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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간호문학상 - 수기 가작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8-12-19 오전 09:17:36

“당신의 일상 속 영웅은 누구인가요?”

송영관(미국 시카고 일리노이대 간호학 박사과정생)

 

저는 이제는 병원 현장을 떠나 머나 먼 미국, 바람의 도시 시카고까지 날아와 간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3년차 유학생입니다. 시카고의 의료복합단지인 이곳에선 스타벅스 커피를 한아름 들고 환한 표정으로 병원에 들어가는 간호사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미국 스타벅스에서 운영하는 ‘Everyday Heroes(일상 속 영웅들)’라는 프로그램 덕분인데, 이는 소방관, 경찰, 군인, 그리고 간호사들을 일상 속의 영웅들이라 칭하며 이들의 희생과 노고에 작게나마 보답하고 격려하기 위해 연중 할인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처럼 미국인들은 소방관, 경찰, 군인, 그리고 간호사들 덕분에 자신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면서 이들의 ‘영웅적인 희생’에 대해 기발한 방법으로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웅 만들기의 정서를 가지고 있으며, 또 이를 보는 ‘영웅’들은 이러한 시민들의 성원과 예우에 벅찬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도 혹시 소방관, 경찰, 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영웅 칭호를 달고 있는 ‘간호사’를 발견했을 때 눈이 번쩍 하셨나요? 한국에서 7년간 간호사로 일했던 제 자신도 이 낯섦 때문에 혹여 잘못 읽은 게 아닐까 싶어 되돌아가 확인을 했을 정도니 여러분이 느꼈을 그 생소함은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그런데 이번 계기를 통해 돌이켜 보니 제가 한국에서 매일매일 함께 일하며 현장에서 본 동료들의 모습 역시 분명 다른 일상 속 영웅들과 나란히 설 자격이 충분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서른 중반이 다 돼서야 공부를 시작해 지각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보니 뒤늦게 알아가는 것들이 더 익숙해 진 탓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일까요? 간호사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이런 앞 서 있는 인식이 아직도 제겐 낯설기만 합니다.

 

제 소개를 좀 더 드려야겠습니다. 제 이름은 송영관, 35세, 전직 남자간호사이며, 지금은 간호교육자를 지망하는 만학도입니다. 기억이란 희미해지는 것이기에 저는 이 글을 통해 제가 한국에서 간호대학을 다니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 하던 여정 속에서 느꼈던 우리 사회의 간호사에 대한 인식과 정서를 회상해 보고자 합니다. 또한 그 여정 속에서 제가 만났던 녹록하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소명에만 묵묵히 매진하고 있는 우리 일상 속 영웅들의 드러나지 않는 모습과 활약을 조명해보고 싶습니다.

“간호학과?!”

제가 간호대학에 들어갔던 2005년만 하더라도 남자인 제가 간호학과에 다닌다고 소개를 하면 택시기사 아저씨도, 오랜만에 만난 동창도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곤 다시 되묻곤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 후 군 병원에서 간호장교로 근무할 때도, 전역 후 사회에 나와 대학병원의 간호사로 근무할 때도 신기한 구경의 대상이 되는 것은 꽤 익숙해져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남자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남성적 문화가 강한 곳이다 보니 사관학교나 경찰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저 역시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막연하게 제복을 입는 직업군에 매력을 느껴 군인이나 경찰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평생을 두고 나라는 사람의 색깔을 결정해 주는 ‘직업’ 선택의 동기 치고는 제 마음의 소리 보다 남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를 더 의식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때부터 막연하게 우리 일상 속의 영웅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고3 수험 기간을 거치며 본격적인 진로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수학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이야기에 귀가 번쩍 띄었습니다. 바로 미국에선 간호사들에 대한 대우와 인식이 호의적이라 국내보다 나은 여건과 좋은 인식 속에서 저보다 약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당당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고생이었던 제게 간호라는 분야는 아주 생소한 미지의 영역이었지만 만약 스스로 고정관념만 깬다면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좀 더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단 한 번의 수업을 계기로 전 아무 망설임 없이 간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남성 직업인 군인이나 경찰을 꿈꾸던 소년이 대표적 여성 직업인 간호사로 인생의 항로를 180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우연인 아닌 숙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믿습니다.

 

처음 간호대학의 면접을 보러 갔을 때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남자 지원자가 있을 것을 예상 못했는지 누군가 제 이름을 ‘송영관’이 아닌 ‘송영란’으로 기재해 놓았기에 모두가 여학생뿐이던 그 대기실에서 '송영란’이 연달아 호명되어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됐을 때의 당혹감은 한 분야의 개척자로서 앞으로 제가 가야 할 길에 놓인 시련을 암시하는 복선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병원 실습을 하며 남보다 일찍 맛볼 수 있었던 사회생활에서는 학교생활과는 또 다른 시련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흰 실습복을 입고 있던 저를 의사로 오해하고 중매를 서주시겠다던 할머니, 제 정체가 궁금한지 뚫어지게 응시하던 환자들, 엄격한 위계질서의 병원문화 속에서 저를 다루기 난감해 하는 간호사 선생님들, 그리고 늘 남보다 눈에 띄는 만큼 항상 행동과 몸가짐을 각별히 조심해야만 했던 것 등…

