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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간호문학상 수기 당선작
오늘도 걸을 수 있다니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4-12-16 오후 13:52:17
정주희(전남대병원)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의 기록인 수기를 쓸 때의 마음가짐은 진행형이거나 완료형일 것이다. 아직까지도 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더라면 힘들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아직 남아 있는 병의 흔적들을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되짚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처음 결핵진단을 받은 것은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1998년 가을 병원 신체검사 때였다. 증상은 전혀 없었는데 X-RAY에서 결핵소견이 보인다고 진단받아 약을 먹어야 했다.

가장 위험한 응급실 근무요소 중 하나가 응급환자에 대한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접촉하게 되어 생길 수 있는 감염인데 그 대상자가 바로 내가 되었구나 싶어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다행히 아무런 자각증상이 없었고 가족들에게도 전염의 증거가 없다는 걸 위안 삼으며 큰 어려움 없이 4개월간의 투약을 마칠 수 있었다.

그 후 결핵이란 병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처럼 잊혀 져 가던 2003년 봄, 병동을 거쳐 지금은 인터벤션실로 명칭이 바뀐 혈관조영실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는데 거기서는 방사선을 이용한 진단 검사와 더불어 각혈하는 환자들의 치료법으로 중재적 시술중의 하나인 기관지 혈관 색전술이 자주 시행되었다.

각혈의 원인이 폐결핵인 환자가 많았는데 시술을 할 때 보호장비는 고작해야 일반적인 일회용 마스크와 글러브를 사용했던 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한번 결핵균에 감염되었던 폐는 재발의 위험이 늘 존재한다는 걸 잠시 잊었던 탓에 좀 더 주의 깊게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삼년 넘게 영상의학과 혈관조영실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기침이 시작되더니 오른쪽이 가슴이 아프면서 열이 났다. 감기려니 생각해서 내과 진료를 받고 약을 먹었더니 전신 증상은 나아졌지만 기침은 계속 되었고 아침에 잠이 깨어보면 뒷목쪽이 축축하게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다이어트를 한 적도 없는데 몸무게가 계속 줄어들었다.

하지만 기침이 오래간다고만 생각하고 이런 증상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근무를 계속 하던 2006년 가을, 이번에도 병원 정기 신체검사에서 결코 대수롭지 않은 내 병이 확인되었다. 몇 년 전에 앓았던 그 부위에 폐결핵이 재발되었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이번에는 증상이 확실했기에 일단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C.T와 객담배양검사, 약제감수성 검사 등 정밀 진단을 위한 과정이 진행되었고 다시 결핵약을 먹기 시작했다.

약을 꾸준히 먹고 가족들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기침에 좋다는 온갖 민간요법을 다 시도해 봤지만 여전히 기침은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원인을 알게 되었고 또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으니 좋아지겠지 하는, 이유는 다르지만 기대하는 결과는 같았던 희망의 마음을 가지고 퇴원하여 다시 병동으로 옮겨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외래 과장님의 도움으로 산재신청을 할 수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승인을 받아 좀 더 맘 편하게 외래진료를 받으면서 근무를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침은 계속 되었고 가끔 오한과 어지러움까지 동반되어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해 올 때도 있었지만 더 크고 긴 고비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불안과 기대가 공존한 상태로 다시 교대근무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던 어느 날, 날짜도 잊혀지지 않는 2007년 2월 7일, 담당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항산균 약제감수성 결과가 나왔는데 다제내성 결핵으로 진단되었으니 약을 2차 약제로 모두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병원보다는 결핵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서의 입원치료를 권해주셨다.

적어주신 소견서와 영상을 복사한 CD를 가지고 기독병원으로 향하던 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막연히 엄습해 오던 불안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과연 내 병을 고칠 수 있을지, 일은 계속 할 수 있을지, 가족들은 괜찮을지 이런저런 생각들 때문에 마음이 너무도 우울했고 끝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무겁고 두려운 마음으로 호흡기 내과 교수님께 진료를 받았는데 내 오른쪽 폐의 공동이 상당히 크고 내성이 생겨버린 약제가 많아서 2차 약제를 좀 오랫동안 투여해야 하지만 희망은 있으니 잘 치료해 보자고 격려해 주셔서 걱정은 일단 접어두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치료를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그곳 결핵병동에 입원해서 하루 세 번 2차 약을 먹고 가나마이신을 근육주사로 일주일에 토, 일만 빼고 닷새간 양쪽 엉덩이에 번갈아가면서 맞기 시작했다. 장기간의 집중치료가 필요했고 당분간은 격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3주간의 입원치료가 끝난 후에도 병가와 산재휴가를 연이어 사용해서 일 년 동안 쉬어야 했다.

