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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간호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작-"해프닝"
[편집국] 편집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5-12-22 오전 09:42:53
도대체 언제까지 연기를 시켜줘야겠어요?
또 시작이다. 자동응답 기능이 있는 이 최신식 전화기는 답답하다며 엄마가 엊그제 놔주고 간 건데 출판사에 전화번호를 알려줬더니 편집장은 내내 이곳에 메시지를 남긴다. 허나 난 주구장창 받지 않고 무시해 버린다. 뭘 믿고 그렇게 배짱을 여유롭게 부리는 것인지.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한번 만지고는 그대로 주방으로 가려는 찰나였다. 다시 벨이 울렸다. 이번엔 전화벨이 아니었다. 길다랗게 늘어진 파자마 주머니 속에 삐죽하고는 뭉툭하게 튀어나온 핸드폰이었다. 빨강 주황 흔들리듯 빛이 빛나고 내가 좋아하는 nell의 음악이 흐른다. 전화를 들어 누구에게 온 것인지 확인을 한다. 이제 버릇이 되어 버렸다. 통화를 하기 전 확인하는 것 쯤. 모르는 번호였다. 이런 건 또 더 잘 받지 않는 편인데. 그날따라 좀 더 여유로웠던 것일까. 무심코 감정 없이 내 뱉은 여보세요 라는 말에 아주 살갑게 대답해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민제씨? 만화가 장민제씨 맞나요?
벌써 내가 누구란 것 쯤 알고 있으면서. 계속 지겹도록 전화를 해왔던 팬들 중에 한명일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메마르게 전하고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나 소라야. 정소라. 운하고등학교 3학년 2반!
-정… 소라?
잊고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러버렸으니까. 애써 과거 일들, 과거 친구들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정말, 소라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동창회를 한다고 했다. 내일 저녁 일곱시. 벌써 자기들끼리는 한 세네번 쯤 만났었다고. 연락이 안되서 이제야 연락하는 거라고. 그렇게 인기 만화가가 되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고. 전화를 끊고 보니 십분이 넘게 통화를 했다. 하지만 고작 내가 말한거라곤. 나는 잘 지내. 뭐하고 사니. 몇시라고. 그리곤 잘 기억나질 않는다. 이제야 알겠다. 나를 떠나버렸던 사람들이 버릇처럼 말하던 것들.
`장민제. 너란 여자 정말 건조해. 그리고. 너무 차가워.'
십년이 흘렀다. 그동안 어떻게들 변했을까. 그게 궁금한가? 나도 이런 자리에 왜 나오게 되었는지 잘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곱시. 하나 둘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장소는 그냥 보통 고기집이었는데 인테리어가 심하게 엉망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파리 진드기, 구석구석 붙어 있는 그을음. 그래도 고기 맛은 그런대로 봐줄만했다.
시골아이들이었다. 우리는. 그래서 더 순수했었다. 도시로 대학을 오면서 잠시 아주 잠시 그 아이들이 그리워지곤 했었다. 겨우 세반으로 이루어진 3학년들, 그래서 다들 형제처럼 자매처럼 친구처럼 애인처럼. 거짓말 조금 보태어서 이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 다시 이 아이들의 얼굴과 웃음을 보니 조금은 기억이 난다. 나, 예전엔 말 많고 말괄량이에다가 사고뭉치였었는데. 나, 친구 때문에 울고 친구 때문에 상처받는 그런 평범하고 이쁜 아이였는데.
“야 어쩜 그렇게 연락 한 번이 없냐. 우린 너가 죽은 줄 알았어.”
“좀 바빴어.”
“그래? 그래 뭐. 바쁜 게 좋지 요즘 세상에. 자 내 잔 한잔 받아라.”
맑은 소주 한잔이 가득 담긴다. 이런 거, 보기만 해도 욱하도록 넘어오지만 오늘은 나도 좀 취해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냥 잊고 살았었는데. 나 실은 예전이 많이 그리웠던 것 같기도 했다. 한잔 가득 마시는 걸 보고 형욱이는 다시 한잔 더 준비한다. 형욱이. 아 그 아이는 지금 건설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라고, 요즘 그 낙에 사는 것 같다고. 아주 행복하다고 한다.
“니가 그림은 좀 그리는 줄 알았지만 만화가 될 줄은 몰랐지.”
“야, 왜 민제가 나 그림도 그려주고 그랬어.”
“그런데 나는 왜 안그려줬어. 에이 장민제 너 나빴어. 나빴어 진짜 나빳떠…”
벌써 한명이 k.o
잠시 후. 미안하다는 듯이 너무 많이 늦어서 미안하다는 듯이 누군가 헐레벌떡 하고는 뛰어온다. 신발을 벗고 자리에 앉아 머리를 조금 만지고는 그 아이 주변을 살펴본다. 연신 입가에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은 채. 나는 고개가 숙여졌다. 나도 모르게. 정말 나도 모르게. 시야라는 것이 참 신기하게도 분명 아래를 보고 있는데도 그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아직도 한참을 웃고 있고 소주잔을 들고 마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시간은 정말 많이 흘러갔다. 그리고 지나고 나면 한줌의 재가 된 듯 그런 거무스름한 추억이 되어 잘 생각나지도 그렇다고 다시 돌아오지도 않는다.
