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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간호문학상 수기 당선작
결국 사랑의 사명이었네.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5-12-16 오전 11:19:32
진종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모바일(Mobile)’, ‘움직일 수 있는'이라는 뜻으로, 이동성을 가진 것들을 총칭하는 말.

맑은 하늘의 이름 모를 어느 지점에 있는 투명 햇살의 따뜻함보다는 엄마 품에 안긴듯한 포근함이 우리의 마음까지 스며드는 5월의 어느 날, 나무들의 푸르름이 절정에 이른 것같이 나의 내면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들렀던 강남의 대형서점에서 한 책의 제목이 나의 시선과 발길을 멈추게 했다. ‘안드로이드 앱 개발’, ‘아이폰 앱 개발’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판사, 저자 별로 분류된 책들의 공간 속에서 말이다.

‘모바일 앱 개발’, 나와 눈맞춤을 한 이것과 마주한 순간 나의 고요한 내면의 바다가 갑자기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거센 물줄기가 거부할 수 없는 강한 힘으로 솟구쳤다. 그 힘은 갈라진 바다의 틈 사이에서 또 다른 파도를 생성해 냈는데, 마치 어머니가 사준 고까신을 처음 신어보는 어린아이의 일렁이는 마음처럼 누군가를 스스럼없이 미소 짓게 하는 설렘의 파도였다. 이 순간 느낀 강한 힘으로 나는 추호의 의심없이 지금 내가 본 이것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나의 뇌리까지 기분 좋게 만든 그 설렘으로꼭 해낼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운명(destiny)’,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이르는 말.

어쩌면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이 누군가의 마음 속에 운명의 불씨를 지펴 우리의 내면을 환히 밝히고 나 자신조차도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하루라는 신의 선물을 충실히 살아가는 가운데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면서 결국엔 나도 모르는 힘에 끌리어 내 안의 굳은 다짐을 하게 됨으로써 말이다. 나는 그렇게 나의 마음의 주름 속에 숨겨져 있어 차마 알지 못했던 그것과 운명처럼 조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운명은 까마득하여 볼 수 없었던 나의 앞 길을 밝혀주었고, 안개처럼 자욱하여 희미했던 나의 발자국을 드러나게 해주었다.



‘지식(Knowledge)’,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해 알게 된 명확한 인식 이해

수술실 간호사인 나는 수술에 직접 참여하여 집도의가 호명하는 기구를 특유한 나의 낮은 어조로 다시금 부름으로써 그 순간 사용하는 기구 및 장비를 배워 이해한다. 또한 기회가 없어 잘 접해보지 않은 수술에 우여곡절로 들어가게 될 때는 수술 매뉴얼이나 동료와의 대화를 통해 중요한 특이사항 몇 가지들을 인지한 후 수술에 들어가 몸으로 업무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 매일 총 30개의 수술실의 수술상에는 각기 다른 임상과, 집도의 그리고 수술실 간호사들이 함께 펼치는 대 향연이 벌어진다.

올해 5년차의 수술실 간호사인 나는 모든 과는 아니지만 여러 임상과를 배운 경험과 3교대 근무로 매일 참여하는 수술 과와 수술명이 다르다. 일주일에 신경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외과 등 각기 다른 4-5개의 다른 임상과와 집도의의 수술에 참여하고, 수술의 일정 패턴은 익혔어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지금 이 순간에는 이렇게 했었나?’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 교수님은 장(intestine)을 자르고, 봉합하실 때 다른 니들홀더(Needle holder, needle을 잡는 수술기구)를 사용했던 것 같은데 이건가? 저건가?’하면서 내 머리 속의 기억을 세차게 두들기고 또 두들겨본다. 이마와 미간에 삼자 주름을 애써 만들며 온갖 인상을 찌푸려도 보지만 매번 역부족이다. 그때 나의 부족함을 탓하기 보다는 괜히 영화 속 제목인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떠올려 본다.

집도의들은 매번 똑같은 수술을 하지만 여러 임상과를 접하는 수술실 간호사들에게는 세부적인 내용 하나 하나까지 기억하기에는 많은 노력과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우리들은 수술에 참여하고 난 뒤, 수술간호노트나 수술 매뉴얼을 직접 만들어 컴퓨터에 보관하는 식 등의 방법으로 습득한 업무지식을 쌓고 있다.