약은 오심과 식욕감퇴를 유발했지만 그럭저럭 참고 먹을 만했는데 문제는 열 달 넘게 맞아야 하는 근육주사였다. 퇴원 후에는 스스로 몸을 틀어서 내 손으로 둔부에 놓았는데 점점 그 부위에 몽우리가 생겨 단단해지기 시작해서 통증이 심해지고 그 단계도 지나니까 감각이 아예 무뎌지더니 나중엔 아무리 덜 단단한 곳을 찾아 찔러도 약이 들어가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멍이 안든 곳을 찾다보면 신경에 타격이 가는지 발끝까지 절절하기도 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아픔을 참고 바늘을 찔렀는데 피스톤을 눌러도 약이 안 들어가 두 번, 세 번 찌르고 다시 찌르기 싫어 최대한 힘을 주어 약을 밀어 넣노라면 팔은 벌벌 떨리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줄줄 나면서 비틀고 서 있는 몸은 또 다른 힘겨움으로 고통스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린 날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렇게 열 달 동안 주사와 약물치료를 병행한 끝에 간신히 배양검사 결과 음전이 확인되어 다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는데 면역력이 약해 환자를 직접 대하는 부서는 피해야 한다는 권유로 2008년 2월부터 진료비심사과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주사치료는 중단했지만 약은 하루 세 번씩 계속 먹었고 한 달에 한번 휴가를 받아 기독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았다. 전신증상이나 몸 상태는 특별히 나빠지지 않았지만 2차 약제 치료를 시작한지 삼년이 지나도 병변부위는 호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X-RAY상 가끔 악화소견이 보여서 약을 추가해야 했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목에서는 객담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듯이 시냇물이 흐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며 치료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2010년 봄, 잠을 자는데 갑자기 심한 오한과 함께 왼쪽 아래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픔을 참아가며 밤을 새우다시피 한 후 일단 해열진통제를 먹고 간신히 출근을 했는데 통증은 계속 되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져서 걷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그날이 정기추적 검사에서 별 이상이 없다고 확인받은 지 불과 며칠 후라서 혹시나 하는 걱정을 지우려고 애써보았지만 아무래도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아서 다시 검사를 해 본 결과 며칠 전까지 괜찮았던 반대쪽 폐에서 심상치 않은 새로운 병변이 발견되었다. 재발인 것 같고 이 경우에는 광범위 다제내성 결핵 치료제인 자이복스를 써야할 것 같으니 다시 3차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하시는 담당교수님 말씀에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꼬박꼬박 약을 먹고 지시대로 꾸준하게 치료를 받으면서 언제 나을까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른 부위에 재발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재발 아니기를 바라며 부랴부랴 다시 우리 병원으로 와서 진료를 받았는데 기관지내시경으로 조직검사까지 해 본 결과는 야속하게도 결핵성 폐렴이었다.

투약 중에 반대편 폐에 새로운 병변이 생긴 것은 2차 약제 치료가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여 더 상위 단계 약제인 자이복스를 먹기 시작하였고 다시 주사치료도 병행해야 했는데 가나마이신이 품절되어서 아미카신으로 대체해 혈관주사로 투약을 시작하였다. 이것도 내가 스스로 왼쪽팔 혈관을 찾아 반대편 손으로 직접 주사를 놓았고 부작용만 없으면 오래먹고 맞을수록 좋다고 하셔서 한 달에 한번 외래 진료를 받으면서 치료를 계속 진행하였다.

