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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3-10-30 오전 08:24:55

신현호(변호사·법학박사 /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

◇소비자와 소통할 때 건강정책-제도 발전
◇의료인의 가치는 환자 존재할 때 인정돼
◇의료소비자 참여제도 생색내기용 안되길

의료소비자가 의료행위나 의료정책결정 시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소비자가 없는 공급자는 존재하지 못한다. 따라서 소비자는 갑을관계에서 갑이다. 의료 역시 마찬가지이다. 의료인은 의료소비자인 환자가 있어야 존재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직업이다.

그럼에도 의료소비자가 그런 지위에 있는지 의문이다. 하나뿐인 생명 앞에서 의료소비자는 시혜자인 의료인 앞에서 약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의료소비자의 참여를 통한 권리증진운동이 활발하고, 관련기관에서도 제도적으로 의료소비자 참여제도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의료소비자 참여가 의료의 전문성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자칫 생색내기용 제도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의료는 인류역사와 같이 시작되었지만 현대에 들어서 더욱 전문화, 세분화되어 의료인들조차 자기분야가 아니면 알 수 없게 됐다. 건강보험제도가 확대되면서 보건의료체계는 의료소비자와 의료공급자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서 더욱 혼란스럽게 됐다.

의료소비자는 자신이 내는 돈으로 의료공급자와 관련단체가 운영됨에도 불구하고 주권행사를 거의 못하고, 국외자 입장에 놓여 있다. 의료소비자는 정보에 취약하고, 비조직화되어 있는데다 의료소비자 내부의 갈등 역시 매우 커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의료공급자는 전문가로서 조직적이고 체계화되어 있어 논리적인 대응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확대하고 있다.

의료소비자는 자신의 진단결과와 치료내용을 알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해 의사처방전 2매를 발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처방전을 1부만 발행하는 의료기관이 있다. 의약분업 시행 목적 중 하나가 처방정보를 의료소비자에게 공개해 참여를 증대시키고, 의료소비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데 있다.

직접 치료받는 과정에서의 참여와 소통도 요원한데, 건강보험료 결정이나 진료평가에 참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같은 조직을 만든 이유가 힘없는 의료소비자를 대신해서 의료공급자와의 계약 시 의료소비자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의무를 다하는 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있다.

예를 들어 의료수가 협상 시 건강보험 재정에 여유가 있으면 있다는 이유로, 부족하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건강보험료가 인상되고 있다. 의료수가가 어떤 기준과 절차로 결정되는지 아는 의료소비자는 거의 없다. 이것이 공개되고, 의료소비자가 동의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참여와 소통을 위해 시민사회단체, 환자단체 대표를 자문위원이나 심의위원으로 참여시키는 경우에도 회의 직전이나 당일에 자료를 주기 일쑤이다. 회의자료를 받아보아도 지나치게 전문적인 부분은 시민사회단체 대표라도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참여와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모든 건강보험관련기관에서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의료소비자들을 참여시키고 있지만, 의료소비자가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해야 하는 위원회가 있는 반면, 참여하기 어렵고 해서는 안 되는 위원회도 있어 이에 대한 분별이 중요하다.

정책을 결정하거나 평가하는 위원회가 전자에 해당되고, 전문가들이 해야 하는 건강보험제도 연구와 구체적 심사평가 절차는 후자에 해당된다. 학문연구와 평가는 객관적 기준과 학문적 양심에 따라 결정되어야지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나 적당한 사회적 타협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간 의료소비자가 위원으로 참여하면서도 들러리서는 것처럼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결정된 정책에 형식적으로 참여해 구색맞추기식 동의를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의료소비자의 이름을 빌려 책임을 회피하려는 위원회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의료소비자를 이용하려 한다면 오산이다. 의료소비자가 전문적 지식에 약하고 힘이 없어 보인다고 무시했다가는 거시적 정책결정과 집행 시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건강보험료는 단계적으로 OECD 수준으로 높여 보장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의료소비자가 이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동의할 때만이 자연스럽게 부담시킬 수 있고 건강보험제도의 지속성장이 가능하다.

미시적 입장에서 의료소비자가 참여해야 하는 일 중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보험을 통해 큰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체감지수를 확인하고 확대하는 일이다. 경제학적 분석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된다고 해도 막상 중병에 걸릴 때 병원 가는 일이 두려워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책상에서 펜대를 잡고, 밑그림을 멋있게 그린 그림이 의료소비자에게는 한낮 꿈에 불과할 수 있다.

사회는 한 단면으로만 볼 수 없다. 의료부문에서도 사회 구석구석의 양상들을 축소시켜 이해함으로써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뒤돌아보아야 한다. 의료소비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원활하게 소통하면 건강보험의 발전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