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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간호문학상 소설 당선작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6-12-16 오전 10:32:45

꿈, 노래

박진숙(세종시 한마음효요양병원)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5시 반. 저녁 약속까지 두 시간 넘게 남았는데 마음이 바빠졌다.

중학생반의 보충수업은 중간 기말 시험 기간 한 달 전부터 주말 특별보충을 한다. 보습학원에서 한 과목 강의할 때와 달리 거의 모든 과목을 지도해야 하기 때문에 본사에서 제작한 평가문제집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미리 풀어오도록 나누어준 기출 예상문제를 각자 채점하게 하고 틀린 문제 확인하면서 중요한 내용과 변형문제까지 언급해주는 것이다. 시험지에 색연필, 형광펜 표시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일어나 아이들에게 오렌지주스 한 잔씩을 주었다.

 

‘잘 먹겠습니다’하는 2학년 네 명의 여학생들은 공부방 과외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만나 정이 꽤 들었다. 눈에 띄게 성적이 오르는 기적을 부리지는 못해도 아이들도 편안해 하는지 공부방 과외에 큰 불만은 없어 보인다. 자기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관리교사가 뭐라고 하든 이 팀은 그대로 가는 게 좋을 텐데.

주말 보충도 늘 하던 대로라, 예정한 시간보다 30분이 더 지났지만 아이들도 그러려니 한다. 그래도 오늘은 이 정도로 마쳐야 할까보다.

 

지해를 재촉해서 머리를 감긴다. 키가 또래보다 10센티 정도 못 미치고 난시가 심해 쓴 안경 때문에 이마가 약간 돌출되어 보인다. 주니어용 브래지어를 챙겨 입히고 아이가 좋아하는 빨간색 봄잠바 대신에 연분홍 카디건을 입혔다. 일일이 챙기지 않으면 아이는 학교 갈 적에도 속옷을 입지 않고 갈 때가 있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길던 머리를 단발로 잘랐는데 처음에는 상큼해보이더니 지금은 아이의 표정없는 얼굴이 더 답답해보이는 듯해서 한 가닥으로 묶어주고 있다. 지해 머리를 묶고서 오늘은 그 위에 분홍 리본 밴드로 다시 감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입고 나갈 옷을 고르다가 혼잣말로 궁시렁거렸다. “옷을 좀 사야하나…….” 외출복을 새로 장만하는 데 신경을 쓰지 못하고 살다 보니 외출복이라고는 대부분 낡은 옛옷들이었다. 더군다나 아이들 수업이라서 편한 옷만 찾다보니 막상 이런 날에는 입을만한 옷이 없기도 하다. 넉넉한 살림이라고는 못하지만 옷 한 벌 사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내고 있다고 느끼지는 못했는데도 쇼핑 같은 걸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항상 똑같은 옷만 입게 되는 것도 있다.

 

아빠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걸 본 모양이었다. 지해가 허겁지겁 일어나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다시 일어나려는 아이의 손목을 잡고, “이제 그만!” 하다가 이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장미꽃이었다. “생일, 축하하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표정으로 남편이 말했다. 고맙다면서 받아드는 그녀는 스스로 못내 어색해하고 있었다.

남편이 지해한테 예뻐졌네 하면서 손을 내밀자 지해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옆자리로 가서 바싹 붙어 앉았다. 유달리 자그마한 몸집에 그녀의 신경이 미쳤다. 지해는 아빠 핸드폰을 어느새 손에 넣고 잠금 패턴을 풀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또다시 “이제 그만” 주의를 준다. 남편이 핸드폰을 숨기고 지해가 뒤지는 장면이 이어졌다. 큰딸 지영이가 아니었으면 아이 손목을 잡고 끌어다 옆자리에 앉혔을 것이다.

 

막 도착한 지영이한테서 가벼운 향수 냄새가 났다.

다섯 개의 초를 생일 케이크에 꽂으면서 지영이가 말했다.

“엄마, 이제 나이 더 먹지 마!”

아빠를 따라 나갈 때 지영이는 엄마를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굴었다. 아빠가 불쌍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그녀는 옆에 앉은 지영이의 어깨를 가볍게 안았다. 2년이나 지났구나.

 

“본과수업은 할 만하니?”

