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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5-11-11 오전 08:21:33

정헌재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박사후연구원/캐나다 환자안전연구원 패컬티)

◇간호사가 먼저 바뀌면 병원 전체가 변화
◇변화가 일어나는 `티핑 포인트' 이끌어야
◇환자안전 최우선하는 조직문화 절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말콤 글래드웰이라는 작가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문구는 직역하면 `뒤집어지는 시점', 조금 부드럽게 말한다면 `변화가 일어나는 때'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변화는 점진적으로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수가 일정 선을 넘기는 순간, 순식간에 모든 구성원이 다 같이 변화해 버린다는 거예요.

환자안전이라는 분야를 다루는 제게, 보다 안전한 병원으로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의무인 제게, 티핑 포인트라는 말은 무척이나 남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저는 병원의 수많은 의료인들 중에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문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수가 티핑 포인트에 이르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해왔어요. 그 마술의 숫자에 다다르는 순간, 의료인 모두는 안전한 병원을 만드는 노력에 함께할 테니까요.

항상 환자의 곁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키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업무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늘 가지고 있는 저는 오늘, 병원 전체가 안전의 티핑 포인트에 이르는 것을 결정하는 이는 바로 여러분, 간호사 선생님들이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대부분의 우리네 병원에서 간호사의 수는 전체 인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마음 깊이 안전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받아들이고, 환자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일한다면, 병원 전체를 바꿀 수 있는 그 마법의 숫자는 이미 훌쩍 넘겨 버리게 되겠지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진정 간호사의 마음과 행동이 바뀌면 다른 모든 의료인들이 따르게 될까요? 저도 그것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한국 병원에서 한 가지 연구를 해보았습니다. 환자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면서도 가장 지키기 어렵다는 `손위생'의 수행에 의료인의 직종별로 어떤 요인이 작용하는지를 조사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의사를 포함한 병원의 위계질서에서 제일 위쪽에 자리한다는 스태프(Staff) 선생님들의 대답이에요. 그 분들은 간호사 여러분이 환자를 보기 전후에 철저히 손을 씻는 것이 자신이 손을 씻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꼽았습니다. 여러분의 규칙 지킴을, 그리고 그 아래 깔린 안전에 대한 신념을 보며, 자기 스스로도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었어요.

단언컨대 간호사 선생님들은, 여러분의 병원에서 막 움트려고 하는 환자안전이라는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물을 줄 수 있는, 그리고 그렇게 하고 계신, 제게, 아니 모든 환자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한 가지 저를 괴롭게 하는 것은, 우리네 병원들은 아직까지 여러분의 소중함을, 여러분이 보여주는 노력의 가치를 올곧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함입니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일하는 구역의 어디가 어떻게 위험한 상태인지, 환자에게 어떤 사고가 생길 수 있을지에 대해 제일 생생히 알고 있기에, 병원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여러분들의 그러한 경험과 지식을 안전의 향상으로 이끌어 낼만한 문화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는 않아 보입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개진할 통로도 충분치 않은 듯 하고,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계질서도 문제 삼지 않는 문화도 아직까지는 자리 잡히지 않은 듯 하구요. 간호사 선생님들께 주어지는 살인적인 업무량은, 어쩌면 간호사 스스로도 안전의 문화를 최우선으로 일하기엔 무리한 상황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우울한 마음마저 차오르는군요.

그런데 방금 말한 그 우울함의 상황은 딱 10여 년 전 제가 일했던 존스홉킨스병원에 처음 갔을 때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함을 기억해냈어요. 2015년 지금,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또한 가장 안전한 병원이라는 바로 그 곳 말입니다.

지금 존스홉킨스의 환자안전 관련된 주요 직책과 실제 업무는 간호사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안전과 관련된 것이라면 누구에게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심지어 병원에서 가장 어린 신참 간호사가, 깜빡 손을 씻지 않고 중환자실에 들어온 병원장을 멈춰 세우고 손 세정제를 내밀 수 있는 그런 병원입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엔, 역시나 존스홉킨스에서 일하는 의료인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간호사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었지요. 그들은 각자의 행동이 환자를 지킬 수 있음을 믿었고, 행동했고, 그리고 병원 전체를 바꿔버렸습니다.

받아들여 주세요. 여러분은 그 `변화의 순간'으로 병원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완벽하게 안전한 병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동시에, 여러분은 병원 전체가 결코 변화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는 존재임을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환자의 안전을 결정짓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분들입니다.

우리, 차근차근 해나가기로 해요. 손을 씻는, 환자를 제대로 확인하는 등의 간단해 보이는 것들부터 우리가 먼저 안전의 규칙을 지켜나가기로 해요. 다른 의료인들은 여러분의 노력을 보며 스스로를 바꾸어 나가고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고, 그리고 우리의 환자들은 안전해질 겁니다.

언젠가 제가 다시 간호사신문을 통해 인사를 드릴 기회가 있다면, 그땐 꼭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고마워요, 여러분은 정말로 해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