서울 연동 정신여학교를 다니고 졸업했다. 러일전쟁이 끝난 1905년에 언니 에스더가 있는 평양으로 다시 가서 1906년까지 남산현 여자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홀 의사가 설립한 맹인학교에서 지리, 악기, 노래 부르기 등을 가르쳤다.

 김배세는 1907년 1월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학교가 두 명의 학생으로 수업을 시작할 때 입학했다. 세브란스병원이 신축된 후 최대 선교 병원으로 발전하고 있었고,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와 연합 강의와 실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병원 조수와 교사 경력을 가졌고 영어에 능해 병원과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쉴즈 간호원은 김배세에게 간호학 강의에 사용할 논문과 글을 미국의 간호학회지 American Journal of Nursing(AJN)이나 책에서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맡겼다.

 1908년 초 두 명의 수습간호원에 대한 첫 예모식 때 김신성과 함께 간호모를 쓰고 학생간호원이 되었다. 1908년 12월 세브란스병원에는 예모식을 거친 학생간호원이 7명(김배세, 김신성, 조원숙, 박영신, 강성은, 오현숙, 안경혜)이 있었고, 이듬해에는 학생간호원 2명과 수습간호원 3명이 추가되면서 12명의 간호원이 있었는데, 김배세가 수석이었다.

 김배세는 3년의 과정을 마치고 1910년 6월 10일 제1회 졸업식 때 홀로 졸업장을 받고 세브란스병원 최초의 한국인 졸업 간호원이 되었다. 이전에 살펴보았던 이그레이스와 김마르다와 함께 `현대사회가 여성계에 제공하는 여러 직업 중에서 가장 순결하고 고상한 직업'의 문을 연 사건이었다.

 김배세는 영어 실력이 좋아 1907년부터 맥스웰과 포프가 지은 Practical Nursing을 번역하여 『예수교신보』에 `간호촬요'로 연재하고 이를 모아 교과서로 사용했다. 졸업 후에는 세브란스병원에서 몇 년간 부간호원장으로 봉사했는데, 그녀의 지도력을 고려해 간호원장직이 고려되기도 했다.

 1911년에는 간호 관련 논문을 계속 번역했는데, 간호학회지(AJN)에 실린 `폐렴 간호'를 번역하여 간호원회에서 발표했다. 또한 간호원양성소에서 가르쳤다.

 1911년 2월 3일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소는 김신성, 조원숙, 박영신을 제2회 졸업간호원으로 배출했다.(조원숙은 세브란스병원 수술실 간호원으로, 김신성과 박영신은 청주던컨병원과 전주예수병원 간호원으로 취직했다.) 1912년에 김배세와 이그레이스는 환자들을 위한 한국 음식에 대한 전시회를 개최했고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김배세는 여러 해 동안 평양 감리회의 기홀병원(Hall Memorial Hospital)에서 간호부장으로 봉사했으며, 1920년대에는 부산에서 수간호원으로 활동했다. 그녀의 말년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서울에서 1944년에 사망했다.

글·사진 : 옥성득 교수

※ 이 글에서는 간호사 명칭을 근대에서 활동했던 당시 그들을 부르던 간호원으로 통일해 서술했다.

※ 다음 원고 `⑪ 첫 한국인 간호협회 세브란스병원간호원회 조직'은 2월 28일자 간호사신문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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