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후에도 학업 계속하며 간호사 되는 목표 이뤄
◇ 보구여관 간호학생과 결혼하기 위해선 공개적으로 신청한 후 허락 받아야
◇ 전통사회 여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자신의 일과 결혼 선택해
‘간호역사뿌리찾기’는 매월 넷째 주에 발행되는 간호사신문에 연재된다.
이 글에서는 간호사 명칭을 근대에서 활동했던 당시 그들을 명명했던 간호원이라 통일해 서술했다.
1907년 1월 30일, 정동 제일교회에서는 보구여관 간호원양성소의 제2회 가관식이 열렸고, 이후 간호학생 중 한 명이 한국인 목사인 이하영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결혼한 간호학생의 이름은 명확히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간호학생이 고학년(senior) 학생인 것과 여의사 커틀러(Mary M. Cutler, 보구여관 담당의사)가 여러 해 전에 치료한 환자였으며, 현재 훌륭한 학생이자 병원의 비공식적인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기록에서 첫 번째 가관식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이 그레이스’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당시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결혼할 때 결혼 당사자 간의 구혼은 천한 행동으로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이었으며, 예비신부가 부모가 정해준 배우자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보구여관 간호원양성소에서는 의사 앞에서 구혼자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간호학생에게 직접 결혼 신청을 해야 했으며, 결혼 신청을 받은 간호학생은 자신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그 결혼을 결정해야 하는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물론 간호학생들은 처음 접하는 결혼 신청방법에 대해 당황하고 놀라워했다. 결혼 신청을 받은 간호학생들은 한 달 동안 결혼 여부를 고민하고, 간호원양성소 감독에게 자신의 결정을 알려야 했다. 간호원양성소 감독은 결혼을 결정한 간호학생에게 만약 그녀가 구혼자가 요구하는 주부로서의 역할이 어떤 것인가를 알지 못하고 받아들일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주의를 주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구여관 간호원양성소 간호학생은 삶의 반려자를 찾는데 자신의 의지로 동의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존중받을 만한 젊은 여성이 그녀를 아내로 삼고자 원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진정한 찬성 또는 반대를 감히 표현한 적이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 그레이스는 그녀의 구혼자에게 매우 온화하지만 강건한 목소리로 “저는 간호원이 되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준비해왔고, 결혼을 해도 졸업할 때까지 간호원양성소에 머무를 것입니다”라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알렸다.
1월 30일 새 유니폼을 입은 아름다운 신부 이 그레이스는 정동 제일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축복하는 가운데 이하영과 성스러운 결혼식을 올렸다. 새 신부는 결혼한 지 4개월 반 후 20일간의 휴가를 얻어 남편의 호위를 받으며 시어머니 집으로 떠났다.
이 그레이스는 결혼 후에도 전문직 간호원이 되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교육과정을 밟았으며, 1908년 11월 5일 한국 최초의 졸업간호원이 되어 한국 근대 간호역사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됐다.
한국 전통사회의 삼종지도(三從之道)에 따라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나이 들어서는 아들을 따라야 했던 여성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인생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구혼자에게 자신의 계획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이 그레이스는 결혼 이후에도 자신의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으며, 결국 전문직 간호원으로 인정받아 한국 사회에서 전문인으로 활동함으로써 간호계 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고민하였던 많은 여성들의 귀감이 될 수 있었다.
＊ 대한간호협회 간호역사뿌리찾기팀 이 방 원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