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문학상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08-03-12 오후 16:07:28

최 희 영

그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일은 아니었어요.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고 아마 어머니도 알고 계셨을 거에요. 지구 위에 살아 숨 쉬는 모든 사람들이 겪게되는 아주 흔한 일이니까요. 아마도 신이 아닌 인간이 유일하게 내다볼 수 있는 가장 명확한 미래일겁니다. 어떤 예언자는 그것이 도적같이 찾아온다고 했고 어떤 성인은 그것이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시작이라고도 했다지요. 하지만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와 내가 육 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그토록 혹독하게 예감하고 준비했어도 막상 그것이 눈앞에 닥쳤을 땐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 조차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 행복도 불행도 마음먹기에 달린 거라고들 하지만 그 일은 결코 상대적일 수 없었습니다. 기가 막히게 절대적인 어떤 일이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고 하면 모를까요. 엄마가 세상을 떠난지 만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을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설프게 느껴집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나는 지금에 와서야 그것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버스 안은 조용했다. 반도 차지 않은 45인승 버스 안에는 코트 깃을 한껏 추켜 세운 사람들이 말없이 앉아서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창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울을 빠져나와 벽제로 향하는 버스가 통일로에 진입할 때부터 한 두점 씩 흩날리기 시작했던 싸리눈은 어느새 함박눈이 되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추위가 누그러든 줄로만 알았던 2월 중순에 예보에도 없던 함박눈을 만난 차량들은 하나같이 도로 위를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웅웅대는 히터의 진동소리가 무색하게 버스 안은 손가락이 곱을 정도로 싸늘했다. 듬성듬성 앉은 사람들은 때 아닌 함박눈에 차가 많이 밀리지 않을까 걱정들이 되는 눈치였지만 누구도 말은 없었다.

혜령은 서울을 출발한 이후 줄곧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로변은 말 그대로 황량했다. 며칠 전만 해도 기분 전환 겸 병원 앞뜰을 산책하면서 한 결 부드러워진 햇볕을 느꼈었다. 아직 외투를 걸치지 않고서는 문 밖을 나서기가 두려울 만큼 바람이 찼지만, 이대로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 봄이 온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오후 햇살은 부드러웠다. 때문에 예상 밖의 폭설은 시간을 거꾸로 거스르는 듯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직 움이 틀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검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에 하얀 눈이 덕지덕지 내려앉아있다가 바람이 불면 먼지처럼 흩날리고 빈 가지에 다시 함박눈이 내려앉았다. 날씨가 이대로라면 벽제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할지, 또 미끄러워진 도로를 거슬러 서울로 돌아가려면 몇 시간이 걸릴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혜령은 찬 공기를 피해 깔고 앉았던 오른 손을 천천히 끌어냈다. 손이 힘겹게 엉덩이 밑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다시 얕게 숨을 몰아쉰 뒤 천천히 창가로 손을 들어올렸다. 창문에는 그새 김이 서려 뿌옇게 시야가 가려져있었다. 눈높이까지 들어올린 손바닥을 창문에 대고는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한 번 문질렀다. 손바닥이 지나간 자리만큼 서린 김이 걷히면서 함박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는 도로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몸에는 손 하나 들어올릴 힘 조차 남아있지 않았지만 마음 속에는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가 눈보라처럼 소용돌이 치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병을 알게 된 것은 작년 초가을이었어요. 항상 피곤해하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병원에 가보시라고 등을 떠밀지 않았던 건, 내가 무서워서였을 겁니다. 어머니의 몸 속 어딘가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막연히 느끼고는 있었지만 막상 누군가에게서 ‘당신의 어머니는 이러저러한 병에 걸렸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 더 이상 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질 수도,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을 테니까요. 설사 그 병이 정성어린 치료 끝에 회복될 수 있는 무엇이라 해도 나는 여전히 두려웠을 겁니다. 우리 모녀에겐 병이라는 놈을 이겨낼 만한 여력이 없었어요.

내가 열 네 살 되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돌아가시자 생계가 막막했던 어머니는 유일한 재산이었던 집을 팔아 작은 커튼가게를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는 우리 집에 매달 커튼조차도 직접 만들어보지 않았던 어머니는 동업하는 아주머니의 어깨 너머로 일을 배우셨는데, 커튼 주름 간격이 일 센티미터도 틀리면 참질 못하는 당신의 성격 탓에 손이 빠르진 못하셨어요. 커튼 윗 단에 매다는 장식용 가리개인 바란스의 종이 본을 만들 때에도 곡선이 부드러운 대칭형으로 나올 때까지 밤새 다시 그리곤 하셨지요. 겨우 생활을 유지할 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