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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간호 역사여행 ⑬ 지방 최초의 졸업간호원 탄생, 1913년
지방도시 평양에서 정규 간호교육 받은 ‘이희망’ 배출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3-09-03 오후 03:47:23


◇역사적인 졸업식 사진 엽서로 발행돼

1913년 3월 7일 금요일 저녁 8시 평양 남산현감리교회에서 감리교 여자병원인 광혜여원(廣惠女院)에서 간호원 교육을 받은 이희망(Hope Lee)의 졸업식이 열렸다. 그런데 홀 의사가 Korea Mission Field 5월호에 쓴 기사에는 그 공식 명칭을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 제4회 졸업식'으로 적고 있다. 왜 평양에서 서울의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이화여대 간호학부의 전신)의 졸업식이 열렸을까?

졸업식은 많은 평양 교인과 목회자들, 지역 고관과 유지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고, 여러 선교학교의 학생들이 합창으로 예식을 빛냈다. 졸업식의 핵심은 한국인 간호원들의 연설과 시연이었다. 이그레이스가 간호학교의 역사에 대해서 연설한 후, 학생들이 실습 시연을 할 때 이희망이 설명했고, 김마르다가 학교의 미래에 대해서 연설했다. 간호학교의 과거, 현재, 미래가 제시된 후, 커틀러 의사는 이희망에게 졸업장을 수여했다.

비록 간호원 한 명의 졸업식이었지만, 지방도시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정규 간호교육을 받은 첫 한국인 졸업간호원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사진은 엽서로 발행됐다. 사진을 보면 정동 보구여관에서 근무하다가 평양으로 옮긴 커틀러 의사로부터 졸업증서를 받는 이희망의 좌우에는 1908년 최초의 한국인 졸업간호원이 된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가 서 있다. 그 외 2명의 학생간호원과 아직 예모식을 하지 않아 간호모 대신 수건을 쓴 3명의 수습간호원이 보인다.

이희망은 서울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를 다니다가 1910년 5월 모리슨 간호원장이 사임한 후 후임자가 없는 상태에서 동대문에 병원이 건축되고 정동 보구여관의 병원과 입원실이 폐쇄되는 과정에서(진료소는 1912년 초까지 운영) 임시로 평양 광혜여원에서 운영된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여의사 커틀러와 홀, 졸업간호원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 그리고 1912년 3월 평양에 온 간호부장 앤더슨 밑에서 교육을 받고 북한 지역에서 배출된 첫 졸업생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희망은 잠시 평양에서 근무하다가 1913년 6월 9일 동대문 보구여관(Lillian Harris Memorial Hospital)이 공식 개원하자 서울로 돌아와 간호원으로 일했으며, 병원 옆에 있던 `보구여관 초등학교'에서도 가르쳤다.

1912년 1월에 내한한 나오미 앤더슨(Naomi Anderson) 간호부장은 한국어를 배우고 홀 의사를 돕기 위해서 3월부터 6개월간 평양 광혜여원에서 일했으며, 9월 20일 동대문병원으로 돌아왔는데, 이때 가르치던 두 명의 학생간호원과 한 명의 수습간호원을 데리고 왔다. 이어서 해주, 수원, 제물포, 서울에서 각각 한 명의 수습간호원을 받아 `동대문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를 개설하고, 1912년 말 제3회 졸업식에서 장 씨를 배출했다. 1914년 제5회 졸업식에서는 이경선, 이레나, 이메리가 졸업했다. 앤더슨은 1919년 동대문병원을 사임할 때까지 많은 한국인 간호원을 양성했으며, 안식년 후에는 평양에 가서 간호부장으로 간호원을 양성했다.

북감리회 해외여자선교회의 간호교육을 재정리하자면, 1903년 12월 1대 간호원장 에드먼즈에 의해 설립된 한국 최초의 간호학교인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는 1908년 2월부터 1910년 5월까지 2년간 2대 간호원장 모리슨이 책임을 맡았다. 이 기간에 3명의 졸업간호원이 배출됐다. 모리슨이 이임한 후 안식년에서 돌아온 커틀러 의사가 임시로 맡아서 1911년까지 운영했으나 정동 보구여관이 문을 닫고 그녀가 1912년 3월 평양 광혜여원에 임명되면서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의 정동시대는 종료되었고 임시로 평양시대가 열렸다. 1912년 1월 제3대 간호부장 앤더슨이 내한한 후 한국어 공부를 위해 3월부터 9월까지 평양 광혜여원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평양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교사는 앤더슨 간호부장, 홀 의사, 커틀러 의사, 김마르다, 이그레이스)가 정상화됐다. 1912년 9월 앤더슨은 동대문 보구여관으로 돌아와 간호원양성학교를 재개했고, 12월에 제3회 졸업식을 거행했다. 한편 이희망은 교육의 연속성 때문에 평양에 남아 1913년 3월 제4회 졸업식에서 졸업하고 서울 동대문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1913년까지 정동과 평양과 동대문에 있던 간호학교들을 모두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는 앤더슨 간호부장이 평양으로 간 1912년 3월부터 평양 광혜여원을 임시 학교 건물로 사용하다가 1912년 9월 동대문 보구여관으로 돌아왔다. 한편 평양 광혜여원에서는 1913년 이후 간호원 양성교육을 계속하여 자체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희망은 서울 정동과 평양과 서울 동대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다. 결국 정동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는 1912년 9월 동대문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로 발전했지만, 약 6개월간 평양에서 운영되는 과도기를 거치면서 자매학교인 광혜여원 간호원양성학교를 출범시키는 열매를 맺었다.

글·사진 : 옥성득 교수

※ 이 글에서는 간호사 명칭을 근대에서 활동했던 당시 그들을 부르던 간호원으로 통일해 서술했다.

※ 이번 13회 원고를 끝으로 `한국 근대간호 역사여행'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관심과 사랑으로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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