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칼럼

[부산 좋은삼선병원] 박인숙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6-12-21 오전 10:13:35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는 많은 종류와 의미가 있다. 하루 8시간 이상 부딪히며 함께 하는 상대인데도 무의미한 관계가 있는가 하면, 잠시 스쳐 지났을 뿐인데도 평생 가슴 속에 남아 마음을 흔드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만남이 달콤한 `맛남'으로 남는다는 것은 살아가는 가치일 것이다.

　20여년 전 어느 날, 방학을 이용해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올 때였다. 기차가 갑자기 멈춰 섰고, “잠시 사고로 인해 정차하고 있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때까지 앞자리에 앉아서 혼자 책을 읽고 있던 4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우리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그 여성이 방송을 듣자마자 책을 덮고 나에게 자신의 핸드백을 쥐어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내 가방 좀 보관해줘. 누가 다쳤을 수도 있으니 가봐야겠어. 나는 간호사거든.”

　세월이 지나 나도 간호사가 됐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험한 환자도 두렵지 않았고 그 어떤 분비물도 더럽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과연 진심은 어땠을까? 쓰러져 있는 행인을 발견하면 `혹시 환자가 아닐까? 저러다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도 다가가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두렵기도 하다. 지하도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걸인의 발가락 사이에서 피고름이 보이면 마음으론 닦아주고 만져주면서도 발걸음은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지금은 너무나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간호사거든”하며 달려 나가셨던 그 분을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렇지 못한 간호사로 남아 있다.

　간호사는 많다. 그러나 필요한 때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누군가와 진정한 간호사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은 것 같다. 병원이라는 일터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로 인해 진정한 간호사가 될 수 있다면 그 만남은 맛남으로 남을 것이다.

　완전한 간호사로서의 만남과 동시에 그들에게는 삶의 가치를 심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스쳐 지나는 무수한 만남 속에서도 달콤한 맛남의 관계로 타인의 마음속에 내가 자리하게 될 것이다.

박인숙(부산 좋은삼선병원 수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