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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간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설거지
[편집국] 편집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5-01-20 오전 10:46:27
손가락 한번 닿으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수돗물에게 고마워하면서 저녁 설거지를 한다. 반기(飯器)와 수저. 국그릇과 접시. 작은 찌개냄비… 깨끗하게 비워지는 크고 작은 그릇들. 깨끗한 물에게 몸을 맡겨 방금 목욕을 한 듯 기분이 좋아 서로 마주하며 웃는 것 같아 나도 따라 미소 짓는다.
소리 없는 웃음에서 작은 빛들이 서로 만나 아롱거린다. 하루의 일이 끝난 시간이다. 설거지는 마치 작은 새가 지푸라기를 매번 한 올씩 물어다가 차근차근 포근하고 안락한 둥지를 만드는 것처럼 행복한 가정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실 가닥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무 살을 넘긴 아들 둘은 둥지를 떠나가고 남편과 둘만 남은 초 핵가족이 된 지 몇 년이 되어 설거지는 단출하다. 그것도 남편의 저녁이 외식으로 이어지면 혼자서 먹은 저녁 설거지는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럴 때는 간단하여 편하고 좋기보다는 왠지 외롭다. 떠나서 사는 식구가 보고 싶어진다.
함께 오순도순 살고 싶은데, 모여 사는 것이 쉬운 것 같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 시절은 언제 다시오나 아쉽고 지나온 날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언제부턴가 인간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옷과 음식과 집이 어우러져야 했다. 의복보다 집보다 음식은 일차적 요구인 만큼 설거지 또한 필수이다. 그것도 하루 세 번. 시대의 변천 따라 설거지가 여성 전용만이 아닌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여성의 몫이다.
최근 설거지를 하면서 내가 열 살이 되어서부터 어머니를 도와 부엌에서 해낸 설거지 횟수는 얼마나 될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여섯 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설거지뿐만 아니라 시장 다녀오기, 잔심부름과 청소 등 하는 일이 많았지만 설거지는 단순히 반복되는 까닭인지 사실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잔심부름이나 청소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하기도 했지만, 설거지만은 자주 잔뜩 찌푸려서 했다는 것이 지난날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다.
고등학교 시절 자취생활 할 때는 하기 싫은 설거지 때문에 저녁밥을 굶기도 하였고, 사람이 진화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이런 저런 일에 얽매여 살지 않을텐데 하며 문명의 발달을 푸념하기도 하였다. 알몸뚱이로 나무 열매나 따먹으며 가끔 사냥을 하면
서 살던 시대가 얼마나 멋있었을까 하고 실없는 생각도 들었다.
스물 다섯 살 즈음에는 시집을 가야한다고 채근하는 어머니에게 밥하고 빨래하고 특히 설거지가 싫어서 결혼을 안 하겠다고 말한 때도 있었다. 어머니는 `설거지가 귀찮으면 먹지 말아야지. 안 먹고 살 수 있나. 여자가 결혼을 해야지' 하며 달래었다.
그 때 궁여지책으로 수녀원으로 들어가야 하겠다고 마음 다지고 있었는데 직장 선배가 넌지시 말해 주었다. 수녀원에 들어가면 몇 년의 수련기간까지는 날마다 밥하고 설거지만 시킨다고… 어이쿠 이것도 아니구나 싶었지만 그래도 수련기간이 끝나면 기도하며 일하고 보고 싶은 책을 실컷 보리라는 생각에서 그곳에 지원하였으나, 당시 신앙이 없었던 아버지의 극구 반대 때문에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성소(聖召)가 모자랐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는 하지만 날마다 새벽잠에서 깨어나면 부엌으로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고 매일 가족을 위하여 일만 하는 어머니가 보기 딱하기도 하였고, 나 자신도 그런 여자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 한심하다고 치부하던 시절이었다.
하루 세끼 먹고 치워야 하는 우리 인간의 삶에 오죽했으면 설거지 기구까지 나왔을까 싶다. 생활 속에서 설거지의 횟수가 많은 만큼 어쩌면 그것은 삶의 성숙과 완성을 기약하는 작업이리라. 지금은 싱크대 앞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하는 여성의 모습은 나도 여자이지만 참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TV에서 남편들이 설거지하는 아내의 등 뒤로 살며시 다가가서 껴안아주는 모습을 종종 보았지만 설거지는 하루의 성취를 통하여 보금자리의 사랑을 확인하고 새로운 삶의 힘을 얻어 가족과 일치의 길로 한 걸음씩 충실하게 나아가는 것일게다.
생명의 물과 어우러진 설거지는 내일을 위한 새로운 시작이다. 직장을 가진 이유로 나의 저녁 설거지는 보다 느긋하게 그리고 새 아침을 준비하기에 꼼꼼하게 한다. 비우고 채우고 다시 담고 비우는 일상은 마치 한 채의 집을 완성하기 위한 벽돌쌓기와 같은 것이리라.
