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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르웨이 수교 60주년 특별사진전…6·25전쟁 파견된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 활약상
[편집국] 정규숙 편집국장   kschung@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9-06-04 오후 02:15:43

한국과 노르웨이 수교 60주년 기념 특별사진전 개막식에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이 참석했다.

서울시 병원에서 온 간호사들이 노르매쉬 여의사 잉에르 슐스타드 박사를 만나고 있다.[사진=주한노르웨이대사관]

주한노르웨이대사관은 전쟁기념관과 함께 '6·25전쟁으로 맺어진 영원한 우정, 노르매쉬(NORMASH)' 특별사진전을 열고 있다.

이번 특별사진전은 한국과 노르웨이 수교 60주년을 맞아 마련됐다.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했던 노르웨이 육군 이동외과병원 '노르매쉬'의 활약상이 담긴 사진 60점, 노르웨이 신문 및 정부 문서 6점, 당시 사용했던 수술기구세트 등 유물 30점 등으로 구성됐다. 간호사의 노르매쉬 파견계약서와 유품도 전시됐다.

사진전 개막식은 5월 28일 열렸다. 박삼득 전쟁기념관 관장은 환영사를 통해 “노르웨이는 한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의료인력과 의료물자를 지원해 큰 도움을 줬다”면서 “이번 사진전이 따뜻한 인술과 사랑을 펼쳤던 노르매쉬의 활약상을 되새기고, 두 나라의 우정이 더욱 굳건해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데 수올베르그(Frode Solberg) 주한노르웨이대사는 개회사를 통해 “양국 수교 이전인 1951년, 전쟁을 겪고 있는 한국을 돕기 위해 이동외과병원 노르매쉬 의료진이 파견됐다”면서 “참혹하고 인간의 최악의 모습을 드러내는 전쟁 중에도 용기, 연민, 우정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피어나며, 이 같은 특별한 이야기와 한국과 노르웨이의 끈끈한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어 “노르매쉬는 최전방에서 활동하며 9만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했다”면서 “파견된 노르웨이인들은 귀국 후에도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겼고, 한국의 놀라운 발전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수올베르그 대사는 “이번에 전시된 많은 사진들은 노르매쉬의 여의사 잉에르 슐스타드 박사가 직접 촬영해 소장했던 것”이라며 “그녀는 같이 일했던 간호사들과 함께 여성을 위해서도 많은 공헌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노르매쉬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친 노르웨이인들, 한국의 참전용사들과 모든 유엔 참전국 용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그 분들의 활약과 헌신은 한국과 노르웨이 간의 협력을 시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오늘날 한국은 노르웨이의 중요한 파트너국이 됐으며, 그 분들의 공헌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한국-노르웨이 국회의원친선협회 이사)은 “특별사진전이 열리게 된 것을 축하하며, 한국과 노르웨이 양국의 협력과 우정을 기원한다”면서 건배를 제의했다. 테이프 커팅식에는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과 김윤주 국군간호사관학교 평가관리실장(대령)이 참여했다.

〔관람안내〕 특별사진전은 6월 30일까지 서울 전쟁기념관 3층 유엔참전실에서 열린다.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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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외과병원 '노르매쉬'

노르웨이 간호사 파견돼 최전방에서 부상병 치료

노르웨이는 6·25전쟁 당시 유엔이 의료지원부대를 요청하자 육군 이동외과병원 노르매쉬(Norwegian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를 파견했다.

의무 및 행정요원 83명으로 구성된 60병상 규모의 노르매쉬는 1951년 7월 19일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1954년 11월 10일까지 한국에 남아 활약했으며, 9만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했다. 처음에는 의정부에 위치했으며 이후 좀더 북쪽으로 이동해 동두천에 자리를 잡았다. 전쟁기간 동안 623명을 파견했다.

노르매쉬의 환자들은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해 이송된 군인들이었다. 환자들은 구급차나 헬리콥터로 이송됐는데, 이는 당시 혁신에 가까웠다. 환자들은 3일 동안 머물다가 새로 오는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후송병원으로 이송됐다. 부상병들이 끊임없이 병원으로 도착하는 아주 바쁜 날에는 하루에 64건에 달하는 수술이 이뤄지기도 했다.

군병원이었지만 정전 이후에는 많은 한국 국민들을 진료하기도 했다. 정전 이후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와 한국 정부가 함께 세운 국립의료원(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1958년부터 1968년까지 139명의 노르웨이인들이 근무했다.

1958∼1968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스칸디나비아 의료진이 근무했다.[사진=주한노르웨이대사관]

특별사진전에 전시된 노르매쉬 간호사의 파견계약서와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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