남편이 지영이한테 물었다. 그녀가 묻고 싶은 것을 남편이 묻고 있었다.

“이 녀석이 기숙사 들어가고서 아예 소식을 끊어버렸거든.”

지영이 눈치를 보면서 그렇게 변명처럼 덧붙였다.

 

어제 저녁 늦은 시간에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녀 생일이니 밥이라도 먹자고. 그러면서 지영이가 의대 본과 시작하면서 기숙사로 들어갔는데, 양말 하나 안 남기고 다시 안 올 것처럼 전부 챙겨 가버렸다고. 지영이와 통화가 될지 모르겠으니 대신 연락해 달라 하고선 미안하다는 말을 앞뒤없이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술을 먹고 있거나 취한 상태로 집에 오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지영이는 최근 그녀의 집에 들러 아침밥을 먹고 바로 학교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해 핑계를 대면서.

 

“죽을 맛이지 뭐.”

지영이는 남편이 아니라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엄마! 얼굴에 신경 좀 쓰지 그래?”

“왜? 심하니?”

지영이가 입을 쭉 내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나이가 이젠 늙을 때도 됐지. 알았어, 신경 쓸게.”

그렇게 혼잣말처럼 대답하는데 지해가 느닷없이 끼어들었다.

“아침에 엄마가 전화도 안 받고 잠만 자서 내가 엄마 깨웠떠!”

“어젯밤에 잠을 좀 설쳤더니. 늦잠을, 좀 잤나봐! 얘는 뜬금없이.”

그녀의 말이 어지러웠다. 남편 전화를 받고 한참을 뒤척이다가 결국 한동안 잊고 살았던 졸피뎀 수면제 한 알을 먹고서야 잠이 들었던 것이다.

 

“당신은 어때?”

그녀가 화제를 바꿨다.

“뭐 그렇지, 허허. 내 걱정을 하긴 하나보네. 회사가 사정이 좋아지긴 했지. 그 덕에 나도 그럭저럭.”

그렇게 말하고는 또 설핏 웃는다. 그가 입고 있는 봄잠바는 깃이 없는 스타일인데 뜻밖에 잘 어울렸다. 젊어 보이기도 하고.

“공부방이 잘 된다면서? 공부방이 잘 된다는 게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공부방에 맞는 애들이 있는 거 같애, 우리 공부방 보면. 앞으로도 잘 될지 걱정이 없는 건 아닌데.”

 

아침에 온 전화는 관리교사였다.

오후에 중학교 남학생 한명, 부모님 모시고 공부방을 방문해도 되겠냐고 묻는 전화였다. 중학교반은 현재 2학년 여학생 4명으로 짜여진 반이 있고 더 반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수업이 끝나면 아무리 빨라도 일곱 시 반이고 그때서야 늦은 저녁을 해서 지해와 먹고 잠깐 산책이라도 하면 열시가 넘어가기 일쑤였다. 게다가 남학생이라니.

남학생이라는 말을 하면서 지해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아이는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엄마, 그러다가 회사에서 학생들 안 넣어주면 어떡하려고?”

통화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영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게. 관리교사하고는 잘 지내는 게 좋은데 좀 걱정스럽긴 해. 학생들 골라 받는 거 아니라면서, 중학생은 이제 안 받을 생각인가 보죠, 그러더라. 어쩌겠니? 그래도 중학생반을 늘릴 수도 없는데. 개인 공부방은. 교재 문제도 그렇고 자신도 없고. 글쎄…….”

 

* * *

 

지해가 1000그램도 채 되지 않은 채로 27주 만에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도 그녀는 설마 했었다. 남편은 큰 애와 같은 알 지, 바다 해라고 이름을 지어 와서 자기가 좋아하는 바다와 그녀가 좋아하는 해가 만난 이름이라면서 상기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태어난 지해가 정상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쯤, 우리가 선택한 꿈은 캐나다 쪽 이민이었다. 남편은 학원사업을 시작했다. 현지 정착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동안은 계획대로 되어 가는 듯했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다 그렇듯이, 빚만 남기고는 학원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그가 그랬다. 나는 사업체질이 아닌가 봐, 나라고 별 수 있나. 되는 대로 사는 거지. 원하는 대로 될 것 같으면. 사는 게 그런 거지.

