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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간호 역사여행⑤ 한국 간호교육의 선구자 에드먼즈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2-08-28 오후 01:27:55


글·사진 : 옥성득 미국 UCLA 한국기독교 부교수(아시아언어문화학과 임동순임미자 석좌)

◇한국 최초 간호교육기관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 설립
◇첫 한국인 졸업간호원 이그레이스·김마르다 배출
◇nurse 한국어 명칭으로 새 단어 `간호원' 만들고 불러

마가레트 제인 에드먼즈(Margaret Jane Edmunds, 1871∼1945)는 미국 북감리회 여자해외선교부의 간호선교사로 1903년 3월 서울에 파송되어 그해 12월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간호원장으로서 첫 한국인 간호학생(이그레이스, 김마르다, 정매티, 김엘렌)을 교육했다.
 
에드먼즈는 1871년 캐나다 온타리오 스미스폴즈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면서 크리미아 전쟁 때 흑해의 야전병원에서 활동한 나이팅게일의 이야기를 읽고 간호원이 될 꿈을 품었다. 1892년 12월 미시건대학교 간호원양성학교에 2회로 입학하여 힘든 2년 실습과정을 마친 후 졸업간호원이 되었다. 1894년부터 오하이오 주 톨레도 시의 킹스도터즈유니언에서 가난한 산모와 어린이의 건강을 돌보는 방문간호원으로 7년간 일했다. 도시빈민 사역을 하면서 그녀는 친근하고 책임을 다하는 유능하고 지도력 있는 간호원으로 인정받았다.
 
1900년 서울 보구여관의 커틀러 의사가 톨레도 교회를 방문하여 한국인 소녀들을 전문간호원으로 훈련시킬 간호원장이 필요하다고 연설했다. 에드먼즈는 이를 처음에는 무심히 들었으나 다시 권고를 받고 심사숙고한 후 한국행을 결심했다. 톨레도 엡워드감리교회의 후원을 받은 그는 1902년 9월 뉴욕 항을 출발하여, 런던과 지중해를 거치는 험난한 6개월의 여정 끝에 1903년 3월 18일 서울에 도착했다.
 
에드먼즈는 1903년 12월 말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를 설립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불과 2개월 전으로, 일본에 비해 20년, 중국에 비해 10년이 늦은 출발이었다. 또한 내외법과 조혼 풍속, 교육 받은 여자가 적은 점, 간호사업에 대한 인식 부족 등 여러 장애가 있었으므로 천천히 그러나 서둘러 나아갔다.
 
1904년 초에 수습학생 5명이 훈련을 받게 되자, 에드먼즈는 불편한 한복을 대신할 적당한 유니폼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동서양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는 복장을 비교하면서 밤낮으로 구상한 후 이화학당 교사 페인이 준 견본을 바탕으로 직접 한국적인 간호복을 재단하고 양재했다. 깃이 길게 내려가는 (연한 청색) 상의에 흰 치마로 간호복을 정했다. 이어 전도부인 황메례와 남자 번역인으로 하여금 영어 『규칙책』을 번역하게 하여 간호원의 임무를 분명히 했다.
 
에드먼즈는 이들과 함께 병자를 돌보는 새 직업인의 명칭으로 `간호원'을 만들었다. 당시 중국의 호병인(護病人)이나 간부(看婦), 조선의 의녀(醫女)는 하녀에 가까운 지위와 인식 때문에 사용하기 어려웠다. 청일 - 러일전쟁 때 일본어 `간호부'(看護婦)가 한국에 알려졌다. 에드먼즈는 동양 삼국의 용어를 검토한 후 중일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간'과 `호'를 수용하되 여자에 국한되는 `부' 대신 포괄적인 `원'을 사용하여 `간호원'(看護員)이란 새 단어를 만들었다.
 
나아가 에드먼즈는 1904년 세브란스병원이 설립되고 의료사업 연합 안이 제안되자, 1906년 쉴즈 간호원장이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학교를 설립하도록 도와주었다. 특히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의 교육과정을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학교에 전달했으며, 쉴즈와 상호 수업을 교류하면서 하나의 학교 설립까지 구상했다.
 
에드먼즈는 두 학교를 위해 첫 한글 간호학 교과서인 『간호교과셔』를 번역, 편찬하여 1908년 3월에 출판했다. 또한 쉴즈와 함께 1908년 3월 20일 서양인 졸업간호원으로 첫 간호협회인 대한졸업간호원회를 조직했다. 1908년 9월 해리슨 목사와 결혼하고 1928년 은퇴할 때까지 목포와 군산에서 사역하면서도 한국 간호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했다.
 
선교부 자료 파일에는 에드먼즈에 대한 평가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조용하고, 강하고, 유능하고, 숙녀답고, 사교적이고, 일을 피하는 법이 없다.”
 
그의 이러한 지도력이 있었기에 한국의 첫 간호원양성학교가 출범할 수 있었다. 그녀의 교육과정은 환자를 탁월하게 봉사하는 간호원 양성을 위해 전인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곧 그는 “첫 간호원 학급이 졸업하면 단순히 저 엄청난 괴물인 병마와 싸울 준비를 갖추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순결, 친절, 믿음, 온유의 옷을 입고 삶의 목적이 늘 위를 바라보고 위로 고양시키는 것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1906년 1월의 첫 예모식(가관식)과 1907년 1월의 두 번째 예모식, 그리고 1908년 11월 5일 첫 졸업식은 한국 여성으로 하여금 확립된 자아상과 인격, 다른 사람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근대 전문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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