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한간호협회 간호역사뿌리찾기팀
◇ 군대해산 항전에서의 간호사의 활동
◇ 간호사들 구호활동에 천하가 감읍
일제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후 고종황제는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되는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해 열강의 지지와 후원을 받고자 했다. 이를 안 일제는 고종을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을 강제 체결했다. 동시에 부속 밀약으로 군대해산을 단행했다.
이에 시위보병 대대장 박성환이 한국 군대 지휘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자결했다. 박성환 장군의 순국에 한국군은 격분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같이 긴급한 상황에서 세브란스병원과 보구여관의 간호사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부상병 간호에 힘썼다.
훗날 동아일보 1926년 12월 14일 신문에서는 군대해산 당시 간호사들의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해산 반대 당시의 일반인민의 목숨은 더구나 참혹하여 도처에서 죽고 썩히고 잡히는 사람이 수효를 알 수 없었다. 간호사들이 몸을 버리고 구호에 활동한 것은 그 당시 온 천하가 감읍한 바였다.”
한국군 부상병에 대한 간호활동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일제강점기 간호사들의 항일전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키워준 계기가 됐다.
◇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간호사 항일활동
◇ 조선 여성의 자주독립 의지 보여줘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 상해 임시정부를 후원하고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각종 활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여성단체들이 비밀리에 조직됐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대한민국애국부인회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는 3·1운동으로 투옥된 애국지사들의 옥바라지와 가족 구호를 위해 모금활동을 전개했다.
이 활동의 중심에 간호사들이 있었다. 간호사들은 전국적인 규모의 지부 설치와 군자금 모금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며 앞장섰다. 하지만 동료의 배반으로 서울과 대구에서 일제히 검거됐다.
이때 체포된 간호사는 이성완(결사대장), 이정숙(적십자부장), 김태복 등이다. 또한 취조결과에서 독립운동활동과 관련된 사람들로 기록된 세브란스병원 관계자 29명과 동대문부인병원 관계자 13명도 모두 간호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항일운동 기간은 비록 짧았으나 그 조직과 활동상, 독립정신은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자주독립에 대한 조선 여성들의 강한 염원을 일제에 각인시킨 애국활동이었다.
◇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의 항일활동
◇ 서울 종묘 앞에서 만세시위 주도
일제강점기 세브란스병원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주축이 돼 운영했던 덕분에 비교적 일제의 감시가 덜했던 장소였다. 이에 세브란스병원은 기독교계와 학생단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으로 한국 민족운동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3·1운동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3월 5일 학생들이 남대문광장에서 대대적인 만세시위운동을 펼쳤다. 이날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10여명이 군중 속에 섞여 부상당한 사람들을 치료하다가 일본 군경에게 체포됐다. 같은 해 12월 18일에는 세브란스병원 노순경, 박덕혜, 이도신, 김효순 간호사가 서울 훈정동 대묘(종묘) 앞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활동에서도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이 주축이 돼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다.
◇ 결백단 조직과 활동
◇ 여성인재들 간호사 지원하게 만든 계기
결백단은 정규 간호사는 아니지만 항일독립전쟁을 일으켰을 때 나이팅게일 정신으로 간호사업에 투신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숭의여학교 출신 동창들로 구성됐다.
결백단은 크리미아전쟁 당시 백의를 입은 간호여성들의 활동을 본받아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결백단의 활동은 여성들의 간호활동이 민족의 독립과 여권운동의 선두에 설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간호직에 우수하고 민족의식이 투철한 여성들이 지원하게 되는 동기도 됐을 것으로 보인다.
◇ 간우회의 조직과 항일구국운동
◇ 박자혜 간호사 주도로 일제에 항거
일제에 항거한 `간우회 사건'은 3·1운동 직후 조선총독부의원의 박자혜 간호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이다. 박자혜의 주도로 조선총독부의원 간호사들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그치지 않고 주요 병원의 간호사들이 일제에 대항해 파업과 태업을 하도록 이끌었다.
일제 식민지 보건의료정책의 심장부인 조선총독부의원에서 간호사들이 주도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한 점과 그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일제에 맞서 파업과 태업을 조직적으로 주동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 근우회 조직 활동에 참여한 간호사
◇ 독립운동과 함께 여성 권리찾기 활동
근우회는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민족해방운동 조직이다. 여성운동의 역량과 실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 인간으로서의 권리 찾기 등의 활동을 추구했다. 광주학생운동 같은 독립운동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일제로부터 견제와 탄압을 받았다.
근우회에 참여한 대표적인 간호사는 정종명(초대 중앙집행위원장), 김태복(평양지회 집행위원), 한신광(근우회지 창간호에 `근우운동과 재정방침에 대하야' 투고) 등이다.
간호사들은 간호업무에 충실했음은 물론 민족의 앞길을 열어주는 각종 활동에 온 힘을 바쳤다. 특히 여성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과 인간으로서의 권리 찾기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간호사의 사회적 지위를 한 단계 올려놓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