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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간호문학상 - 수필 가작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9-12-24 오전 09:01:39

요플레에 관한 단상

이소연(동남권원자력의학원)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아들의 전화다. “엄마 요플레가 냉장고에 없어요. 다 떨어졌나 봐요.” “어 알았어. 엄마가 못챙겼다. 미안. 냉장고 앞에 메모지에 좀 적어 놔 줄래?”

“네.” 다정함이 싹 가신 변성기 특유의 목소리로 본인의 말만 하며 끊어버리는 아들 때문에 피식 웃다 그날이 생각났다.

2006년 초여름 분만휴가 석달을 마치고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내과계중환자실로 발령이 났다. 쉽게 이해되진 않았지만 간단한 이유였다.

내가 분만휴가 들어간 사이 병동의 수간호사가 바뀌었고, 내가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즈음 누군가가 한 명 내과계중환자실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수간호사의 입장에서는 그나마 같이 근무한 기간이 짧은 내가 가는 것이 낫다라고 판단했다고...... 지금은 법적으로 출산 후 12개월이 지나기 전까진 출산 전 본인이 근무한 부서에서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내과계중환자실은 병동과 달랐다. 병동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온갖 기계에 자신들의 존재라도 알리듯 내는 기계음에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문을 열고 나가면 다른 공간으로 순간이동 하는 것처럼 그곳은 딴 세상 같았다. 천국이 아닌 지옥으로 통하는 문이 그러할까.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의 기억보다 감정이 먼저 가슴팍에 부딪혀 눈물이 난다.

잘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만큼 철저하게 노력하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울었다. 눈물로 점철된 나의 그 시절 그 환자가 있었다. 만성폐쇄성폐질환에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는 영천이 고향이라고 했다. 얼굴을 꽉 쪼이는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였다. 보통의 인공호흡기를 다는 환자들은 기도삽관을 한 채 의식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런 환자들과는 다른 방법의 치료를 하는 환자로 대화가 가능했다.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산소포화도가 뚝뚝 떨어져도 환자는 증상이 없다가,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의식을 잃는 시한폭탄 같은 환자였다. 마스크와 얼굴의 밀착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여지없이 알람이 울렸다. 그럴 때면 나는 행동으로 1mm의 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마스크를 쪼였다.

“밥은 묵었나?” 마스크 때문에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명 그랬다.

“네.” 눈은 마스크를 향한 채 손은 마스크를 쪼으며 대답했다.

말없이 환자식탁 한 켠에 놓여진 요플레를 내 쪽으로 슥 밀었다.

“저 밥 먹고 출근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내는 많다. 한 개 무라 나나(나누어) 묵자.”

더 거절하다간 시간이 지체 될 거 같아 받아 들고는 이내 일에 집중했다.

요플레는 그 환자의 식사였다.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를 잠깐 제거하고 숟가락도 없이 요플레를 들고 마시는 것이 유일한 식사였다. 식사를 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는 날이면 여지없이 산소포화도 수치는 떨어지며 알람이 울렸다. 그나마 요플레를 한 개라도 제대로 먹는 날은 다행이었다. 그런 식사를 출근하면 여지없이 슬쩍 내밀었다.

“니 줄라고 오는가 보고 있었다.” “힘들제?” “고맙데이.” “게안나.” “나는 괜찮다.”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던 할아버지.

사람이 나고 죽는 건 철저하게 신의 영역이다. 그러한 신의 영역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무력한 인간에게 잔인하게도 절대 적응되지 않고 무뎌지지 않는 것이 죽음이다.

키가 150이 될까..... 하얀 머리에 뽀글한 파마머리를 한 할머니가 담당 레지던트와 이야기 하며 연신 눈물을 닦았다. 매일 면회시간 마다 요플레를 사서 할아버지 식탁에 올려 주던 할머니다. 할아버지는 평생 농사를 지으신 분으로 영천을 떠나서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처음이라 했다.

“안됩니더. 가야 됩니더. 우리 할배 여서 죽으문 안됩니더.”

평소에도 절대 고향에 묻혀야 한다고 혹시 그런 순간이 오거든 절대 고향에서 죽음을 맞고 묻히게 해달라고, 할머니에게 신신당부했다고 이야기했다. 굽은 허리로 연신 울음 섞인 사투리를 써가며 이야기하는 할머니를 레지던트는 고민해 보자는 말로 위로했다. 언제까지 마스크와 인공호흡기가 할아버지의 폐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점점 나빠지는 수치가 이제는 다른 결정을 해야 함을 말해주었다. 할머니와 가족들은 적극적인 치료 대신 고향을 택했다. 완치를 기대할 수 없고, 지금 치료를 중단하면 결국은 죽음밖에 생각할 수 없는 할아버지에게 담당 레지던트는 퇴원을 처방하였다. Hopeless discharge.

무수히 많은 동의서가 가족의 생각은 변하지 않음을 대변했다. 할아버지가 고향 영천으로 떠나는 날. 다행이 이브닝 근무라 배웅을 할 수 있었다. 그날의 무거웠던 공기는 생각만으로도 여전히 무겁다. 스트레쳐 카트에 옮겨 타기 전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옅은 웃음을 지으며, 요플레를 주었다.

“잘 살그래이.” “다음에 보제이.”가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스트레쳐 카트에 옮겨 타는 그 몇 분에 이미 할아버지의 의식은 조금씩 사라져 가는 듯했다. 담당 레지던트는 고향에 도착하기 전이라도 할아버지의 상태를 보고 이상하면 어느 병원 응급실이라도 가야한다고 할머니에게 신신당부했다.

내과계중환자실 문을 열고 나가는 할아버지를 끝까지 볼 수 없었다. 울지 않은 척 눈물을 닦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환자들을 간호했다. 다음에 보자는 할아버지를 다시 볼 수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고향에서 눈을 감으셨을까? 분명한 건 나의 그 시절 난 할아버지의 요플레와 격려로 버틸 수 있었고, 그 가슴 따뜻한 기억으로 나는 아직 간호사다. 이다음에 천국에서 할아버지를 만나면 그때 정말 감사했다는 인사를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오늘은 꼭 잊지 말고 요플레를 냉장고에 채워 놔야 할텐데....

  • 울산대 임상전문간호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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