자이복스가 혈소판 감소증과 오심구토, 신경병증을 부작용으로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책에서만 보던 남의 일로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먹게 되고 보니 그야말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별 증상이 없어 부작용 없이 먹게 되는 행운이 오나 싶었는데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과 발에 감각 이상이 오기 시작하고 오심, 구토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폐의 병변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어서 그걸 위안으로 삼고 치료를 계속했는데 오심이 갈수록 심해져서 음식 먹기가 힘들었고 억지로 끼니를 챙겨먹고 약을 먹었다가도 다시 토하게 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아침약을 먹은 후 출근해서 앉아 있노라면 눈앞이 핑핑 돌고 조금만 움직여도 구토를 하게 될 것 같아 심지어 사무실에서 아침마다 하는 맨손체조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발의 감각도 갈수록 무뎌져서 신발도 제대로 신을 수 없었고 다리가 터질 듯이 저리는 통증과 더불어 걸을 때면 발바닥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불안하게 흔들거리는 바람에 이러다가 혹시 걷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생겼다. 재활의학과와 신경과에서 진료를 받아봤지만 다발성 감각신경병증이라는 두려운 병명만 한 가지 추가로 얻게 되었을 뿐 특별한 치료법은 찾을 수 없었고 부작용들이 갈수록 더 심해져서 투약을 시작한지 넉 달이 되어가던 2010년 10월, 추적 C.T를 찍고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C.T검사 결과 폐의 병변은 거의 좋아졌는데 이번엔 심장 쪽에서 심낭삼출액이 또 새롭게 발견되었다. 역시 원인은 결핵성으로 보이고 그동안 워낙 음식섭취를 못한 탓에 전신 상태가 약해져서 생긴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번엔 자이복스를 제외한 결핵약과 더불어 스테로이드와 다른 항생제 한 가지를 더 추가해서 먹어야 했다. 스테이로이드 장기복용 환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인 만월형이 되가는 얼굴을 보고 주변 분들이 걱정해 주는 것도 반갑지 않고 일일이 내 병 상태에 대해 대답하는 것도 상처가 되던 12주를 보내고 나니 고맙게도 심낭삼출액은 흡수가 되어서 기존에 하던 약과 주사 치료만 다시 계속하였다.

아침마다 감각이 무뎌져 떨리는 손으로 팔에 바늘을 꽂을 때면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싶어서 원망스러운 마음도 많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살기 위해서, 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자이복스를 중단하니 오심구토가 사라져 음식섭취를 제대로 할 수 있었고 스테로이드 때문에 부었던 얼굴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신경손상은 비가역적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 손끝과 하지의 신경병증은 호전될 기미가 없고 오히려 나날이 새롭게 불편한 느낌이 증가되어 이러다 혹시 걷는 것 마저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는 여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로 X-RAY 와 C.T로 결과 관찰을 하면서 투약과 주사치료를 병행하다 이명증상이 생겨서 주사치료를 먼저 종료하고 2012년 6월, 6년여 만에 드디어 약도 끊게 되었다. 그 후로는 삼사 개월마다 추적 X-RAY 검사를 했고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올해 2014년 5월, 투약 종료 후 이년 만에 드디어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 다제내성결핵 진단을 받은 후 우연히 신문기사를 봤는데 우리나라 다제내성결핵 완치율은 24%밖에 안 되고 이렇게 낮은 이유는 첫째 다제내성결핵은 2차 약제들로 복합치료를 장기간 해야 하는데 고가의 비용문제로 환자들이 포기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 2차 약제들이 효과에 비해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치료가 중단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내 경우는 다제내성결핵 중에서도 쓸 수 있는 약제가 몇 가지 없었던, 광범위 약제내성결핵에 가깝다고 판정을 받았고 공동도 너무 크고 길어서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였지만 다행히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어서 첫째 이유인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었고 부작용으로 힘들었고 회복을 기대하기 힘든 신경병증을 얻었지만 다행히 간, 대장, 신장 등 다른 내장기관들은 잘 버텨줘서 결코 짧지 않는 시간동안 투약을 지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치료가 가능했던 것 같다.

또 하나 결정적인 호전의 이유는 투병기간 동안 내내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이어져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 줄, 아프지 않았더라면 결코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했을 가족들과 동료들로부터의 위로와 보살핌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병 때문에 얻게 된 위안 한 가지는 앉을 때와 걸을 때 느껴지는 둔부로부터 발끝까지 이어지는 감각 이상, 배변후의 개운하지 않은 느낌, 끊임없이 다리를 압박하는 찌릿찌릿한 통증, 몸을 움직일 때면 지구의 중력이 몇 배로 더 큰 것처럼 느껴지는 힘겨움은 4년째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결코 말로 설명할 수 없기에 알아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이런 감각이상과 통증에 대해 좋아질 수 없다면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해주시라는 기도를 올리고 있고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것 또한 감사하며 아프기 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내 스스로 걸을 수 있고 배설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닌,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병으로 얻은 깨달음 중 제일 커다랗게 다가온다.

이전과 다른 감각으로 걷기 시작하는 오늘도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놀라움과 감사를 느낀다. 이 고마움에 보답하는 길은 비록 느리고 불안정한 걸음이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걸어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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