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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간호문학상 - 수필 가작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9-12-24 오전 09:03:38

엄마라고 불러도 될까요?

천은정(울산대병원)

 

나의 어린 시절, 나이가 두 자릿수가 채 되지도 않았을 때 ‘엄마’라는 단어가 없어졌다. 초등학교 1학년,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나이였기에 엄마는 학교에 자주 찾아왔다. 급식 당번도 하고 반에 와서 친구들이랑 웃으며 함께 놀아주고 엄마들의 모임에서 직책도 맡으며 학교에 자주 나왔다. 그때, 나는 엄마의 그 모습이 너무 자랑스러웠고 행복했다.

하지만 2학년이 되고는 상황이 바뀌었다. 방학동안 엄마는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이유로 우리의 곁을 떠났고 갑작스럽게 마주한 상황에서 어린 나와 동생은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자랑이던 엄마가 떠났고 엄마가 없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다. 너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싫었다.

소풍 때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친구들, 운동회 때 함께 뛰어주고 응원해주던 친구의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너무 부러웠고 내 옆의 빈자리가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나의 작은 거짓말은 시작되었다. “우리 엄마는 미국 가서 공부하고 있어, 곧 돌아오실 거야. 선물도 이만큼 사 오신다고 하셨어.”하며 친구들 앞에서 매번 거짓말을 내뱉었다. 겉은 당당하게 말했지만 속은 벌벌 떨고 있었던 내 모습이 생생하다. 하지만 그때는 들킬까 걱정하면서도 엄마가 다시 돌아올 거라는 기대감 속에서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거짓말을 했던 것 같다. 나의 거짓말은 그렇게 조금씩 커져갔지만 엄마는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거짓말이 쌓이던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거짓말을 한지 몇 년이 지났을 때 한 친구가 나만 생일파티 초대를 해주지 않아 섭섭한 마음에 친구에게 한마디 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나에게 엄마가 널 초대하지 말라고 했다라고 말하며, 내게 넌 엄마가 없고 미국에 가있다는 건 거짓말이지 않냐고 소리질렀다. 나는 그 순간 내가 꽁꽁 숨겨두었던 비밀이 반 친구들 앞에서 드러났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워 강하게 부인했고, 그 당시에 친했던 친구들이 나서서 나를 도와줬다. 아니, 나의 거짓말을 도와줬다.

이 일은 별 문제 없이 마무리되었고 그와 함께 나의 거짓말도 함께 마무리되었다. 많은 친구들 앞에서 나의 거짓말이 밝혀졌을 때, 대부분의 친구들도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걸 나는 친구들의 표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 이후로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없다는 사실도 내입으로 말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내 입으로 엄마가 없다는 말을 선뜻 하지 못한다. 엄마 없이 살아온 날이 엄마와 함께 살아온 날의 두 배가 되었지만 그 말은 아직 나에게 어렵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미움받을까봐 꽁꽁 숨기던 내 모습이 생각나 여전히 말하지 못한다. 엄마라는 단어가 나와야 할 때면 피하거나 말을 돌렸기에 내 입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나올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내겐 엄마라는 단어가 낯설고 내 입에서 나오면 이상하다. 나에게 엄마란 엄청 어색하고 불편하면서도 차가운 단어가 되었다.

 

2017년 7월 10일 나는 수술실 간호사로 병원에 입사했다. 입사를 했지만 나는 꽤나 오랫동안 적응하지 못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적응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데, 이 성격이 가장 큰 문제였다. 간호학생 때 주워들은 태움의 이야기들도 한 몫 했었다.

수술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담당하는 방이 주기적으로 계속 바뀐다. 그래서 트레이닝을 받을 때 함께하는 선생님들이 계속 바뀌었다. 내가 한 선생님께 적응하려고 하면 다른 선생님으로 바뀌는 탓에 정 붙일 시간도 없었다. 물론 어떻게 보면 핑계에 가깝지만 그 당시에 나는 첫 입사로 몸과 마음이 걱정으로 굳어져 있었고, 혹시나 내 실수로 선생님에게 밉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너무 컸다. 그래서 중간만 하자라는 생각으로 말도 많이 하지 않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그 당시에는 진지했다.