 

그녀는 남편을 침대 밑으로 밀어냈다. 놀란 표정이었다. “다른 여자 만나도 좋으니까 내 몸에 손대지 마!” 참고 참았던 말이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미안해.”

“미안하다니, 미안하다니? 뭐가 미안한데?” 그의 음성이 커졌다. 그리고는 정말 안방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 날부터 방에 빈 소주병들이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술을 먹고 마누라를 두들겨 패기를 해, 마누라가 자고 있는 방 근처도 안가고 혼자 조용하게 찌그려져서 잠만 자는데 뭐가 문제야?” 그가 웃었다. 그녀는 그런 남편을 계속해서 볼 자신이 없었다.

 

지영이가 의예과에 합격하고 그의 어깨에 오랜만에 힘이 들어가 있을 때였다. 우리 따로 살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마침 지영이는 친구 만나러 나가고, 지해도 제 방에서 뭘 하는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가 사들고 온 소주 한 병이 거의 비워져 가고 있었다.

“지금도 따로 살면서 뭘 새삼스럽게. 그냥 이혼하지 그래?”

그의 표정이 오히려 덤덤했다. 이혼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했더니 들고 있던 소주잔을 사정없이 바닥으로 내리쳤다. 지해가 놀래서 뛰어 나오자 그도 놀란 눈치였다. 우선 그와 지해를 함께 지해 방에 몰아넣고 오리걸음으로 그 작은 유리파편들을 닦아냈다.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것도 같았다. 그러는 동안 지해는 몇 번이나 자기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지만, 남편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하던 그가 닷새 만에 큰딸 지영이를 데리고 방을 얻어 나갔다. 두 사람을 보내고 지해와 그녀는 그보다 훨씬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얻어서 이사했다.

베이커리 주인아주머니도 문방구점 할아버지도 그리고 수군대면서 온갖 말들을 부풀렸을 아파트 사람들을 생각하면 단 하루도 그 곳에 살고 싶지 않았다.

 

그 일을 알게 된 건 2년 전, 지해가 5학년이던 그해 가을이었다. 그동안 벌여놓았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각자 직장을 얻어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을 때였다. 지영이는 수능시험이 코앞이라 주말에도 기숙사에 있어야 했다.

지영이 학교 앞까지 가서 아이에게 잠깐 밥을 먹여 들여보내고 나머지 세 식구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강호 엄마한테서 전화가 온 것은 그 때였다.

하이네켄 한 병씩을 시켜 놓은 자리에서 강호 엄마가 한 첫 마디는 학원 강사를 꼭 해냐 하느냐는 것이었다. 지금 이 나이에 어디 가서 그런 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싶게 그녀는 새로 시작한 학원 강사 일에 만족하고 있었다. 저녁수업을 끝내고 오면 10시가 훌쩍 지나 있긴 하지만 대신 아침시간에는 여유도 있고, 무엇보다 늦은 나이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그녀 스스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귀한 시간인데. 그런 직장을 앞뒤 없이 그만두라니.

 

강호 엄마는 지해가 2학년 때 자모로서 만났는데 같은 아파트 이웃이었다. 지해에게 남다른 관심을 보여 주었고 강호 역시 남자아이였지만 지해를 여동생처럼 보살펴주어서 그녀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남편은 직접 스타렉스 12인승으로 가까이 지내는 엄마들과 아이들을 태워서 나들이를 다니기도 했다. 학원을 경영하고 있었을 때라서 아이들 다룰 줄을 알았다.

아이들과 축구 같은 것을 할 때면 지해는 부자연스러운 걸음으로 뜀박질을 하겠다고 해서 그럴 때면 항상 무릎보호대를 채워주었다. 남자아이 3명 여자아이가 지해 말고 한 명 더 있었는데 남자아이 하나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림그리기에만 마음을 보일 뿐 말도 없고 도통 다른 곳에는 관심이 없는 아이로 정규과정을 소화하기 어려워서 지해와 함께 사랑반이라고 이름 붙여진 특별반에서 따로 수업을 받았다. 어쩌다 한반에 지해 같은 아이가 둘씩이나 배정된 거냐고 담임한테 물었더니 그 때 학년주임이면서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던 담임은 유쾌하게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같이 수업 받는 다른 아이들도 특별한 교육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나로서는 반겼어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연스럽게 배우게 해주는 더없이 좋은 기회인 셈이죠.”

