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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간호문학상 수기 가작
슬픈 추억과 할미꽃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5-12-16 오전 11:20:43
이치수(구미대 1학년)


사람은 자신만의 향기로 때가 되면 피어나는 꽃처럼 이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어떤 이는 봄에 활짝 피어나는 노오란 개나리처럼 어떤 이는 한 여름의 뜨거운 날씨같이 열정의 상징인 묽은 장미로 어떤 이는 한 겨울의 매화처럼 고고한 자태를 뽐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할미꽃처럼 그렇게 고개 숙여 살아가기도 한답니다.

노인요양병원에는 많은 할미꽃들이 모여 창문 너머 세상을 부러워하며 서로 의지한 채 간신히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슬픈 추억’이라는 꽃말을 가진 할미꽃처럼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망연자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착잡해지고 슬퍼집니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고단한 삶의 훈장이, 지나온 인생만큼 고스란히 새겨져 지난날을 감히 짐작케 합니다.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지적 능력은 어린애 같지만 그 분들은 누구보다 어려운 시기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 오셨지요.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평생 희생한 가족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작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외로운 분들이기에 그 분들의 아프고 서글픈 사소한 사연들에도 귀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햇살이 따스한 3월 어느 날에 내일이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로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간호사가 되겠다고 간호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요양병원에서 근로봉사를 하게 되는 큰 행운을 얻게 되었고 또한 그곳에 계시는 많은 할머니들과 소중한 연을 맺게 되는 행운 또한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계시는 어르신들은 저에게 저의 삶을 뒤돌아보고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셨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삶의 방향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인연입니다.



이곳 노인요양병원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여기가 내 집이다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계십니다. 죽으면 내가 이곳을 떠나겠지. 저 창문 너머 세상으로 나가는 날이 내가 세상을 버리는 날이야. 먹고 살기위해, 자식 대학 보내기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앞만 바라보며 일만하고 살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지 인생이 정말 한심하구나. 나를 위해 한 번이라도 살아봤으면 삶에 미련이 없을 텐데, 이제 와서 보니 여기 병원침대 위에 와 있더라’하십니다.

노인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 모두가 살아오신 길도 다르고 사연도 제각기 다르시지만 하나 같이 하시는 말씀이 있으십니다. 참 많이도 살았다. 이제 자식들 고생 그만 시키고 자는 잠에 갔으면 좋으련만, 빨리 죽지도 않고 이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어여 가야 하는데’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이처럼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분들이기에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어떻게 글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그 소리만 들어도 가슴임 뭉클해져 온몸에 전율이 흐릅니다. 그렇게 자식걱정과 함께 삶의 희망을 뒤로 한 채 우리의 어머니들은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기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정신 줄을 놓으실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가도 때로는 자식을 찾고,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면서도 자식걱정에 짐이 되는 것을 염려해서 빨리 세상을 버리고 가야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 하십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두려워하시지 않으시고 자식이 힘들어 할 것을 걱정하시며, 오늘도 우리 어머니들은 창밖을 바라보며 자식이 오기를 기다리며 창가에 쓸쓸히 앉아 계십니다. 한 송이 할미꽃이 되어......



아침나절부터 할머니가 아들 찾으러 가야한다고 베개를 봇짐 삼아 등에 둘러메고 병동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재빠르게 탈출을 시도하시다 오늘도 실패 하시고, 망연자실하게 침대에 누워계셨습니다. 베개를 쌀이라 하시면서 꼭 끌어안고 침대에 누워 천정만 바라고보며 말이 없으셨는데 제가 출근해서 인사하러 들어서자마자 저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손을 덥석 잡아 주셨습니다. 집에 가야 하는데 버스 정류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으니 데려 달라고 하시네요.‘내가 왜 여기 있노. 그거 참 이상하다. 날 집에 데려다오. 얼른 집에 가서 일도 해야 하고 장에 가서 쌀도 팔아야 하는데 내가 왜 여기서 이리 먹고 놀고 있노. 어서 버스 태워 주라.’하십니다.

그러시다 갑자기 또 집나간 아들이 안 돌아 온다며 찾으러 가야한다고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으십니다. 같이 아들 찾으러 가보자며 손을 잡고 병실마다 들어가서 이 곳 저 곳 둘러보시다 또 다시 아들 찾기를 포기 합니다. 힘이 부치시나 봅니다. 할머니의 기억은 어디쯤에 정체해 있는 걸까요? 치매를 앓으시는 분들의 기억 저편에는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이 무수히 흩어져 있어 뜬금없이 갑자기 생각이 나곤 하나 봅니다.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보다는 후회하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는 듯합니다.

옆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시끌벅적 합니다. 어르신이 화장실에서 손으로 변을 만지고 변기에 손을 씻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할머니께 왜 그러셨냐고 물어 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시고 가만히 아래만 쳐다보고 계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냥 조용히 계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무슨 기억이 할머니를 붙잡아서 그렇게 하도록 했을까요?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저도 조용히 손톱을 깎아 드렸습니다.



‘고마워, 학생. 발톱도 깎아줘’하셔서 발톱을 깎으려고 양말을 벗겨 드리고 보니 엄지발가락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많이 아파보였습니다. 할머니께서도 많이 아프셨다고 하셨는데 왜 아프다고 말을 하지 않고 참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조금 아파도 그냥 그렇게 견디면 된다고 생각 하셨나 봅니다. 이제는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그리우면 그립다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그렇게 마음을 보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점심을 막 먹고 난 후 한 어르신 한분이 병실 문 앞에 나와 집에 가야하는데 집을 못 찾겠다고 집을 좀 찾아 달라 하십니다. 빨리 집에 가서 저녁 해야 하는데 우짜노! 안그러면 시어머니 난리 치신데이~. 아들 밥 해줘야 하는데. 얼른 가야하는데 집에 가는 길을 몰라”하시면서 말입니다. 여기는 병원이라 밥걱정 안 해도 된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막무가내로 집에 가야한다고 억지를 부리십니다. 이분의 기억은 어느 날엔가 멈춘 듯합니다.

