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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간호문학상 수기 당선작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6-12-16 오전 10:21:05

내 일상의  아름다운 풍경들

김혜선(국립중앙의료원)

 

내가 병동 간호사로 일하던 때, 데이 근무를 위해 집을 나서는 시간은 새벽 5시 30분. 겨울에는 캄캄하지만, 여름에 가까울수록 어스름해지는 새벽하늘을 보며 출근할 수 있었다. 검은 하늘에 조금씩 회색 기운이 돌다가 차차로 연주황 빛으로 물들어가며 밝아지던 그 하늘.

밤이 어두움을 밀치며 아침과 인수인계하는 그 찰나의 어둑어둑함을 나는 사랑한다. 구름과 하늘, 그리고 아침 해의 오묘한 어울림을 보며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그 길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 풍경은 나에게 ‘이 아침에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선물을 주시는군요.’라고 신께 감사하는 출근길을 만들어준다.

소화기 병동 근무 시절. 병동에는 황달로 인한 갈색 빛의 얼굴과 심한 복수로 배가 남산만한 간경화 환자분들이 많았다. 간경화 말기 진단 하에 입원하셨던 A 환자분. 그분은 복수가 많이 차서 항상 숨이 차고 힘들어하셨지만 온화함만은 잃지 않으셨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A 환자분은 입원한지 며칠 되지 않아 간성혼수에 빠졌다. 약물 관장을 수차례 해도 암모니아 수치는 떨어지지 않았고 의식 또한 명료하지 않았다. 남편분이 주로 간병을 하셨는데, 내가 밤 근무를 하던 그날은 대학생인 첫째 아들과 군복을 입은 둘째 아들까지 곁을 지키고 있었다. 두 아들이 “엄마, 눈 좀 떠봐. 나 왔어, 엄마. 엄마 보러 나 왔다고..”라고 울먹이며 어깨를 흔들어보지만 엄마는 끙끙거릴 뿐 대답이 없었다.

심폐정지가 되어도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겠다는 DNR(Do Not Resuscitate) 동의서를 이미 받은 상태였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환자 상태 모니터와 보호자 분들 곁에서 같이 환자분을 지켜봐 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출근했을 때 이미 혈압은 60-70대를 오가고 있었고, 그마저도 서서히 떨어져가고 있었다. 모니터의 심박 수가 점점 떨어지고 심전도의 파형이 점차 잦아들 때 세 남자는 여인을 부둥켜안고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굵은 눈물을 흘리며 숨죽여 통곡했다. 그 울음소리와 모습은 창밖의 까만 밤하늘과 함께 내 마음을 더 슬프게 했다.

결국 환자는 더 이상 혈압도 측정되지 않고, 심전도에는 아무런 파형이 나오지 않는 Flat이 되었다. 살아있다는 징후가 남아있지 않은 것을 여러 번 확인한 당직의사는 사망 선언을 했다. 환자분은 종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그날 밤 하늘나라로 가신 것이다.

나는 그제야 환자분 몸에 달린 심전도 전극을 하나하나 빼고 모니터 화면을 껐다. 최대로 올렸던 산소의 압력을 낮춰 완전히 잠그고 환자의 코와 입에 씌워졌던 산소마스크를 벗겨냈다. 이어 팔목에 붙여놓은 반창고를 떼어내고 정맥주사를 제거하자 혈관에서 이내 붉은 피가 주르륵 빠져나왔다. 아직 생명의 온기가 남아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동료 간호사가 환자분의 바지를 살짝 내리고 소변 줄을 빼냈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정리해주고 이불을 덮어드리자 이제 의학적인 부착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환자분의 손을 쥐고는 ‘좋은 곳으로 가세요.’라며 마음을 모아 나직이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세 남자의 흐느낌은 점점 격해졌다. 장례식장 직원들이 환자분을 모셔갔고 그 뒤를 세 남자가 뒤따랐다. 대상만 다를 뿐, 수없이 마주한 모습이지만 볼 때마다 마음이 먹먹하다. 환자분이 떠난 자리에는 처치에 사용됐던 부속물이 여기저기 뒹굴고 휑했다. 한 사람의 생을 보내고 그 자리를 정리하는 내 마음에도 세찬 바람이 부는 것처럼 시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시린 마음을 다독이며 추스른다.

