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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간호문학상 소설 당선
인연
[편집국] 편집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1-12-27 오전 11:04:28
옛 시골집. 흐드러지게 핀 노란소국의 향이 아찔하기까지 한 작은 골목에 아버지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인데 `아버지, 아버지' 부르는 소리는 미치지 못하고 허공에서 부서질 뿐이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섰던 노란소국을 닮은 계집애는 나를 뭐라 불렀던가. `엄마'라 했던가.
쏟아지는 햇빛과 소음에 눈을 뜬다. 오후 2시. 강렬한 오후의 태양은 지면을 녹일 듯한 기세이건만 뛰어노는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집안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어둠을 걷어내어버리려는 듯 햇빛이 들고 있다.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커튼을 바꿔 다셨구나'
몇 달 전, 참 별난 취향도 다 있다며 어이없어하던, 친구가 구해다 준 무대용 벨벳소재의 커튼이 이 모든 것을 차단시켜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보리 바탕에 연녹색의 파스텔빛 꽃무늬가 프린트된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얇은 커튼을 달아 두셨으리라. 그리고 그 커튼 반듯이 개워 제자리에 넣어두셨으리라. 어머니는 커튼을 바꿔 다실 뿐 이유를 묻지도 버리지도 않으시고 반듯이 개워 서랍에 넣어 두신다. 그러면서도 매번 커튼을 바꿔 달기를 반복하신다. 그건 내 마음 속 커튼을 이해하면서도 걷어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속 또다른 커튼이 아닐까.
깊게 아주 깊게 숨을 들이마시어 본다. 향긋한 빨래비누향. 어머니의 채취. 결코 진하지 않지만 쉽사리 없어지거나 잊혀지지 않는 향은,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저녁, 뽀송뽀송 잘 말려진 빨래에서 나는 깨끗하고 기분 좋은 향이다. 나는 그것을 `빨래비누향'이라 부른다. 어떤 값비싼 향수도 흉내낼 수 없는 이 향내를 마음껏 즐기고 있음이다.
그렇다. 이처럼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이의 일방적인 관계는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음이다. 담배 한 대가 몹시나 그리워져 뒷베란다로 나간다. 근심 가득한 얼굴로 창가에 기대 담배를 태우시고 쇠약해진 몸 전체에 담배 냄새 가득 배어 나오실 때마다 아버지는 그렇게 점점 더 작아져만 가셨다. 아버지의 흡연장소인 이곳에서 난 내 자신을 묶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모금 깊게 빨아들여 호흡기 가득 니코틴을 채운다. 니코틴이 주는 화학적 성분 뿐만이 아니라 그 일탈에 편안함을 느낀다.
갑자기 아랫배에 누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아이는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항상 이런 방식으로 알린다. 지난 주 갔던 병원에서는 유산기가 있다고 조심하라 일렀건만, 일어나자마자 담배로서 내 숨통을 죄어오는 것이냐고 시위를 하는 것일까. 통증에 주저앉아버리고 만다.
`분재가 저기 있었던가'하는 생각과 함께 말라비틀어져 그 생명력을 다해가던 분재에 다시금 생명력이 돌고 있음을 발견한다.
`여자애 혼자 사는 집이 왜 이리 삭막하노. 정붙이고 키워보그라. 큰 위안이 될 것인게.'
유난히 분재 기르기를 좋아하시던 두 분. 어머니는 부단히도 분재를 사나르시고 더한 정성으로 돌보시며 아직까지 아버지를 붙잡고 계심이다. 사람의 인연이란게 이런 것인지….
“유경연 아가,오늘 나간 뇌초음파상에 출혈이 심하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그동안 여러 번의 응급상황이 발생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시구요. 그리고 애기가 혹시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폐도 좋지 않은 상황에 뇌출혈까지 있어 정상적인 생활은 하기 힘들거라 합니다. 오늘 보호자분이 오셔서 과장님과 면담하셨는데 애기 포기한다고 하십니다. 포기각서 상태구요. 모든 치료 중단되었구 인큐베이터 아웃된 상태로 챠트도 정리해서 정산 내려보냈습니다.”
“그렇다고 곧 사망할 것 같지는 않은데…”
“네. 보호자분한테 쉽지는 않을거라고 설명 드렸구요. 굶어 죽게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튜브수유는 계속하자고 하십니다.”
“그럼 뭐야? 저체온으로 보내자는 말이네? 보호자분 애기 안데리고 가신데?”
“네. 집에 할머니가 계시는데 보시면 충격받으실 거라면서 병원에서 장의처리까지 해주기를 원하십니다.”
“불쌍해서 어떡하노… 현재 애기 상태는 어때?”
“현재 토하는 것 없이 튜브로 2cc 수유하고 있고 심박동은 분당 100회에서 120회 정도로 괜찮은데 체온이 35도 이상으로는 올라가질 않고 있습니다.”
“얼어죽는 꼴이군… 우리는 사람 아닌가? 그리고 의료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이 있지 어떻게 이렇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으란 말이야?”