두리번 두리번 하시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할머니 집은 여기에요. 조금만 있으면 아들이 올 거니까 우리 기다려 봐요’하면서 병실로 모시고 들어가자 할머니는 저의 손을 잡고 병실로 들어 가시면서도 집에 가야한다고 중얼거리시며 연신 저에게‘고마워요. 고마워요 새댁’하시며 몇 번씩이나 인사를 하십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우뚱하시면서 침대로 올라가 무언가를 응시하시면서 가만히 누워 생각에 잠기십니다. 자식 생각, 가족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하신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아서 보고 싶으시죠?’라고 물으니까 할머니께서는 괜찮아. 다들 먹고 살기 바빠서 그렇지. 회사 다니느라 올 시간이 없어. 보고 싶어도 참아야지 뭐. 곧 올 거야. 안 바쁘면 말이야.’하면서 쓸쓸한 미소를 남깁니다. 갑자기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어르신의 미소에 겹쳐집니다.

저의 어머니는 치매로 세상살이에 힘들었던 모든 것을 잊고 기억의 숲 저편 어느 시점의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지내시다가 몇 해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계실 땐 고단하고 힘들었던 세월이었기에 치매는 신이 어머님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자 합니다. 힘겹고 괴로운 삶을 모두 잊고 순수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셨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순간 순간 정신이 돌아 올 때는 자식을 알아보시곤 하셨지요. 자식이 뭐 길래 끝까지 한줄기의 기억만큼은 붙들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어머니에게는 자식이 전부인가 봅니다.

물론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어머니! 많이 외롭고 쓸쓸하셨을 텐데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스럽고 후회가 됩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기거하며 주어진 낯선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하루 하루를 견디어 냈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제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핑계로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어머니께서 치매를 앓고 계셨을 때, 제 손으로 보살피지 못하고 보내드리고 말았습니다. 많이 그립고 보고 싶은 어머니입니다. 지금 이래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오늘은 무척 그립습니다. 아니 매일 매일 우리 어머니가 보고 싶고 그립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 요양병원에서 뵙는 어르신들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서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기도 하고 후회도 하면서 삶을 뒤 돌아 보곤 합니다. 어르신들을 대하는 제 마음도 근로봉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보단 우리 어머니께 못 다한 효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모든 어르신들이 어머니 같아서 잘해드리고 싶고 저의 마음을, 정을 다 드리고 싶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무언가를 깨닫게 되고 부질없는 후회를 하게 되는 군요. 여기 계신 어르신들 또한 세월이 지나고 세상을 정리할 때가 되어서야 인생을 뒤 돌아 보며 후회를 하신답니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 온 치매로 삶을 정리할 시간조차 잃어버리게 되기도 하고 자기가 누군지 조차도 기억을 못하게 되지요. 치매를 앓는 환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치매로 인해 살아온 지난날을 기억하지 못하고 낯선 세상으로 떠밀려 온건 아닐까요?

힘들게 고생하며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늙고 병들어서 세상 밖으로 내팽개쳐진 어르신에 대한 애틋함과 연민을 느낍니다. 일반적으로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는 감정이나 정서가 불안정하고 가끔씩 우울해하거나 허공에 손짓을 하면서 의미를 모르는 소리를 지르거나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싸움을 하듯 행동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전혀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주변사람을 의심하기도 하고 자신의 물건을 훔쳐갔다고 하거나 주위 사람들의 행동이 자신들을 비웃거나 위협한다고 생각하여 의심을 하거나 욕설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러한 행동을 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기도 하며 어떤 때는 마음도 상하고 기운이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치매를 앓으시는 분들이기에, 가끔씩은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앞으로 어르신들 보다 더 많이 살아 갈 날이 남았기에 행복한 마음으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 드리기도 하고 같이 세상을 향해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한답니다. 어르신들의 마음을 다는 이해 할 수 없지만 그냥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그 분들에게 위안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 듯 어르신들도 치매로 인해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상하지만 어르신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데는 그분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사연이 있기에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지 그 이유를 우리들은 모르기에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서 그분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 제지하게 되고, 못하게 하곤 하지요. 사고 예방을 위해 행동을 제지 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 되면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은 자신의 기억의 끈을 놓아버리고 희망을 조금씩 포기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에 소홀히 하지 말고 귀 기울여 마음의 소리를 듣는 다면 조금이나마 그분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창문 밖에는 벌써 가을이 왔나 봅니다. 스산한 바람이 볼을 스치듯 지나가고 먼 산에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붉게 물든 저녁하늘 저편에는 해가 막 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저렇듯 떨어지는 낙엽처럼, 지는 해처럼 언젠가는 그날이 오겠지요. 인생의 마지막장을 보내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숙연해지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때가 되면 떠날 뿐이며 또한 누구나 다 건강을 유지하면서 오래 살 운명을 타고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거나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나 주위의 누군가가 치매에 걸리면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절망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죽음도 인생의 자연스러운 부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저를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들을 기쁜 마음으로 만나러 가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행복해 지는데 제가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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