작년, 병동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신경과 병동 그것도 병동 안의 중환자실을 담당할 때였다. 저녁 투약을 위해 병실에 들어가는 순간, 정면의 병실 창문 밖으로 장관이 펼쳐졌다. 국세청 건물 뒤로 저녁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주황 빛깔로 변하던 찰나의 순간. 그 빛은 광활한 하늘뿐 아니라 병실까지 물들여 주었고 마치 나와 병실에 있는 모든 이들을 축복해주는 듯했다.

창가 자리에 있는 환자분에게도 그 풍경을 보여 드리고 싶었던 나는 “저기 저녁노을 좀 보세요, 무척 예쁘네요.”라고 말했다.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했던 할아버지를 낑낑거리며 창문 쪽으로 향해 앉혀드리고 침대에 걸터앉아 저녁노을을 함께 바라봤다. 평소 그 환자분은 멍하니 누워 천장을 응시하며 별 움직임이 없으셨는데, 내 제안에 못 이겨 잠시 창밖의 노을을 보셨고 그 풍경은 아쉽게도 금세 사라졌다.

수분에 불과했던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그 할아버지의 눈빛이 가끔 떠오른다. 약을 드시면서 하늘을 바라보시던 눈동자에는 그분이 여태 살아오시면 담았던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계신 것 같았다. 아름다운 풍경을 같이 보는 건 나와 환자분 사이에 유대감을 만들 뿐 아니라 바쁜 병동 근무 중에 잠시나마 힘든 마음을 치유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자연은 이처럼 우리에게 때로는 경외감을 주고 때로는 감동을 선물한다. 하지만 나는 정현종의 시처럼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더 아름답다’ 고 또 그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이란 여러 가지 깊이와 색깔을 가지고 있다. 병동에서 간호사와 환자로 만나는 특수한 사이이지만 나는 항상 궁금증을 갖게 된다. ‘이 할아버지의 지나온 길들은 어떠했을까. 어떤 삶의 궤적들을 만들며 그 연세까지 오신 것일까. 또 나는 그에 비추어 어떤 빛깔로 내 삶을 수놓고 있는가‘라고 말이다. 이렇게 병원은 사람이 주인공이자 풍경이 되는 곳이다. 또 평화롭지 않은 상황에 놓인 환자들이 풍경이기에 가슴 아프고, 따뜻하고, 슬프고, 또 행복한 이야기가 그치지 않는 곳이다.

내가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외할머니가 입원해계신 병동에서 간병을 할 때인 20살 무렵이었다. 간호사실에서 밤을 지새우며 분주히 일하는 간호사의 모습과 창밖의 새벽 풍경이 묘하게 뒤섞여진 그 상황이 참으로 의미 있게 다가왔다. 모두들 잠이 든 시간에 불을 밝히며 일한다는 것 그것은 ‘소명’없이는 안 되는 일처럼 내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입사 후 근무를 시작하면서 삼교대의 특수성이 몸 상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럼에도 그때의 설렘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새 출근한 데이 근무 간호사인 민정이에게 인수인계를 한다. “아구 선생님, 밤 동안 고생 많이 하셨어요.” 하며 위로를 해주고 나는 “여치(민정이의 별명), 나 너무 힘들었어.”라고 엄살을 떨며 하소연한다. 그렇게 서로를 다독이는 동료도 내게는 큰 힘이다. 퇴근 후 같이 일한 윤경이와 병원 근처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는다. 밤새 한숨도 못 쉬고 일한 터라 몸은 땅속으로 꺼질듯하고 머리는 멍하지만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집에 와서 씻고 누우니 오전 11시경이다. 환하게 뜬 해를 두고 난 잠에 들어간다. 몸은 피곤하지만 머릿속에는 하늘나라에 가신 A 환자분에 대한 생각이 맴돌아 깊은 잠을 못 이룬다.

잠에 깨어나서도 한동안 이불 속에서 비비적거린다. 그러다가 무거운 몸을 일으켜 현관문을 열어본다. 저녁 6시가 넘어가는 시간, 해가 지려고 한다. 우리 집 계단에서 바라보는 해지는 광경은 때마다 시마다 어쩌면 그리도 다른 아름다움을 펼쳐 보여주는지 참 신비롭다. 다시 밤 근무를 나가야 하는 나에게 기운을 주는 이 풍경에 감사하고, 또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스스로에게도 고맙다.

치열하게 일하고 서로에게 기쁨이었던 우리들이 같이 만나 일했던 게 벌써 십년 정도가 되었다. 우린 지금도 정기적으로 만난다. 언젠가 “그때처럼 일하라고 하면 절대 못하겠지만 지금 우리 멤버이면 나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세영이가 이야기했고 우리 모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좋은 이들과 일했던 시간들은 지금 되돌아보아도 서로에게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있다.

