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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0-10-26 오후 18:31:03

◇ 사람 몸과 마음의 무늬 배우는 교육 절실
◇ 과학 중심 교육에서 인문학 강조 추세로
◇ 돌봄의 여신 히기에이아 전통 부활해야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정에는 예외 없이 히포크라테스 흉상이나 전신상이 서 있다. 그 석상이나 동상 밑에는 어김없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2500년이라는 의학의 역사에 기대 의학의 권위를 그리고 의료윤리의 중요성을 드러내고 가르치려는 것이다. 간호대학에서는 대개 이것이 나이팅게일 상과 선서로 대체된다. 표면상 의학과 대칭을 이루는 것 같지만 2500년과 150년이라는 역사가 가지는 무게의 차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은 의학의 역사를 치료(cure) 위주의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와 보살핌(care)을 제공하여 스스로 일어서도록 돕는 히기에이아(Hygieia)의 전통이 서로 경쟁적으로 균형을 이루어 온 과정이라고 한다. 의술을 담당하는 많은 신들 중에서 남신과 여신을 하나씩 골라 역사서술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의학과 히포크라테스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전통에, 간호학과 나이팅게일은 히기에이아의 전통에 속한다. 그러니 치료와 보살핌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의술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면 히포크라테스와 나이팅게일이 아닌 아스클레피오스와 히기에이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실제로 유럽 의료인문학 연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네덜란드 네이미헌에 있는 성 라드바우드 의과대학의 고풍스런 교수회관 건물 양쪽에는 히포크라테스나 나이팅게일이 아닌 아스클레피오스와 히기에이아의 신상(神像)이 나란히 서 있다. 역동적 균형을 강조하는 동아시아의 음양(陰陽)과도 유사한 사유구조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측면에서 나이팅게일은 히포크라테스의 충실한 후계자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인위적 개입보다는 자연치유의 원리를 따랐으며 질병 그 자체보다는 고통 받는 환자를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두 사람 모두 히기에이아 전통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고, 그렇다면 인위적 개입을 주로 하는 현대의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를 조상으로 숭배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역설일 수도 있다. 역사적 상징은 먼저 기록하고 취하는 자의 것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역사의 맥락은 끊임없이 변한다.

　이러한 의술의 두 전통이 현대 의학에서는 과학적 요소와 인문학적 요소의 분화로 나타난다. 20세기의 의학은 과학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었고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그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균형의 추가 다시 히기에이아와 인문학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의과대학의 교육은 신체에 관한 이론을 바로 의료현장에 적용하는 기계적 사유에서 환자가 호소하는 `문제'를 치료와 보살핌의 출발점으로 삼는 유연한 접근법으로 전환되고 있다. 교과과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과대학의 인증평가 기준도 의학을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그리고 `의료인문학'으로 삼분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히기에이아 전통의 중심에 있어야 할 간호학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20세기 간호학은 19세기 나이팅게일의 위대한 전통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의학에 종속됐다. 그 결과 개입과 과학 위주의 의학 패러다임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고 본래의 히기에이아 전통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의학에서 인문학의 전통이 빛을 잃은 것과 비슷한 경로다.

　이제 그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 의료인문학의 부활이 필요한 이유에서야 의학과 간호학의 구분이 없겠지만 학문과 실천의 기본 성격으로 볼 때 그 당위성에서는 간호학이 더 절실하고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人文學)은 사람의 무늬(人紋)에 대한 배움이다. 과학적 의학이 사람의 신체구조와 작동원리에 관한 객관적 사실을 탐구한다면 인문학적 의학과 간호학은 그 사람이 뿜어내는 상징과 의미의 아우라를 파악한다. 쪼개고 나누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한 아스클레피오스들로서는 따르기 어려운 배움의 길일 수 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의 상처 그 자체보다는 그로 인한 고통에 귀 기울이는 데 익숙한 히기에이아들에게는 익숙한 길이다. 20세기 의학이 아스클레피오스가 히기에이아를 부리는 것이었다면, 21세기에는 히기에이아가 아스클레피오스를 이끄는 모양새를 취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타이완의 의료인문학은 우리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서울대 의과대학에 해당하는 국립대만대학의학원에는 의학인문관이란 이름의 건물이 있는데 의학과 의료의 역사·윤리·철학에 관한 상당한 양의 자료가 항시 전시돼 있어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친숙해지도록 하고 있었다.

　병원 앞에는 히포크라테스 대신 죽어가는 아이의 병상을 사랑과 근심이 어린 자세와 표정으로 지키고 있는 의사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이 서 있다.필데스라는 화가의 그림을 모방한 것으로 그 작품명이 `The Doctor'다. 많은 의료인 중 한 사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의료인의 본래적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의료인문학은 사람(몸과 마음)의 무늬를 배우는데, 사람의 무늬는 다양한 삶의 경험과 가치로 채색되어 있는 넓고 깊은 상징체계다. 이 그림 한 장이 그 무늬를, 그리고 의료인문학의 거의 모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만의 의료계는 우리보다 앞서 그것을 배우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 특히 아스클레피오스의 빛에 가려져 있던 히기에이아들의 분발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