 

그렇게 인사만 꾸벅꾸벅하고 말도 거의 하지 않고 과마다 트레이닝을 돌던 중 비뇨의학과 방인 B1번방에서 트레이닝을 3주정도 받게 되었다. 그 방에는 나의 나이만큼 연차가 쌓인 일명 “공쌤”이라는 방장 선생님이 계셨다. 처음 방에 갔을 때는 그저 소녀 같은 느낌을 주는 선생님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평소처럼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지내보니 이 방은 다른 방과 조금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과마다 멤버가 정해져 있는데 멤버 선생님들이 방에 와서는 “엄마”라고 부르며 어제 있었던 일이나 재미있었던 일들을 재잘거렸다. 그곳엔 그 말을 들으며 웃고 맞장구 쳐주는 공쌤이 있었다. 쌤들이 와서 어떤 말을 하던지 진지하게 들어주고 웃어주는 모습이 좋았다. 진짜 딸과 엄마의 관계는 아니지만 내가 상상하던 엄마와 딸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던 평가받기 보다는 그냥 들어주고 공감해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방에 있으면서 가둬놓았던 나를 조금씩 꺼냈다. 조용히 앉아 있기 보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무표정하게 있는 시간보다 웃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었다. 그렇게 공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부모님의 이혼과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을 이야기 했다. 오랜 시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알게 된지 몇 주밖에 안된 선생님께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들어주는 공쌤의 반응이 참 고마웠다.

어떤 판단의 말보다는 그저 들어주고 따뜻하게 손잡아주던 그 모습이 고마웠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이야기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고, 병원 생활에서도 편안함을 찾았다. 선생님들이 신기하게 볼 정도로 많이 웃고 장난을 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처음 입사 때 보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내가 두려워했던 태움은 없다는 걸 느껴서도 있겠지만 그 문을 열어준 건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공쌤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러곤 엄마인 공쌤이 좋아서, 난 비뇨의학과 멤버가 되었다.

 

멤버가 된지도 1년이 넘었지만 공쌤을 엄마라고 불러본 적은 아직 없다. 다른 선생님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모습은 여전히 보지만 아직 공쌤을 엄마라고 불러보진 못했다. 이혼의 이야기는 예전보다 편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라는 단어가 어색하고 불편해서 부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트레이닝 이후로는 공쌤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엄마”라고 부르는 선생님들이 부러웠지만 불러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다른 멤버들이 시간이 안 되서 공쌤과 둘이서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꽤 있었다. 행사와 관련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우리 둘밖에 없지만 재밌게 놀다오자. 엄마랑 딸처럼 재밌게 놀자. 재밌을 거야.”라고 하시는데 뭔가 모르게 울컥했다. 엄마와 딸이라는 단어에 내가 포함된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그 말이 계속해서 내 마음 속에 맴돌았다.

그 일로 “엄마”라는 단어에 대한 어색함과 불편함이 많이 무너졌다. 엄마와 딸이라는 단어 속에 내가 들어갈 일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걸 너무나도 가볍고 따뜻하게 말해주셔서 그 벽이 무너진 것 같다. 이후에도 공쌤과 둘이서 다니면서 “엄마”라는 단어의 불편함과 낯섦이 공쌤으로 인해 점점 사라졌다.

별 일이 없어도 전화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끊고, 나의 가능성을 봐주고 응원해주며 걱정해주시는 공쌤의 다양한 색의 마음들을 느꼈다. 엄마가 있다면 이런 관심을 받고 응원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런 공쌤의 작으면서 큰 애정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고 내게 큰 힘이 되어준다.

꽤 오랜 시간 불러 본적이 없어 아직 많이 어색하지만

공쌤,

엄마라고 불러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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