그 아이들과 오래간만에 만나기로 한 날이다. 약속 장소로 가려던 순간, 응급시술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현재 심혈관조영실에서 근무하는 나는 퇴근 후 온콜(비상대기) 근무가 격주로 있는데 딱 그때였던 것이다. 일행에게 연락 후 급히 준비를 했다. 좀 전에 방송으로 코드블루(의학적 응급상황을 알리는 용어)가 떴었던 그 환자분이라고 한다.

환자분 상태는 안 좋았다. 심폐소생술과 강심제 투여로 잠시 심장기능이 돌아왔으나 얼마 후 또 맥박이 잡히지 않아 다시 심폐소생술 시행 및 제세동과 기관 내 삽관까지 했다. 그 상태로 환자분은 인턴 선생님이 짜주는 Ambu(수동식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의료진 열 명 정도와 함께 조영실로 도착했다.

의식은 없었다. 검사용 침대에 옮기고 바로 심장 마사지가 시작되었고 “에피(혈관수축, 심장 수축력 증강제) 1MG, 4분마다 주세요.”라는 구두처방에 나는 재빠르게 1MG을 투여했다. 그리고 환자의 팔에 혈압 커프를 감고 심전도 전극을 붙이고 소독포를 덮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4분이 다가왔다. 또 에피네프린을 주사기에 재서 투여. 그 사이 순환기내과 전문의는 대퇴동맥을 천자하여 관상동맥 조영술을 진행했고 인턴 선생님들의 심장 마사지는 교대로 계속되었다. 흉부외과팀까지 합류하여 ECMO(체외막 산소 공급 장치) 연결까지 했다. 그렇게 두 시간 반 정도의 시술 뒤에 환자분은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조영실은 쓰나미가 지나간 듯했다. 한 명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 열댓 명의 의료진들이 함께 했던 자취였던 것이다. 피 묻은 시트, 심장마사지를 위한 발 받침대, 가래를 빼내기 위해 사용했던 카데터들과 일회용 장갑들이 바닥에 벗겨진 채 뒹굴고 있었다. 벽에는 핏물과 가래가 고여 있는 흡입기 통이, 책상에는 팽개쳐 놓고 찾아가지 못한 의사 가운과 여러 개의 주사기와 바늘들, 환자에게 투여한 수십 개의 빈 앰플통들이 어지럽게 섞여있었고 그 사이에 급박한 상황을 휘갈겨 써놓은 나의 기록지가 놓여있었다.

바닥의 피를 닦고, 시트를 갈고, 시술에 사용된 세트를 세척하고, 앰플들과 주사기 등을 버리고, 응급카트를 정리하는 중에 아까 못 만난 나의 천사들이 왔다.

“배고플까 봐 먹을 것 좀 사 왔어. 우리가 들어가서 도와줄까?” 라고 위로하는 천사들. 그녀들의 방문에 힘을 얻고 나는 다시 마무리를 한다. 밤 열시를 훌쩍 넘기고 나서야 불을 끄고 나선다. 깜깜한 이 곳,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사의 바다를 넘었던 흔적은 전혀 없다. 병원현관을 나서자 휘영청 밝은 달이 나를 바라본다. 그 달빛에 나의 피곤함은 사그라지고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에 감사하다.

“어제, 선생님 힘들다고 같이 일한 간호사들이 와주니 보기 좋더라고요 부럽고요.” 조영실에서 같이 일하는 의료 기사인 정종이 나에게 이야기한다. “부럽지. 내가 무지 사랑하는 애들이야. 사람 사는 재미가 이런 거 아니겠어?”라며 나는 너스레를 떤다. 그렇다. 감사하니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 주변에 이렇게 반짝이는 별들이 있으니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빛 고운 풍경들.

내 일터에서 매일 목격하는 특수한 모습이 다른 일터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많이 담고 있는 이유는 나 그리고 내 주변의 따뜻한 이들이 그 풍경의 일부가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황동규 시인의 시구절처럼 내 일터의 하루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것일지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풍경은 계속해서 펼쳐질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퇴근을 하다 집 앞 계단에 앉아 여전히 매력적인 하늘과 마주한다. 그 풍경에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나를 토닥이다가 슬며시 그곳에 말을 건네 본다. 내 손길이 머물다 좋은 곳으로 가신 그분들께, ‘그곳에서 평안하신지요?’라고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아름다운 하늘 한 자락 데리고 집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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