 

자폐증 아이는 외견상으로는 평범하고 귀엽기까지 했다. 강호가 마침 반장이어서 자연스럽게 강호 엄마가 자모회장이 되는 바람에 학교 행사에 그녀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었다. 강호 엄마가 그녀를 유달리 챙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만나고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정도로 붙임성도 좋았다. 키도 크고 살집도 있는 강호 엄마는 그녀를 진심으로 챙기던 사람이었다.

 

강호 엄마는, 지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지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파트 상가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돌아다니는데, 한두 번은 그러나보다 하지만 이제는 이 사람 저사람 입에서 지해 이야기를 입에 올린다고. 우연히 빵가게에 들렀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지해한테 대놓고 집에 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었단다. 주인 말로는 처음에 안 된 마음도 있고 해서 시식용 빵 같은 것도 일부러 챙겨주고 했더니 이제 매일같이 와서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물론 그 빵가게만 그런 게 아니었다고. 지하수퍼며 문방구며. 문방구 주인 할아버지는 소리를 질러서 내쫒기까지 한다고 했다. 그 말만으로도 기막히는데 늦은 시간까지 놀이터에 혼자서 놀고 있는 걸로 아파트 주민들이 수군거린단다.

 

그녀는 작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102동에 사는 이가 하루는 교복 입은 중학교 머슴애들이 놀이터에 들어와 있길래 너희들 집에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하냐고 했더니 후다닥거리며 도망을 가더란다. 그래서 재들이 무슨 나쁜 짓을 하다가 저러나 했는데 글쎄, 지해가 그 시간에 거기에 같이 있더라고. 소문이 이상하게 나서 그 남학생들이 지해한테 이상한 장난을 했다는 둥. 심지어 지해가 그러는 걸 좋아한다는 소문까지 났다고 했다.

 

강호 엄마는 눈물을 보이면서 말했다. “언니, 지해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파요. 지해가 남자아이였으면 강호도 잘 데리고 다니면서 놀아도 주었을 텐데.” 옆자리로 옮겨와서 고개를 테이블 아래로 처박고 있는 그녀의 등을 쓸었다. CCTV를 확인할 수 있을 거라는 말에도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강호 엄마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102동과 103동 사이에 있는 놀이터는 그 시간까지도 대낮처럼 환했다. 아무도 없는 빈 놀이터에 CCTV가 불을 깜박이면서 놀이터를 지키고 있었다. 겁이 많은 지해는 분명 환한 곳만 찾아 다녔을 것이다. 102동 103동 주민들이 놀이터 앞 보도블록을 대부분 이용하기 때문에 이곳이 덜 무서운 곳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앉아 있었을 것 같은 긴 나무의자 두 개가 등나무 밑에 나란히 보였다. 끔찍한 장면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모습도 떠올랐다. 강호 엄마는 지해 아빠를 원망하듯이 말했었다. 어떻게 지해 혼자 집에 있다는 거 알면서 매일같이 그렇게 늦을 수 있냐고. 집에 데려가서 저녁밥을 챙겨 먹인 적도 있는데, 이젠 집에 가야지 했더니 아빠가 아홉시 쯤 오신다고 하더라고.

그녀는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아파트를 다시 빠져나와 하염없이 걸었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녀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처럼.

 

지해를 낳던 날이었다. 친정식구들이 급하게 소식을 듣고 찾아 왔는데 모두가 어두운 표정들이다. 친정엄마는 눈물을 감추질 못하고 연신 손수건으로 훔쳐내고 있었다. 성격 좋은 남편이 “장모님, 요사이 의술이 좋아서 아무 탈 없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그때도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지영이가 태어나고 겨우 걸음을 뗄 무렵 둘째가 바로 들어섰을 때 그녀가 우겨서 임신 8주에 중절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문에 조산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다가 정말 지해가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는 항상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시시때때로 그녀를 괴롭혀 왔다.

 

누군가 그녀를 위로한다고 했던 말이 있다. 신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세요. 분명 살아가면서 지해가 힘이 될지도 모릅니다. 신은 공평하시니까요.

