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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5-11-11 오전 08:25:05

김호(더랩에이치 대표 / 문화기술학 박사)

◇ 발생 가능한 최악의 상황 예상해 대비해야
◇ 매뉴얼은 체크리스트 기반 간결하게 제작
◇ 위기 대비해 전문인력 중심 사전훈련 필수

“작년에 메르스 대비 훈련을 할 때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은 모든 직원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메르스 확진 환자 5명을 모두 완치하고 의료진 감염도 전혀 없이 성공적으로 메르스 사태를 이겨낸 M병원 관계자가 1년 전부터 대비 훈련을 했던 과정을 언론에 설명하면서 전한 말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평소 건강검진과 꾸준한 운동을 하고 백신을 맞듯이, 병원의 위기관리도 위기가 터지기 전에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20년 가까운 위기관리 컨설팅 경험을 기반으로 필자는 4가지 요소를 정리한 바 있다. M병원의 사례를 이에 맞춰 살펴보자.

첫째, 원칙 기반의 위기관리 프로세스(principle-based process)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이 병원은 의사, 간호사, 행정직원 등 80여명이 두 달에 걸쳐 매뉴얼을 짰다. 언론을 통해 공개한 병원의 메르스 매뉴얼은 응급실 혹은 입원병실에서 발생한 경우, 외부 환자가 격리병상에 입원하는 경우 등 시나리오 기반으로 작성되어 있다.

이처럼 매뉴얼은 상황별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체크리스트로 만드는 것이 적절하다. 실제 이 매뉴얼은 10쪽 분량으로 되어 있는데, 매뉴얼을 불필요하게 두껍게 만드는 것보다 체크리스트 기반으로 간결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글 잘 쓰는 의사인 아툴 가완디의
〈체크, 체크리스트〉를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둘째, 위기관리 대응 훈련이 된 전문인력(people with practices)의 필요성이다.

이 병원은 2014년 4월과 5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 환자가 대거 발생하자 언젠가 한국에도 메르스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감염내과 교수를 중심으로 ‘메르스 신종 감염병 대응 체계 구축을 위한 전담팀’을 구축, 준비에 나섰다. 이들은 올해 메르스가 한국에 상륙할 때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대응 회의와 방호복 착/탈복 등을 포함한 신종감염병 대비 가상모의훈련을 반복했다.

흔히 매뉴얼을 갖추는 것으로 위기관리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매뉴얼은 운전면허 시험의 문제집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운전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도로 주행 등 실전 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위기관리 준비에서 매뉴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전문인력 중심의 사전훈련이다.

셋째, 사전 위기 예상과 사후 위기 평가(pre-crisis prediction and post-crisis review)이다.

이 병원 사례에서 눈여겨 볼 것은 이들이 최악의 시나리오(worst case scenario)를 기반으로 준비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삶은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지만, 위기관리에서 긍정적 사고는 득보다는 독이 된다. “설마 메르스가 한국에서 터지겠어? 우리야 괜찮겠지”라는 희망적 사고는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도록 우리를 만든다.

위기관리에 강한 리더십은 “우리에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혹은 “그런 일의 발생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 사람들이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일은 반드시 꼬이기 마련이다”라는 머피의 법칙이 위기관리에서 중요한 이유이다.

이 과정에서 최고 의사결정자의 지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글의 맨 처음에 인용한 것처럼 “이렇게까지 준비를 해야 하나?”라는 회의론이 조직 내부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병원은 사고가 터지기 1년 전부터 한국에서, 병원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예상했다. 또한 메르스 사태가 잠잠해진 뒤인 지난 9월말에는 관련 인력들이 함께 모여 메르스 사태와 병원의 대응을 돌아보는 평가회의도 가졌다. 외부 전문가 자격으로 이 회의를 지켜볼 수 있었던 필자는 한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이들은 외부 언론에 보도된 것과 같이 성공적인 위기관리를 축하하는 것보다 “우리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나온 모든 기록들을 공개했다. 이러한 공개적 논의는 다른 병원들에게도 소중한 참고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요소는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에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이해관계자와의 대화를 통해 존재감을 갖추는 것(presence before problems)이다.

병원 환자나 지역주민들과 평소 대화를 통해 신뢰를 사전에 갖추는 것, 또 병원 내부 임직원들과 위기상황 시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빠르고 정확한 소통을 개선하는 부분 등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위기는 또 찾아오기 마련이다. 병원은 그 어떤 조직보다 고 위험군 조직에 속한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위기는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병원은 지난번보다 더 잘 준비되어 있는가? 나는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알고 있는가? 위기가 지나가고 나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그 결과로 무엇을 변화시켰는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똑같은 위기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 위기관리 4가지 요소는 다음 링크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k4sHPlUM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