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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간호문학상 수기 가작
우리가 성숙해지는 시간- Art와 Science의 조화를 꿈꾸며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4-12-16 오후 13:52:07
지희주 (강북삼성병원)


내가 병원에 입사하던 해는 겨우 23살이었다. 그 때만 해도 나는 세상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것 마냥 어른 흉내를 내고 살았던 것 같다. 사실은 어른과 아이의 시간을 어정쩡하게 넘나들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간호란 Art&Science라는 나이팅게일의 유명한 말이 있다. 처음에 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난 간호사가 된지 4년 만에 이 말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게 되었고, 이 말로 인해 간호사로 사는 오늘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23살의 나보다 27살의 나는 조금 더 성숙해졌다. 간호사이기에 가능했으리라. 지금부터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든 하나의 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내가 신입 간호사 때의 일이다. 신입간호사 심화 교육과정을 마친 후 혼자서 환자를 보게 되었다. 무서웠다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다. 정맥주사를 실패할까 무서웠고, 일을 그르칠까봐 무서웠고,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 채 인계를 주게 될까봐 무서웠다.

23살의 어린나이에 들어온 병원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 느낌이 들었다. 병원이 그랬다기보다 간호사라는 직업자체가 그랬던 것 같다. 결국은 내가 책임지고 해 나가야 할 일…. 매일같이 긴장하면서 일했다. 사실 그 누구보다 ‘무지한 내 자신’이 무서웠다. 그래서 밤낮으로 책을 뒤지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길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그 날은 나이트근무를 하는데 불행히도 DNR(Do Not Resuscitate : 심폐소생술 하지 말기) 환자를 보게 되었다.

의식은 중환자실에서 DNR동의서를 받고 병실로 올라왔을 때부터 없었고, 열은 아무리 해열제를 투여해도 40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혈관주사로 승압제 용량을 늘려도, 혈압은 오르지 않고 설상가상 승압제를 주는 혈관이 부어 주사를 제거하려고 반창고를 떼니, 살점까지 같이 떨어져 나가 버렸다.

‘바람 앞의 촛불’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이던가. 얕은 숨을 겨우 몸에서 떨어뜨리지 못한 그 환자는 고통조차 표현하지 못한 채 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보호자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생각이 없다기보다는 긴 간병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몸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보호자 침대에서 ‘잠든’게 아니라 ‘쓰러져’ 있다 시피 했다.

그러나 나는 그 환자뿐이 아니라, 나는 그 밤에 다른 20명의 환자들을 보아야 한다. 주어진 시간 내에 일을 다 끝내지 않으면 그 다음번 일을 할 수가 없다는 눈앞에 닥친 일만 생각하기에도 내 마음은 이미 아무런 여유가 없었다.

DNR환자…. ‘열이 나도 지켜봐야 하고, 혈압이 떨어져도 지켜봐야 하고 그대로 심장박동이 멎어버리면 보호자들 입회하에 당직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망선언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동의서 서류를 의무기록실에 내리고, 쓰지 않은 환자의 약은 반납을 해야 한다. 사망 진단서 작성을 확인하고, 원무과에 전화를 해줘야 한다. 장례식장은 우리 병원을 이용할지, 다른 병원 이용할건지 물어봐야 한다.'

일에 치여서 이런 일들만 생각하다보니 자괴감에 자꾸 빠져들었다. 학생 때는 빛나는 인류애를 가진 간호사가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일한지 고작 4개월도 채 되지 않은 나는 벌써 일만 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싶었다.

어쩌면 백의의 천사라는 말 자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상상속의 동물처럼 간호사에게 바라는 기대와 가치를 '백의의 천사'나 '나이팅게일' 에 담아 이야기 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적어도 천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식이 없는 그 환자의 인간성을 상실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마저도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는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음 깊이 차오르는 슬픔을 억누르고 있을 때, 일은 벌어졌다.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고, 임종기 환자에게서 보이는 호흡(체인스톡 호흡)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승압제만 사용하고 나머지 처치는 하지 않기로 했었던 터라 당직의사와 상의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당직의사는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flat(심전도상 심정지) 뜨면 연락하세요”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차피 본인이 가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사망하면 사망선언을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전화를 끊고 새우잠을 자고 있던 보호자를 깨워 조용히 이 사실을 알렸다. 보호자인 부인이 일어나 환자를 지긋이 본다.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병원으로 와야 할 것 같다고 말을 한다.

아들들은 급히 병원으로 왔다. 한 아들이 급격히 악화된 환자의 상태를 보자 크게 동요하며, 환자 상태가 안 좋아졌으니 중환자실로 다시 가셔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나에게 물었다. 그러자 다른 아들이 중환자실에서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볼 수 없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그렇게 아들들끼리 의견이 나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환자는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환자 활력징후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그럴수록 아들들의 분쟁은 더욱 격해지고 있었다. 나는 중요한 일에 간섭하는 것 같아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환자가 죽어간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와 버렸다.