구획된 곳에서 임상과별로 다른 수술이 진행되고, 해당 수술팀 이외의 사람은 출입이 제한된 공간인 수술실, 그럼 갑자기 수술물품, 수술과정 등의 수술과 관련된 업무정보가바뀌면 지금 이 수술에 참여한 사람만 알게 되는 것인가? 그럼 이후에 이 수술이 다른 수술방에서 진행될 경우에는 어떡해야 할까?



‘공유(sharing)’, 두 사람 이상이 한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

공유는 두 사람 이상이 하나의 무언가를 두고서 함께 소유하기 위하여 만남을 가지는 일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그 무언가는 각양각색이 될 수 있다. 수술실 간호사들에겐 수술환자와 관련된 업무지식이 그 만남의 무언가가 된다. 이전처럼 수술 중 어떠한 사항이 변경될 경우, 우리는 각자가 만든 노트에 기록하고 이것을 다른 동료들에게 보여주거나, 수술실 내 화이트 보드, 웹 커뮤니티 등을 통해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여 내 곁에 있는 동료들을 만나고, 수술환자들 곁에 머무른다.

설령 소원한 관계의 동료라 할지라도 업무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서로 마주할 수 밖에 없다. 즉, 수술실 간호사들 간의 지식공유는 곁에 있는 동료들을 대면 하게 해주고, 수술대 위의 긴장된 얼굴의 환자가 품는 치료와 회복의 간절한 바람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준다. 이렇듯, 수술실 간호사들의 업무지식 공유는 너와 나의 눈맞춤의 기회를 주고, 억지로 캐낸 이타적 마음이 아닌 천연 그대로의 마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수술실 간호사들만의 무엇이다.



‘이끌리다(be driven)’, 사람, 단체, 사물, 현상 따위를 인도하여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하다

나의 마음 속에는 항상 무엇인가가 있어왔다. 그리고 그것을 늘 희망처럼 바라보고 살았다. 대학부터 2014년 봄 대학원 진학을 하기 전까지는 ‘대학원 진학’이었고, 지난 5월 강남의 대형서점에서 나의 살아있는 모든 감촉을 세운 경험 이후부터는 ‘모바일 앱 개발’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 짓고, 삶의 무게가 짓누른다고 생각될 때는 바라봄의 법칙처럼 마음 속의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그러면 곧 마음이 평안해짐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오른손의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논문은 주제만 잘 정하면 80%는 완성된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논문 시작 전부터 주제를 잡느라 엄청 골머리를 앓는데 나 또한 열외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들처럼 괜스레 머리를 부여잡는 동작을 취하기 보다는 내 마음의 그 무엇인가에 자연스럽게 이끌렸다. ‘모바일 앱 개발’, 처음 마주할 때의 그 강한 힘에 나의 열정을 더하여 꼭 해내겠다라는 다짐을 했고, 또한 이것이 앞으로 내가 써야 할논문의 주제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꼭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사명인 것 같았다.



‘간호업무 지식공유(Nursing work Knowledge sharing)’, 업무지식에 관해 사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타인과 공유하여 사적으로 정당화하는 과정

우리는 서로 만져지고, 느껴지는 것들을 늘 그리워하고 갈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수술실에서 우리들은 마스크와 모자로 가려진 채 눈만 빼꼼히 드러난 모양이지만 그 자그마한 눈으로 수만 가지의 모양을 만들면서 누군가를 향해 눈짓하고, ‘뚜뚜뚜’하는 심박동 소리와, 기구와 장비의 소리만이 수술실을 감싸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내 앞에 놓여진 기구들로 손짓한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동료를 부르는 그 끊임없는 눈짓과 손짓은 업무와 관련된 지식을 말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이렇게 각자가 가진 지식은 모든 간호사들이 알 수 있도록 공유되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에게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모두 내어 맡긴 채 우리 앞에 누워있는 환자를 위해서이다.

