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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간호문학상 수필 가작
노란 수선화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5-12-16 오전 11:21:50
김라경(뉴질랜드 St.George's Hospital)


칠월의 겨울이다. 나뭇가지가 목화솜을 이고 있다. 어디론가 바쁘게 뛰어가는 발자국도 요란하다. 나는 아직도 커튼이 쳐진 방안에서 보리새우마냥 오그리고 있다. 시계의 알람이 앰뷸런스처럼 앵앵된다. 여간해서 눈꺼풀이 떨어지지 않는다. 주인아줌마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씩 올라간다. 출근시간을 염려해 어머니처럼 늘 깨워준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야간 근무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인계를 받는다. 밤사이 환자들에게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다. 저마다 투덜대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내가 파트타임제로 일하는 요양원은 그야말로 희곡무대를 연상케 한다. 정상호흡을 하면서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며 억지를 부린다. 손을 잡고 놓지 않으니 보호사들만 종종걸음이다. 시도 때도 없이 비상 호출기를 울린다. 부리나케 달려가면 태연하게 앉아 용변으로 해작질을 하고 있다. 벽면에다 온통 황금 벽지를 발라 놓고서도 한사코 기저귀 차기를 거부한다. 속을 있는 대로 긁어놓고 함박 웃는다. 이빨이 빠져나간 자리에 늙음만이 서럽게 다져지고 있다. 그 웃음을 맞대면하다 보면 싸늘했던 아침도 따뜻해진다.

“김간호사! 시간이 좀 되시나요?”

여든이 넘은 환자의 딸이 면회를 요구한다. 그녀의 모친은 유방암에서 발병된 암세포가 모든 장기에 전이된 상태였다. 환자는 자력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시간이 갈수록 얼굴색이 치자 빛을 닮아간다.

간호사로서 환자의 생애가 어디쯤에서 매듭지어진다는 걸 직감하고 있는 바,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서푼어치도 안 되는 동정과, 끼니때마다 약을 챙겨주는 일이다.

나는 업무를 미루어두고 그녀와 마주 앉았다. 바람을 가르고 온 그의 입에서 싸늘한 입김이 품어 나온다. 노을이 내린 눈자위가 축축했다. 이미 손때 묻은 어머니의 흔적을 더듬다 울고 온 모양이었다. 환자는 딸과 맞대면해도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그러니 만나지 않음만 못해도 매일 같이 찾아온다.

얼마나 지쳤으면 천륜의 손을 놓고 싶었을까. 갖가지 약을 삼킬 때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곱게 보내드리고 싶단다. 현실을 거부하고 싶지만 더 이상 어머니께 고통을 안겨드리는 건 불효 같다고. 그것이 어머니를 위한 선택인지, 아니면 남겨진 자들의 평온을 위한 필수선택인지, 나는 간혹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다.

설령, 모두를 위하는 길일지언정, 객관적인 입장에선 그 누구를 옹호하지 못한다. 선택은 언제나 떠나는 사람의 아쉬운 몫에다 남겨진 자들의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환자를 입소시켜도 보호자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다.

나는 환자의 딸을 앞세워 병실을 찾았다. 다른 환자들의 입원실과 사뭇 달랐다. 고풍스러운 책장과 테이블은 유럽의 어느 왕실 못지않았다. 아기자기한 장식품들과 제철을 맞아 피어나는 꽃처럼 여기저기 온통 꽃밭이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생이 멈추는 이 순간 이곳을 최소한 아늑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딸의 배려였다.

어머니에게 큰딸은 아픈 손가락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 역시 몇 년째 어머니를 뵙지 못했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슬픔이 되어 세균처럼 옮아온다.

딸은 어머니의 야윈 손을 잡고 볼에다 입을 맞춘다. 더 이상 딸의 머리를 땋아주고 샌드위치를 만들어주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머릿속엔 이미 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신원 미상의 여자에게 습관처럼 “네” 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의사와 상의해서 진통제 처방만 내려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의 고집으로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시킨 데 대한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로 인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본 뒤로 이제는 어머니의 손을 놓아주고 싶다고 말한다. 고통 없이 평온하게 가셨으면 좋겠다고, 또 다시 눈물을 글썽인다.

요양원의 일상은 도돌이표의 연속이다. 환자를 보살피는 일은 갓난아이 다루듯 조심스럽다. 목욕을 시키고 단정한 옷으로 갈아 입힌다. 육체는 이미 자기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타인의 손길에 내맡긴 지 오래다. 이리저리 뒤척여도 무디어진 감각은 목석이다.

이제는 운명에 의지한 채 기약 없는 이별만 기다린다. 열차가 지체되면 하품을 하고, 가수면(假睡眠)상태로 텔레비전만 시청한다. 생의 한 페이지에 청춘이 있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싫든 좋든 살아있으니까 보호사들의 시중에 따라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움직이고 음식을 먹고 약을 삼킨다.

바쁘게 아침시간이 지나간다. 환자들은 죽음만큼 약을 싫어한다. 병실마다 짜증 섞인 보호사들의 목소리가 넘쳐난다. 투약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만 한다. 나는 보호자의 부탁도 있고 해서 어린아이 달래듯 환자를 다독였다.

“Mrs. F, 점심을 어쩌시려고?”

침묵한 입으로 앙상한 나뭇가지만 주시할 뿐이다.

“기억을 좀 해봐요. 따님이 어머니 걱정을 많이 하세요”

자식을 위해 기도하던 손은 수저조차 들지 못한다. 무릎은 닳아 관절 꺾이는 소리가 났다. 환자를 보듬어 안은 채 침대에 눕힌다. 마지막 인생길을 배웅하면서 목이 막혀 가슴이 먹먹해진다.

새싹이 해마다 나이테를 늘려간다면 어른들의 연세는 한 살씩 줄어든다. 그래서 자식에게 응석도 부리고 토라지기도 잘한다. 당신들의 내리사랑은 바다였건만, 작은 효도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남들이 흉을 보아도 고슴도치 사랑은 끝이 없다. 세월은 미련도 없고 연착도 하지 않는다. 제 임무 완성하면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다. 우리들의 등대였고,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던 어버이와 이별을 두고 불효를 뉘우치며 통곡할 것이다.



매년 8월, 마지막 금요일은 디포딜 데이 (Daffodil)다. 자원봉사자들이 암환자들을 위해 노란 수선화를 만들어 거리에서 판매를 한다. 꽃의 의미는 얼어붙은 땅에서도 피어나는 강인한 정신력을 뜻한다. 암으로 고통을 받을지언정 삶에 대한 의지만큼은 꺾이지 말라는 응원의 메시지이다.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어찌 그들뿐일까만, 직업상 환자들과 일상을 함께하다 먼 곳으로 떠나 보내면 삶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나는 길을 걷다 한 묶음의 꽃을 산다. 이생에서 못 다한 천륜들이 내세에 다시 만나기를 소원하며 노란리본을 맨다. 새삼 그들로 인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만든다.

창 밖엔 눈이 여전히 내리고 있다. 저 눈이 녹으면 봄이 오겠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지만 영원히 시들지 않는 건 가족들이 가꾸는 행복의 ‘꽃밭’일 것이다. 오늘따라 따뜻한 어머니의 체온이 환장하게 그립다. 여기는 뉴질랜드의 작은 요양원. 이곳에 근무하는 나는 대한민국의 김간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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