“이대로 계시면 환자 죽어요. 저희가 치료 방향에 대해서는 더 이상 결정해 드릴 수 없어요. 보호자분들이 하겠다고 하시면 저희는 소생술을 하고, 안 하겠다고 하시면 안 합니다. 그래도 환자는 뭘 원하는지, 아니 적어도 뭘 원할지 먼저 생각해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말씀하시는 이 순간이 환자 목숨이라고요.”

그때였다. 심박수가 20회/분으로 줄기 시작하더니 결국 0으로 바뀌었다. 눈으로 죽는 과정을 목격한건 나도 처음이었다.

‘그런 말을 내가 해버려서 환자가 내 말대로 더 빨리 생을 마감한 걸까…’ 떨리는 마음을 애써 붙잡고 보호자에게 다시 말했다. “지금 심정지 왔어요. 소생술을 하셔야 하겠다면 바로 CPR을 시행하겠습니다.”

아들들은 3∼4초간을 침묵했다.

그리고는 힘없이 말했다. “그냥 보내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실 때도 끝까지 싫다고 하시면서 그냥 이대로 살다가 편히 죽겠다고, 집에서 자는 듯 죽고 싶다고 하셨었어요.”

그리고 다른 아들이 말했다. “그냥 저희 욕심에 아버지를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랬으면 평소에 잘 했어야 하는 건데, 저희 허물을 결국 아버지가 가시는 그 순간까지 씌울 뻔 했어요.”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남은 자는 죽은 자를 향해 눈물만 흘릴 뿐이다.

죽은 자와 남은 자가 아닌 제3자인 나는 해줄 말이 없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어떤 일도 잠시 잊었다. 어떤 위로의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남겨진 가족들과 환자가 이별할 시간을 줘야 할 것 같았다. 용기내서 한 마디를 또 건넸다.

“환자가 심정지가 와도 청각은 맨 나중에 소실된다고 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 하세요. 사망선언은 그 뒤에 하겠습니다.”

보호자들은 흐느끼며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보, 가서는 아프지 말고 잘 살아….”

“아버지, 고생만 시켜드려서 죄송해요….”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내 환자를 보냈다. 그 환자는 그 순간에 어떤 것을 원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한 일이 잘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기억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어떤 것이 잘 한 거였는지, 옳은 일이었는지….

혼란스러웠다. 죽음이라는 일을 경험한다는 건 23살의 어린(이럴 때는 나 스스로를 어리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내가 경험하기엔 너무 큰 일 이라는 원망도 들었다. 답을 찾는 일을 결국은 포기하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책을 폈다. 그러다 문득 간호란 Art&Science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 난 간호사였다. 23살의 어린 여자가 아니었다. 성별도, 나이도 없는 ‘간호사’일 뿐이었다. 환자가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좋을지 생각하는 게 간호 아니던가? 환자가 편안하다고 하면 불법이 아닌 이상에야 좋은 거 아니던가? 이 일을 원망하고 괴로워하는 나는 환자가 살아계실 때 내 일에만 매달려서 정작 환자를 보는 일에 조금 더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나 때문에 조금 더 힘들게 돌아가신 건 아닌지 진지하게 반성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진 않던 건가? 결국 그 생각은 나에게 더 좋은 간호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원래 인간은 각자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나이가 많고 적음이, 환경의 좋고 나쁨이, 종교가 있고 없음이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인권헌장 등을 통해 인식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 현실에서는 그런 것들로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생명윤리라는 분야를 선택해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는 이 와중에도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환자들은 내가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오래전 나이팅게일의 말처럼 Scientific한 간호지식을 가지고 Artistic한 현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병원 병동 간호사 4년차. 아직도 나는 출근을 할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혹시라도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가 어쩌다 나에게 와버려서 험한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혹시 나의 작은 눈빛과 행동이 환자들에게 더 많은 아픔을 주게 되지는 않을까 말이다. 그래도 23살의 그때보다 27살의 내가 조금 더 달라진 건 누군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간호사라는 이 일에 설렘과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4년. 그 시간동안 나도 한 명의 인간으로 뿌리내리고, 잎을 키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 완연히 성숙하게 되면 이 잎도, 열매도 떨어지고 힘없이 내려앉을 수 있지만, 그 안에 또 다른 생명의 씨가 있음을 나는 믿는다. 구름이 비가 되고 비가 다시 증발하면 구름이 되듯 그렇게 생명은 순환한다. 그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이제 자연스러운 그 흐름을 매일 간호현장에서 느끼고 겸허히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 23살이던 내가 27살로 나이가 들었고, 그 시간만큼 조금은 성숙해 졌다. 어쩌면 그래서 이 일은 나에게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살다가 보면 잊어버리는 단순한 진리를 나는 일을 하며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서 어른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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