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칼럼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4-09-12 오후 13:36:48

◆ 과도한 생명 연장 치료 보다
남은 삶 편안하게 보내도록 돕는 데 중점 ◆

저널리스트인 Katy Butler가 쓴 “Knocking on Heaven’s Door”(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를 읽고 ‘슬로 메디신(slow medicine)’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책은 저자의 부모, 특히 아버지의 죽음의 과정을 자세하게 그린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현대의학의 과잉 검사와 치료, 특히 죽음의 문턱에선 노인들에 대한 지나친 치료가 환자의 배우자와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자신이 격은 그대로 기록했다. 또 그에 따른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아주 실질적으로 표현했다.

이야기는 평생을 대학교수로 지냈던 저자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시작된다. 아버지는 말도 못하고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일상생활은 다른 이의 도움이 없으면 한시도 살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자식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옆에서 24시간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필자의 어머니는 자신의 생활은 접어두고 하루하루 남편의 곁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때로는 방문간호사나 보조원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남편을 양료원으로 보내는 걸 적극 반대했다. 자신이 쓰러질 때까지 남편을 집에서 보살피겠다고 하던 그녀에게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60세가 막 넘어서 시작된 아버지의 투병은 20년이나 계속됐다. 그들에게 가장 힘들었던 문제는 아버지의 페이스메이커(pacemaker)였다. 환자의 모든 장기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하고 혼수상태였지만 배터리가 있는 페이스메이커는 계속 심장을 뛰게 했다.

저자와 어머니가 페이스메이커 작동을 멈추게 해줄 것을 여러 의사들에게 요구했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80세가 훌쩍 넘은 어머니는 심장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남편이 겪은 고통과 목숨만 근근이 이어가면서 처참한 생활을 했던 남편을 생각하며 수술을 거절하고 자신이 평생 살던 집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다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그녀의 일생을 마친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인의 75%는 집에서 조용히 임종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집에서 사망하는 사례는 25%에도 못미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인공호흡기에 매달려 죽기를 원하는 이는 없겠지만 병원에 입원한 사람 5명 중 1명은 중환자실에서 운명한다고 한다.

집이나 양로원에서 아픈 노인들은 응급상황이 생기면 911을 불러서 병원 응급실로 옮겨지고, 증상이 완화되면 집이나 양로원으로 다시 보내진다.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병원에서 임종하게 된다. 미국의 중환자실에서 열흘쯤 있으면 비용이 거의 30만 달러가 넘게 든다.

이런 일들은 개인이나 한 가족 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크게 재고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슬로 메디신을 설명할 때 패스트 푸드와 슬로 푸드를 비교한다. 현대인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 패스트 푸드는 여러 가지 첨가물을 넣어서 미리 준비한 것을 빠른 시간 내에 조리해서 먹게 되는 음식이다. 반면에 슬로 푸드는 재료의 생산지,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 조리방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음식의 맛을 깊게 음미하면서 먹는 것이라 설명한다.

현대의학이 빠른 속도로 진단을 내리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식과 기계를 동원해 치료하기가(over diagnosis & over treatment) 바쁜데 비해 슬로 메디신은 서두르지 않고 환자가 치료방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의사가 설명을 해주고, 환자 본인이나 가족들이 원하는 치료방법을 선택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게 중점이다.

슬로 메디신은 유럽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고, 미국에서도 노인학을 전공한 전문의들이 중심이 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 같은 진단이 나오더라도 젊은이들과 같은 방법으로 치료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슬로 메디신 운동은 완전히 고칠 수 없는 병을 고치려고 혹은 죽음을 늦추려고 애쓰기 보다는 남은 여생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고통 없이 편안한 삶을 마무리 짓게 하는 게 더 인간적이라는 논리다. 과도한 치료는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그 기간이 짧고 환자는 많은 불편함과 고통에 시달려야 하므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게 한다.

슬로 메디신은 의사 단독으로 치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가족 그리고 여러 의학분야의 전공의사, 간호사(방문간호사와 호스피스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모여 환자가 질적인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슬로 메디신은 죽음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남은 여생을 평안하게 잘 보낼수 있게 계획하는 것이다.(Improving end of life care). 세계적으로 노년층들이 늘어가고 있는 지금 슬로 메디신은 우리 모두가 함께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