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추억의 달콤한 맛, 까마중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3-09-03 오후 15:55:27

까마중, 삘기, 보리이삭, 목화꽃 …
어릴 적 허기 달래 준 천연 간식거리 그리워
초중고 학생 7명 중 1명 비만 상태
패스트푸드 홍수 속 요즘 아이들 안쓰러워
어릴 적 텃밭 근처에는 어김없이 까마중이 한두 그루 자랐다. 까마중이라는 이름은 까맣게 익은 열매가 승려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은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먹때왈'이라고 불렀다. 꽈리와 함께 꽃보다 열매를 더 주목하는 대표적인 식물이다.
한참 클 나이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허기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다들 살기 힘들어 좀 산다는 집도 세 끼 밥 외에는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를 줄 형편이 아니었다. 요즘 아이들이 먹는 피자나 치킨 같은 것은 구경조차 못했고, 어쩌다 어머니가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를 쪄주면 허겁지겁 먹던 시절이었다. 그런대로 달콤한 맛이 나는 까마중은 그 당시 먹던 추억의 간식거리였다. 익은 것을 다 따먹어도 며칠 후면 다시 까만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황석영의 단편 〈아우를 위하여〉를 읽다가 까마중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이 소설은 열한살 초등학생 시각으로, 교실에서 독재가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소설 앞부분에 `서울 영등포의 먼지 나는 공장 뒷길'에서 `까마중 열매가 제법 달콤한 맛으로 유혹해서는 한 시간씩이나 (학교에) 지각하게 만들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요즘 시골은 물론 도심 공터에서도 흑진주처럼 탱글탱글하게 생긴 까마중이 익어가고 있다. 아파트 화단 등 사람이 사는 곳 주변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그 이름이 익숙지 않은 사람도 까마중을 알면 십중팔구 “아, 이게 까마중이야”라고 말할 정도로 흔하다. 서울 광화문 일대만 해도 성공회성당 화단, 오피시아 빌딩 뒤편 공터, 주한 미대사관저 앞에서 까마중을 볼 수 있다.
얼마 전 시골에 가서 까마중을 따서 딸들에게 먹어보라고 했다. 그러나 한번 입에 넣더니 인상을 찡그리고 다시는 먹으려하지 않았다. 나도 다시 먹어보니 밍밍한 게 예전 맛은 아니다. 내 입맛도 변해 버린 모양이다.
어릴 적 간식거리는 지천에 널려 있었다. 봄에는 삘기를 까먹었다. 삘기는 여러해살이풀인 띠의 어린 꽃이삭이 밖으로 나오기 전에 연한 상태인 것이다. 언덕이나 밭가에 많은 삘기를 까서 먹으면 향긋하고 달착지근한 게 먹을만 했다. 삘기는 쇠면 먹지 못하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기간이 잠깐이었다.
아직 덜 익은 보리를 구워먹기도 했다. 보리밭 옆에서 익어가는 보리이삭을 모닥불에 구운 다음 두 손바닥으로 비벼 보리를 골라 먹었다. 재가 섞인 보리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달착지근한 목화꽃도 우리의 표적 중 하나였다. 지금은 목화 재배하는 것을 보기 힘들어졌지만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목화밭이 제법 많았다. 어른들은 보리 같은 다른 농작물은 서리하는 것을 눈감아주면서도 목화꽃 따는 것은 크게 혼을 냈다. 그래서 주위를 경계하면서 따야 했다. 추운 겨울 솜으로 쓸 목화인데 송이째 따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도 좀 아깝긴 했다.
초여름에는 아카시아꽃을 따먹었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린 꽃은 약간 비릿한 맛이 있어서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여름에 산에 가면 산딸기가 있었다. 우리집 남매들은 여름에 밭에서 일하다 쉴 때 모두 산으로 들어가 산딸기를 따먹었다. 밭 옆에는 제법 우거진 산이 있었고,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여름 내내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산딸기밭이 있었다.
넉넉하게 먹지 못해서인지 비만인 아이들은 찾기 힘들었다. 요즘 애들은 다르다. 얼마 전 교육부가 전국 초중고교생 8만7000여명을 대상으로 건강검사를 한 결과를 보면, 학생 비만율은 2008년 11.2%에서 지난해 14.7%로 늘었다. 학생 7명 중 한 명은 비만 상태로, 그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부모 소득과 학력 수준이 낮을수록 자녀가 비만인 경향이 높다. 주 1회 이상 패스트푸드를 먹는 비율은 초등학교 56.9%, 중학교 63.5%, 고등학교 67.7%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높아졌다.
우리는 약간 배가 고팠지만 대자연 속에서 까마중·산딸기를 따먹으면서 자랐다. 피자와 햄버거 등 먹거리가 넘쳐나지만 비만 걱정까지 해야 하는 요즘 애들이 좀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