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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3-10-30 오전 08:22:55

이혜경(국민대 예술대학 공연예술학부 교수 / 예술의료융합연구센터 소장)

◇의료현장, 치유와 공감 공동체로 발전하길
◇문학-인문학-예술-건축 등과 융합 시도
◇의료인 교육 다양한 커리큘럼 개발되길

예술과 의료는 고대로부터 인간과 인생을 이해하고 치유하기 위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해왔다. 19세기 중반 이후 의학이 과학으로 규정되고 예술은 표현과 감상을 위한 창작으로 제한됨에 따라 분리된 길을 가면서 탄탄한 전문성과 독립성도 갖추게 되었다.

이제 의학기술이 첨단화되고 의료산업이 팽창하는 21세기, 몸과 영혼의 전인적인 치유와 회복, 의료현장의 창조적인 공감공동체 구축을 위해 예술과 의료가 마침내 상생적 관계를 회복해야 될 때가 무르익었다.

예술의 입장에서 보면 오랫동안 분리되었던 예술과 삶의 경계, 각 예술 장르의 고립, 예술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장벽을 허물어야 할 때이다. 의학 연구와 교육의 입장에서 보면 환자를 몸과 정신의 유기적인 통합체로 이해하고, 건강과 질병에 대한 의료인문학적인 통찰을 제시할 때이다. 이 두 영역이 각자의 결핍을 해소하고 태생적인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서로 융합해야 한다.

현재 의료선진국에서는 의료인문학과 의학교육분야에서 '문학과 의학' '시각예술과 의학' '미디어 그리고 퍼포먼스와 의학' '의학커리큘럼에서의 인문학' '의료인문학과 임상실습' '건축과 치유환경' 등의 다양한 커리큘럼이 개발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두 분야의 융합에 대한 실천이 아직은 미흡하다. 하지만 근래 예술의 실용적인 쓰임새 확장과 의료현장의 소통과 공감에 대한 필요성이 확산되면서 의과대학의 커리큘럼이나 종합병원에서 문화예술과의 다층적/다면적 융합의 모델 개발이 시도되고 있다.

예술과 의료의 융합적 연구와 실천 과제를 네 가지로 정리해본다. 첫째, 인문/예술과 의료인 교육을 통합하는 창의적/실용적 프로그램 개발, 둘째, 인문/예술대학 전공자의 새로운 직업 기회 창출 및 문화예술 교육 전문인력 양성, 셋째, 예술 창작/교육과 의료현장과의 연계 지점 구축, 넷째, 의료교육 및 의료산업을 매개로 하는 치유/공감/창의 공동체 창출에 기여 등이다.

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한다. 현재 의료인문학과 예술 관련 통합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특히 서사(내러티브)와 공연(퍼포먼스) 예술과의 접목은 어떤 양상을 띠고 있는가? 한국 의료현장의 특수성과 한계는 무엇이며, 여기에서 예술이 갖는 효용성은 무엇인가?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정서에 기반한 의료인 소양 교육의 예술 관련 통합 프로그램의 내용과 방법론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한국 의료현장을 치유/공감/창의 공동체로 발전시키기 위한 촉매로써 예술 창작 프로그램은 어떤 지향점과 과정을 추구해야 하는가?

이쯤에서 시 한 편을 읽으며 숨을 돌리고 싶어진다. 윤동주 시인이 1940년에 쓴 시 '병원'이다.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는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이 작품 안에 소외와 불통의 근대적 병원 풍경이 흑백사진처럼 펼쳐진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적막한 병실, 살구나무 가지 사이로 손바닥만한 햇살이 내리쪼이는 뜰, 환자의 고통에 무심한 의사, 소독약 냄새와 금속성 소리가 진동하는 진료실…

그러나 이 절망적 의료현장에도 희망의 씨앗이 숨어 있다. 쓸쓸한 병실로 돌아가는 여자가 가슴에 꽂는 금잔화 한 포기, 그 여자의 자리에 누워 모두의 회복을 기원하는 나의 마음,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공감능력, 질병이란 시련이 가져다 준 축복이다. 마침내 무미건조한 풍경 위에 따뜻한 색감과 부드러운 호흡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예술은 이처럼 묘사와 상징을 동시에 내포한다. 관찰하는 시선과 공감하는 정서를 포개어 전달한다. 현실 안에 숨겨진 초월적 차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예술과 의료의 만남은 의료인들에게 창조적 상상력과 공감능력을 촉발시킬 것이다.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는 시련을 견뎌낼 수 있는 통찰력과 인내심을 줄 것이다. 예술가들은 창작의 궁극적인 목적인 생명과 사랑에 깊이 뿌리내리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병원은 진정한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 될 것이다.

그 상생적 여정에 가장 중요한 촉매자이자 진정한 공감전문가인 간호사 여러분을 초대한다. 함께 연구하고 함께 실천할 과제와 기회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