총 30개의 수술실, 각기 다른 임상과별로 각기 다른 집도의, 100명이 넘는 수술실 간호사…… ‘그래 바로 이것이야. 수술실 간호사들의 지식공유를 원활히 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을 개발하자.’ 강남 한 복판의 대형 서점에서 느꼈던 추상적 이끌림이 실존적 명제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수술실 간호사 간의 지식공유 활성화를 위한 모바일 앱 개발’이라는 주제를 정하고 관련 문헌을 고찰하여 지도교수님께 조언을 구했고, 이를 주제로 강의시간에 발표도 여러 번 했다. ‘모바일 앱 개발’을 선생님이 과연 하실 수 있나요?’, ‘참신하다’, ‘정말 업무에 적용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정보 보안의 문제’ 등 다양한 긍정과 부정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바일 앱 개발’을 하겠다는 나의 열정은 간절한 기도로 하늘에 상달되었고, 주변의 수많은 천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술실 간호사의 지식공유 실태와 영향요인’이라는 주제가 석사논문의 최종주제로 결정되었다. 간호학 분야에서 지식공유 관련 연구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었고, 수술실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지식공유에 관한 선행연구가 전무하기 때문에 곧바로 ‘모바일 앱 개발’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이때, 나는 참 신기한 경험을 했다. 버스 정류소에서 집에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학원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 우연히 나의 논문의 주제를 이야기 하게 되었는데, 그 선생님이 최근에 수술실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논문을 보았는데 거기서 수술실 간호사의 정보공유 부족문제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선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는 수술실 간호사의 정보공유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벼락 맞은 듯이 놀랐다. 그리고 순간의 갑작스러운 흥분으로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또한 지도교수님께서 나의 열성을 아시고 다른 대학에서 간호 정보학을 주전공으로 하시는 교수님께 나의 사정을 말씀 드리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연구원을 붙여서 도움을 주겠다는 응답을 나에게 전해주셨다. 감사하다는 말로써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극한의 엑스터시(ecstacy)의 순간이었다. 즉, ‘모바일 앱 개발’은 내가 이 곳에 존재해야 하는 지상명령으로 나의 마음판에서 지울 수 없는 그 무엇인 것이었다.

작년 5월부터 시작된 모바일 앱 개발의 만남과 지식공유 논문의 여정, 이 길을 달려오는 내내 내가 아는 것은 모바일 앱을 개발 해야 한다는 나의 사명과 수술실 간호사들 간의 지식공유는 잘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 두 가지 명제뿐 이었다. 그리고 일이 끝난 뒤 도서관에 앉아 컴퓨터 속에 저장된 수많은 논문들과 함께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는 답답한 순간, 이 길이 맞는 줄 알고 갔다가 다시 되돌아온 순간, 설문조사를 위해 의뢰한 병원에서의 수 차례의 거절 등 어느 것 하나 그냥 되는 법이 없었지만 어느새 논문은 결론을 향해 나아갔고 고찰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연구의 결론이 모바일 앱 개발로 연결될 수 있는 방향으로 도출되었고, 고찰에 추후 연구방향으로 제언할 수 있었다.

2015년 11월, 지식공유 논문이 세상의 호흡 아래 있기 바로 직전이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나 자신의 호흡을 먼저 가다듬어 본다. 감사, 사명, 행복이란 단어들이 내 마음 속을 맴돌면서, 내가 받은 이 사명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해 본다. 행복이란, 내가 필요로 하는 그 무언가로 채워 잠깐의 허기를 달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그 무언가를 위해 내가 가진 것과 상대방이 가진 것을 서로 공유함으로 그 필요를 채우는 것이었다.

우리는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을 준다고도 한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주고 받는 삶인데, 나를 포함하여 그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궁극적인 그 무언가는 모바일 앱 개발을 넘어선 바로 ‘사랑’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액자라는 것은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뭔가 특별한 일이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죠” -책은 도끼다, 박웅현-

내 마음 속의 액자는 무색 배경이라 더욱 도드라지는 ‘모바일 앱 개발’, 이것으로 나의 환자들을 위해 사랑의 소명을 실천하는 행복한 간호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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