 

* * *

 

남편이 먼저 일어나 계산대로 가고 그녀는 풀어놓은 스카프를 다시 목에 두르고 막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지영이가 울상을 하고 그녀를 찾았다. 지해가 신발을 신다 말고 바닥에다가 방금 먹은 음식들을 죄다 토해 놓았던 것이다. 바깥 홀에 마침 다른 손님이 없어서 빠르게 냅킨을 한 움큼 뽑아다가 토사물 위로 덮고 비닐 팩을 얻어서 정리를 했다. 그리곤 지해를 화장실로 데려가서 입술 주변을 닦아주고 데리고 나왔다. 식당 현관문 근처에서 지영이와 남편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많이 먹는다 싶더니. 걱정하지 마. 다 토했으니까 속은 편할 거야.”

 

지해가 내 손을 뿌리치고 지영이 손을 꼭 쥐고 놓질 않았다. 지영이가 잠깐 당황해하더니 엄마 집에 가서 자고 가겠다며 지해를 데리고 그녀의 차에 올랐다. 그걸 보고만 있던 그가 그녀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괜히 오늘 보자고 했나. 내일 약속은 취소해도 되는데.”

토요일에 약속을 잡은 이유가 다음날 자신에게 다른 약속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 어젯밤 전화가 기억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었다.

“열도 조금 있는 거 같던데 괜찮을까? 미안해.”

그가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녀가 그를 밀어내면서 했던 그 말을 지금 남편이 하고 있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그녀는 그제서야 남편을 편하게 쳐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로등 불빛으로 그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요사인 지영이가 나한테 보단 당신한테 더 자주 가는 거 아닌가 싶어. 녀석, 무슨 생각인지 말도 안하고.”

그녀가 지해 때문에 챙기지 못했던 꽃다발을 안겨주면서 그가 다시 웃었다. 고맙다는 말이 너무 상투적일 것 같아서 잠깐 말을 고르다가 오히려 아무 말도 못하고 뒤돌아섰다.

 

남편한테서 받은 장미꽃을 유리꽃병에다 옮겨 꽂다 말고 한참을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꿈속에선 후리지아가 놓인 식탁이었다. 봄 햇살이 하나 가득 들어차 있어서 노란색 수채화 물감을 풀어 놓은 듯했다. 그 속에 남편이 있었다. 꿈에서 본 그의 모습이 조금 전에 보고 온 그 모습이었던 것도 같고. 아침에 꾸다 만 그 꿈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다.

욕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로 긴 시간을 들여 샤워를 했다. 두통약 한 알을 챙겨 먹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얼굴이 다시 아른거렸다. 그녀가 그를 밀어내던 날, 방문을 나가면서 그가 했던 말이 새삼 가슴에 와 얹혔다. “너도 참, 유별스럽다.”

 

아이들이 자는 방문을 열어 보았다. 지해 침대에서 지영이가 동생을 꼭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그녀의 손등에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툭하고 떨어졌다. 입고 있던 면소재 낡은 원피스 위에 카디건 하나만 걸치고 신발을 신는데 민다리가 눈에 거슬렸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닫는 그녀의 손끝에서 작은 떨림을 느꼈다. 102호 그녀가 사는 집 현관문에는 회사 로고가 찍힌 공부방 브로슈어가 달려있다. 그녀는 일부러 손을 뻗어서 2년이라는 시간을 털어내듯 먼지를 털고는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그녀의 모닝 경차에 시동을 켰다. 시동과 함께 항상 틀어놓는 김광석 노래, 너무 멀리 서 있는 내 사람이여, 끝부분이 막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흠칫 놀랬다. 속마음을 들켰을 때의 기분이다. 하지만, 이제 그 또한 별로 중요한 거 같지 않았다.

 

좌회전 신호를 받고 빌라가 있는 골목길을 들어섰다가 잠깐 멈추어 섰다. 깊은 심호흡을 하고 숨고르기를 했다. 2층 그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이지만 여기서 그냥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초인종을 조심스럽게 눌렸다. 아무런 소식이 없다. 현관 번호 키를 천천히 누르기 시작했다. 꿈쩍하지 않는다. 여기 처음 이사하던 날, 남편이 전에 살던 집 번호와 같게 해두겠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한 번 더 네 자리 숫자를 차례대로 눌렀다.

 

열리지 않는 문을 뒤로 하고 나오는데 지독한 한기가 들었다. 한번 시작된 오한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안에서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노래를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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