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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3-10-30 오전 08:20:12

안덕선(한국의학교육평가원 원장 /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환자가 인간으로서 갖는 주체성 존중해야
◇인문학적 성찰 통해 간호의 해답 찾아야
◇과학과 인문학 꿰뚫는 통합적 시선 필요

의학이 치료(cure)에 중심을 두고 발전해온 반면에 간호는 돌봄(care)으로 출발했다. 의학과 간호 모두 치유의 학문으로서 영어로는 'healing art'로 표현된다. 여기서 'art'의 뜻은 한자를 차용해 기예(技藝)가 비교적 본래의 의미에 상응하는 단어로 번역된다. 분명 'art'는 일반적으로 과학으로 번역되는 'science'와 구분된다.

우리가 전수받은 일본식 서양의학교육제도는 질병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해석을 중시한다. 과학중심주의로 교육받은 의사는 대체로 환자와의 소통능력이 떨어지고 질병 이외의 사람을 전인적으로 보는 시각이나 환자 개인의 질병에 대한 경험,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적인 파급효과 등은 교육을 받아보지 못하였거나 아예 사고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대중이 의사를 비인간적이며 차갑고 냉정한 인간으로 인식하는 이면에는 우리나라의 의학교육이 일제 강점기부터 매우 과학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 한 원인일 수 있다.

'의료인문학'이라는 용어는 `생명윤리'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고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 회복 운동이 태동되던 1970∼80년대에 등장했다. 미국의 저명한 생명윤리학자이며 국가생명윤리위원장을 지낸 펠리그리노(Pellegrino)는 “의학이 본래의 지적인 능력을 회복하고 윤리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인문학의 교육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부연해 서양의학은 발생부터 인문학적인 전통이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의료인문학은 새로운 학문도 아니고 기존의 과학적 의학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균형 감각을 상실한 과학적 의학에 인간의 주체성(subjectivity)을 부여하고 딱딱해진 의학을 순화시키고 인간적으로 변모하게 한다. 의료인문학은 의학의 인문학적 속성과 과학적 속성을 모두 꿰뚫어 볼 수 있는 통합적인 시선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간호는 의학과 달리 '과학적 치료' 위주가 아닌 '인간적 돌봄' 중심으로 발전되었고, 자연과학보다는 사회과학적 요소가 훨씬 강하다. 간호사는 의사가 갖는 차고 냉정한 이미지 보다는 인간적이고 따듯한 인상이 우선이다.

인간적인 돌봄을 아직까지는 기계나 과학이 대신하지 못한다. 돌봄 자체는 이미 윤리적이며 인문학적인 단어인 셈이다. 그러나 돌봄의 주역인 간호도 전문영역이 세분화되고 거대 자본 거대 의료기관의 경제적인 생존 작동원리 속에서 의학이 과학의 함정에 빠진 것처럼 인간성과 사회성을 상실할 수 있는 개연성은 항상 존재한다.

간호에서 돌봄의 미학이 상실되었을 때 그 파급 효과는 의학보다도 오히려 더욱 클 수도 있다. 간호가 갖는 돌봄의 본질적인 인간성과 사회성을 어떻게 유지하고 배양하는가의 문제는 간호직의 생존과 번성을 위한 절대적인 명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제도에서 간호사가 진정한 돌봄을 실천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장애요소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간호업무의 과부하로 탈진한 간호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연약하고 젊은 여성이 난폭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직장 내 갈등도 도처에 숨어 있다. 우리나라 조직 문화가 갖고 있는 일방소통의 위계질서에 숨이 막히는 장면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간호가 갖는 윤리적 본질성이 기관 생존을 위한 경제성이나 경제적 이득의 작동원리에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에 대한 이해, 환자에 대한 이해, 간호사 자신에 대한 이해, 불안·공포·질병에 대한 개별 경험, 통증과 고통(suffering),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것들은 과학이 아닌 인문학의 영역이다.

통상적인 인간은 일상에 자신의 취약성(vulnerability)을 잊고 산다. 그러나 낯선 곳에 여행만 해도 곧 자기 자신이 매우 취약한 상태임을 발견한다.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한 치 앞이 불안한 상황이 쉽게 연출된다. 몸이 아픈 경우 마음까지 침범한 고통과 공포는 특별한 돌봄의 시선을 요한다.

간호사가 자신의 직무에서 익숙하게 접하게 되는 환자에게서 개별적인 돌봄의 시선을 발견하는 것은 자신이 타고난 본성보다는 훈련된 시선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환자와의 만남은 만남 그 자체가 이미 선택된 것이고 윤리적인 상황이다. 철학자 가이타(Gaita)는 “이런 상황에서 돌봄은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현현, 출현(epiphany)의 현상”이라고 말한다.

환자와의 만남은 단순한 마주침이 아니다. 그것은 환자들과 말하고 듣는 과정에서 그들이 한 인간으로서 갖는 개별성과 주체성을 존중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자신에 대한 존중이다. 돌봄에 대한 체화된 즉각적인 반응은 자신과 인간을 이해하는 훈련에서 출발하는데, 이것의 밑바탕은 학문 자체가 윤리성을 포함하는 인문학에서 출발한다.

인문학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인간이 문(文)화되는 과정이며, 인간에 대한 거대한 서사이며, 인간에 대한 아기자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힘들고 고된 일에도 이미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간호의 선택된 특권에 대한 이해의 해답은 인문학적 성찰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