간호사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기에 엄격하고 철저한 교육과정을 거쳐 양성되지만 간호사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60년대 서독 간호사 파견시절에 머물러있는 사람들도 많았기에 회의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남자간호사라면 극복해야 하는 마음의짐이 하나 더 느는 셈이었습니다. 어쩌다 ‘남자가 무슨 간호사야?’,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서 의사를 하지 그랬어?’하고 말하는 환자라도 만나게 되는 날은 힘이 빠지고 회의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과연 평생 이런 말을 들으며, 이런 시선을 받으며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앞날을 생각하다 보면 자신감도 사라지고 나약한 마음도 생기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렇게 졸업만을 기다리며 암울하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실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역.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모여 있기에 가보니 한 아저씨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지하철 사회복무요원들과 아주머니들이 아저씨의 팔다리에 하나씩 붙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불현 듯 얼마 전에 배웠던 심폐소생술 수업 내용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재빨리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 아저씨의 의식을 살폈습니다. 다행히 맥박과 호흡은 있었습니다. 저는 배운 대로 119에 연락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는 아저씨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며 의식 상태를 확인하는 동시에 조심스럽게 아저씨를 바르게 눕혔습니다. 또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기 위해 아저씨의 허리띠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습니다. 얼마 후 의료진이 도착하였고 아저씨는 무사히 이송되었습니다. 이내 지하철이 들어와 어수선한 현장을 뒤로한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난 저는 그제서야 눈을 감고 제가 방금 무슨 일을 했는지 가다듬어 볼 수 있었습니다. 심장이 뛰고,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남자면서 간호사를 지망하던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에 기가 죽어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나약한 존재이던 제가 침착하게도 한사람의 위급한 상황에 무언가 이바지 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늘 그늘졌던 제 마음에 알 수 없는 환희가 드리웠습니다. 그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먼 길을 돌아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저를 이끌어왔던 그 섭리를. 남을 위해 살 수 있는 고귀한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항상 남과 비교하며 움츠렸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이 일이 있은 이후 제가 가야 할 길이 확실히 보이게 되었고 확신 없이 떠듬떠듬 걷던 걸음마에는 점차 힘도 붙고 이내 주위도 둘러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여태껏 보지 못했던 제 주위 동료들의 영웅적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졸업 후 군 병원에서 간호장교로 처음 근무를 시작했던 2009년엔 유독 비상상황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신종플루의 유행으로 전 근무자들이 휴가와 외출·외박이 통제되기도 했고, 특히 이듬해인 2010년에는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인해 군 병원은 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근무 태세를 유지하여야만 했기에 우리는 늘 긴장 속에서 제한된 생활을 하여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평이나 힘든 내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외부 병원의 진료를 볼 수 없는 병사들에게 간호장교는 군 병원에서 유일한 돌봄을 제공해 주는 존재였기에 계속된 근무에도 아플 수도, 지칠 수도 없이 매일매일 자신은 물론 아픈 병사들까지 짊어지고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초인적인 그들의 의지와 책임 의식을 보며 평소엔 같이 웃고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내 동료들이 간호사 옷만 입으면 마치 복장을 갈아입는 순간 변신하는 슈퍼맨 같아 보였습니다.

사회에 나와 제가 학생 때 실습을 하던 학교 병원에 간호사가 돼 돌아와서는 다시 한 번 동료들과 함께 힘을 합쳐 환자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병원을 점검하고 대비하는 의료기관인증평가를 통과해내고,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 확산사태에 맞서 사투를 벌일 수 있었습니다.이 모든 과정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시민들을 위해 감당한 희생이 바로 영웅들의 이야기 그 자체입니다. 비록 병원은 아니지만 학교로 돌아와서 만난 간호학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조교 일을 하고, 타지에서 홀로서는 법을 배우며 간호학의 발전과 자신의 분야에서 정점을 찍기 위해 젊은 날의 수 년을 간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옆에서 지내다 보면 진심으로 동료를 존경하게 되고 또 많이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에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늘 우리의 곁을 지켜 주었던 이들에 대한 감사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웅 만들기의 정서가 아직 자리잡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동료들은 아랑곳없이 각자의 노력이 꽃을 피울 그 날이 올 때까지 일상 속에서 기쁨을 찾는 법을 배우고 좀 더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세상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영웅이 되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 역시도 미약했던 제 자신이 어엿한 한 간호사로서 발돋움하며 경험하고 때로는 동료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던 존엄한 가치들을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역량 있는 간호사들을 양성하는 방법과 전략들에 대한 지식에 잘 녹여내어 한국 시스템에 도입함으로써 차세대영웅들을 배출하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간호사들에 대한 한국의 인식과 처우를 미국의 그것만큼 향상시키는 데 공헌하고 싶습니다. 저는 제 어렸을 적 바람대로 군인이나 경찰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일상 속 영웅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간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결국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아직도 간호사들을 우리 일상 속 영웅이라 부르는 것이 망설여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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