그래도 이제 십년 세월인데. 그 정도면 우리 다시 친구가 되어도 괜찮을 텐데.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았다. 겨우 소주 세잔? 참. 이래서 더 미움을 받는 다니깐. 어딜 가나 퍽퍽한 사람 메마른 사람이라는 소리만 듣고. 다
또 시작이다. 자동응답 기능이 있는 이 최신식 전화기는 답답하다며 엄마가 엊그제 놔주고 간 건데 출판사에 전화번호를 알려줬더니 편집장은 내내 이곳에 메시지를 남긴다. 허나 난 주구장창 받지 않고 무시해 버린다. 뭘 믿고 그렇게 배짱을 여유롭게 부리는 것인지.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한번 만지고는 그대로 주방으로 가려는 찰나였다. 다시 벨이 울렸다. 이번엔 전화벨이 아니었다. 길다랗게 늘어진 파자마 주머니 속에 삐죽하고는 뭉툭하게 튀어나온 핸드폰이었다. 빨강 주황 흔들리듯 빛이 빛나고 내가 좋아하는 nell의 음악이 흐른다. 전화를 들어 누구에게 온 것인지 확인을 한다. 이제 버릇이 되어 버렸다. 통화를 하기 전 확인하는 것 쯤. 모르는 번호였다. 이런 건 또 더 잘 받지 않는 편인데. 그날따라 좀 더 여유로웠던 것일까. 무심코 감정 없이 내 뱉은 여보세요 라는 말에 아주 살갑게 대답해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민제씨? 만화가 장민제씨 맞나요?
벌써 내가 누구란 것 쯤 알고 있으면서. 계속 지겹도록 전화를 해왔던 팬들 중에 한명일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메마르게 전하고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나 소라야. 정소라. 운하고등학교 3학년 2반!
-정… 소라?
잊고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러버렸으니까. 애써 과거 일들, 과거 친구들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정말, 소라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동창회를 한다고 했다. 내일 저녁 일곱시. 벌써 자기들끼리는 한 세네번 쯤 만났었다고. 연락이 안되서 이제야 연락하는 거라고. 그렇게 인기 만화가가 되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고. 전화를 끊고 보니 십분이 넘게 통화를 했다. 하지만 고작 내가 말한거라곤. 나는 잘 지내. 뭐하고 사니. 몇시라고. 그리곤 잘 기억나질 않는다. 이제야 알겠다. 나를 떠나버렸던 사람들이 버릇처럼 말하던 것들.
`장민제. 너란 여자 정말 건조해. 그리고. 너무 차가워.'
십년이 흘렀다. 그동안 어떻게들 변했을까. 그게 궁금한가? 나도 이런 자리에 왜 나오게 되었는지 잘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곱시. 하나 둘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장소는 그냥 보통 고기집이었는데 인테리어가 심하게 엉망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파리 진드기, 구석구석 붙어 있는 그을음. 그래도 고기 맛은 그런대로 봐줄만했다.
시골아이들이었다. 우리는. 그래서 더 순수했었다. 도시로 대학을 오면서 잠시 아주 잠시 그 아이들이 그리워지곤 했었다. 겨우 세반으로 이루어진 3학년들, 그래서 다들 형제처럼 자매처럼 친구처럼 애인처럼. 거짓말 조금 보태어서 이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 다시 이 아이들의 얼굴과 웃음을 보니 조금은 기억이 난다. 나, 예전엔 말 많고 말괄량이에다가 사고뭉치였었는데. 나, 친구 때문에 울고 친구 때문에 상처받는 그런 평범하고 이쁜 아이였는데.
“야 어쩜 그렇게 연락 한 번이 없냐. 우린 너가 죽은 줄 알았어.”
“좀 바빴어.”
“그래? 그래 뭐. 바쁜 게 좋지 요즘 세상에. 자 내 잔 한잔 받아라.”
맑은 소주 한잔이 가득 담긴다. 이런 거, 보기만 해도 욱하도록 넘어오지만 오늘은 나도 좀 취해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냥 잊고 살았었는데. 나 실은 예전이 많이 그리웠던 것 같기도 했다. 한잔 가득 마시는 걸 보고 형욱이는 다시 한잔 더 준비한다. 형욱이. 아 그 아이는 지금 건설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라고, 요즘 그 낙에 사는 것 같다고. 아주 행복하다고 한다.
“니가 그림은 좀 그리는 줄 알았지만 만화가 될 줄은 몰랐지.”
“야, 왜 민제가 나 그림도 그려주고 그랬어.”
“그런데 나는 왜 안그려줬어. 에이 장민제 너 나빴어. 나빴어 진짜 나빳떠…”
벌써 한명이 k.o
잠시 후. 미안하다는 듯이 너무 많이 늦어서 미안하다는 듯이 누군가 헐레벌떡 하고는 뛰어온다. 신발을 벗고 자리에 앉아 머리를 조금 만지고는 그 아이 주변을 살펴본다. 연신 입가에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은 채. 나는 고개가 숙여졌다. 나도 모르게. 정말 나도 모르게. 시야라는 것이 참 신기하게도 분명 아래를 보고 있는데도 그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아직도 한참을 웃고 있고 소주잔을 들고 마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시간은 정말 많이 흘러갔다. 그리고 지나고 나면 한줌의 재가 된 듯 그런 거무스름한 추억이 되어 잘 생각나지도 그렇다고 다시 돌아오지도 않는다.
그래도 이제 십년 세월인데. 그 정도면 우리 다시 친구가 되어도 괜찮을 텐데.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았다. 겨우 소주 세잔? 참. 이래서 더 미움을 받는 다니깐. 어딜 가나 퍽퍽한 사람 메마른 사람이라는 소리만 듣고.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