1kg도 채 되지 않는 960g의 작은 몸으로 10주를 빨리 세상에 나온 아이. 기계와 의료진의 손길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 한 달여 간을 살아온 아이는 이렇게 보호자의 포기로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선택할 수 없고 선택당해야만 하는 아이의 생명. 이렇게 한 해에도 수십만명의 아이들이 죽음을 강요당하고 있다. 아무도 말이 없다. 그저 안타까움과 무력함만이 얼굴에 비춰질 뿐이다. 생명에 해가 되는 일은 어떤 일도
쏟아지는 햇빛과 소음에 눈을 뜬다. 오후 2시. 강렬한 오후의 태양은 지면을 녹일 듯한 기세이건만 뛰어노는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집안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어둠을 걷어내어버리려는 듯 햇빛이 들고 있다.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커튼을 바꿔 다셨구나'
몇 달 전, 참 별난 취향도 다 있다며 어이없어하던, 친구가 구해다 준 무대용 벨벳소재의 커튼이 이 모든 것을 차단시켜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보리 바탕에 연녹색의 파스텔빛 꽃무늬가 프린트된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얇은 커튼을 달아 두셨으리라. 그리고 그 커튼 반듯이 개워 제자리에 넣어두셨으리라. 어머니는 커튼을 바꿔 다실 뿐 이유를 묻지도 버리지도 않으시고 반듯이 개워 서랍에 넣어 두신다. 그러면서도 매번 커튼을 바꿔 달기를 반복하신다. 그건 내 마음 속 커튼을 이해하면서도 걷어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속 또다른 커튼이 아닐까.
깊게 아주 깊게 숨을 들이마시어 본다. 향긋한 빨래비누향. 어머니의 채취. 결코 진하지 않지만 쉽사리 없어지거나 잊혀지지 않는 향은,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저녁, 뽀송뽀송 잘 말려진 빨래에서 나는 깨끗하고 기분 좋은 향이다. 나는 그것을 `빨래비누향'이라 부른다. 어떤 값비싼 향수도 흉내낼 수 없는 이 향내를 마음껏 즐기고 있음이다.
그렇다. 이처럼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이의 일방적인 관계는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음이다. 담배 한 대가 몹시나 그리워져 뒷베란다로 나간다. 근심 가득한 얼굴로 창가에 기대 담배를 태우시고 쇠약해진 몸 전체에 담배 냄새 가득 배어 나오실 때마다 아버지는 그렇게 점점 더 작아져만 가셨다. 아버지의 흡연장소인 이곳에서 난 내 자신을 묶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모금 깊게 빨아들여 호흡기 가득 니코틴을 채운다. 니코틴이 주는 화학적 성분 뿐만이 아니라 그 일탈에 편안함을 느낀다.
갑자기 아랫배에 누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아이는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항상 이런 방식으로 알린다. 지난 주 갔던 병원에서는 유산기가 있다고 조심하라 일렀건만, 일어나자마자 담배로서 내 숨통을 죄어오는 것이냐고 시위를 하는 것일까. 통증에 주저앉아버리고 만다.
`분재가 저기 있었던가'하는 생각과 함께 말라비틀어져 그 생명력을 다해가던 분재에 다시금 생명력이 돌고 있음을 발견한다.
`여자애 혼자 사는 집이 왜 이리 삭막하노. 정붙이고 키워보그라. 큰 위안이 될 것인게.'
유난히 분재 기르기를 좋아하시던 두 분. 어머니는 부단히도 분재를 사나르시고 더한 정성으로 돌보시며 아직까지 아버지를 붙잡고 계심이다. 사람의 인연이란게 이런 것인지….
“유경연 아가,오늘 나간 뇌초음파상에 출혈이 심하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그동안 여러 번의 응급상황이 발생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시구요. 그리고 애기가 혹시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폐도 좋지 않은 상황에 뇌출혈까지 있어 정상적인 생활은 하기 힘들거라 합니다. 오늘 보호자분이 오셔서 과장님과 면담하셨는데 애기 포기한다고 하십니다. 포기각서 상태구요. 모든 치료 중단되었구 인큐베이터 아웃된 상태로 챠트도 정리해서 정산 내려보냈습니다.”
“그렇다고 곧 사망할 것 같지는 않은데…”
“네. 보호자분한테 쉽지는 않을거라고 설명 드렸구요. 굶어 죽게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튜브수유는 계속하자고 하십니다.”
“그럼 뭐야? 저체온으로 보내자는 말이네? 보호자분 애기 안데리고 가신데?”
“네. 집에 할머니가 계시는데 보시면 충격받으실 거라면서 병원에서 장의처리까지 해주기를 원하십니다.”
“불쌍해서 어떡하노… 현재 애기 상태는 어때?”
“현재 토하는 것 없이 튜브로 2cc 수유하고 있고 심박동은 분당 100회에서 120회 정도로 괜찮은데 체온이 35도 이상으로는 올라가질 않고 있습니다.”
“얼어죽는 꼴이군… 우리는 사람 아닌가? 그리고 의료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이 있지 어떻게 이렇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으란 말이야?”
1kg도 채 되지 않는 960g의 작은 몸으로 10주를 빨리 세상에 나온 아이. 기계와 의료진의 손길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 한 달여 간을 살아온 아이는 이렇게 보호자의 포기로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선택할 수 없고 선택당해야만 하는 아이의 생명. 이렇게 한 해에도 수십만명의 아이들이 죽음을 강요당하고 있다. 아무도 말이 없다. 그저 안타까움과 무력함만이 얼굴에 비춰질 뿐이다. 생명에 해가 되는 일은 어떤 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