언젠가는 내 인생의 설거지를 할 시점이 올 것이다. 하루의 설거지 뒷모습처럼 나의 삶의 뒷모습도 아름답고 싶다. 있는 그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젖은 손을 닦으며 하루의 수고가 씻어내린 듯 마음의 위로가 찾아든다. 파장 짧은 영롱한 빛으로 다가와 꿈처럼 웃어본다. 설거지는 오늘밤도 산뜻한 내 마음의 초롱별이 된다. 〈끝〉
소리 없는 웃음에서 작은 빛들이 서로 만나 아롱거린다. 하루의 일이 끝난 시간이다. 설거지는 마치 작은 새가 지푸라기를 매번 한 올씩 물어다가 차근차근 포근하고 안락한 둥지를 만드는 것처럼 행복한 가정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실 가닥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무 살을 넘긴 아들 둘은 둥지를 떠나가고 남편과 둘만 남은 초 핵가족이 된 지 몇 년이 되어 설거지는 단출하다. 그것도 남편의 저녁이 외식으로 이어지면 혼자서 먹은 저녁 설거지는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럴 때는 간단하여 편하고 좋기보다는 왠지 외롭다. 떠나서 사는 식구가 보고 싶어진다.
함께 오순도순 살고 싶은데, 모여 사는 것이 쉬운 것 같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 시절은 언제 다시오나 아쉽고 지나온 날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언제부턴가 인간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옷과 음식과 집이 어우러져야 했다. 의복보다 집보다 음식은 일차적 요구인 만큼 설거지 또한 필수이다. 그것도 하루 세 번. 시대의 변천 따라 설거지가 여성 전용만이 아닌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여성의 몫이다.
최근 설거지를 하면서 내가 열 살이 되어서부터 어머니를 도와 부엌에서 해낸 설거지 횟수는 얼마나 될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여섯 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설거지뿐만 아니라 시장 다녀오기, 잔심부름과 청소 등 하는 일이 많았지만 설거지는 단순히 반복되는 까닭인지 사실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잔심부름이나 청소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하기도 했지만, 설거지만은 자주 잔뜩 찌푸려서 했다는 것이 지난날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다.
고등학교 시절 자취생활 할 때는 하기 싫은 설거지 때문에 저녁밥을 굶기도 하였고, 사람이 진화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이런 저런 일에 얽매여 살지 않을텐데 하며 문명의 발달을 푸념하기도 하였다. 알몸뚱이로 나무 열매나 따먹으며 가끔 사냥을 하면
서 살던 시대가 얼마나 멋있었을까 하고 실없는 생각도 들었다.
스물 다섯 살 즈음에는 시집을 가야한다고 채근하는 어머니에게 밥하고 빨래하고 특히 설거지가 싫어서 결혼을 안 하겠다고 말한 때도 있었다. 어머니는 `설거지가 귀찮으면 먹지 말아야지. 안 먹고 살 수 있나. 여자가 결혼을 해야지' 하며 달래었다.
그 때 궁여지책으로 수녀원으로 들어가야 하겠다고 마음 다지고 있었는데 직장 선배가 넌지시 말해 주었다. 수녀원에 들어가면 몇 년의 수련기간까지는 날마다 밥하고 설거지만 시킨다고… 어이쿠 이것도 아니구나 싶었지만 그래도 수련기간이 끝나면 기도하며 일하고 보고 싶은 책을 실컷 보리라는 생각에서 그곳에 지원하였으나, 당시 신앙이 없었던 아버지의 극구 반대 때문에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성소(聖召)가 모자랐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는 하지만 날마다 새벽잠에서 깨어나면 부엌으로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고 매일 가족을 위하여 일만 하는 어머니가 보기 딱하기도 하였고, 나 자신도 그런 여자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 한심하다고 치부하던 시절이었다.
하루 세끼 먹고 치워야 하는 우리 인간의 삶에 오죽했으면 설거지 기구까지 나왔을까 싶다. 생활 속에서 설거지의 횟수가 많은 만큼 어쩌면 그것은 삶의 성숙과 완성을 기약하는 작업이리라. 지금은 싱크대 앞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하는 여성의 모습은 나도 여자이지만 참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TV에서 남편들이 설거지하는 아내의 등 뒤로 살며시 다가가서 껴안아주는 모습을 종종 보았지만 설거지는 하루의 성취를 통하여 보금자리의 사랑을 확인하고 새로운 삶의 힘을 얻어 가족과 일치의 길로 한 걸음씩 충실하게 나아가는 것일게다.
생명의 물과 어우러진 설거지는 내일을 위한 새로운 시작이다. 직장을 가진 이유로 나의 저녁 설거지는 보다 느긋하게 그리고 새 아침을 준비하기에 꼼꼼하게 한다. 비우고 채우고 다시 담고 비우는 일상은 마치 한 채의 집을 완성하기 위한 벽돌쌓기와 같은 것이리라.
언젠가는 내 인생의 설거지를 할 시점이 올 것이다. 하루의 설거지 뒷모습처럼 나의 삶의 뒷모습도 아름답고 싶다. 있는 그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젖은 손을 닦으며 하루의 수고가 씻어내린 듯 마음의 위로가 찾아든다. 파장 짧은 영롱한 빛으로 다가와 꿈처럼 웃어본다. 설거지는 오늘밤도 산뜻한 내 마음의 초롱별이 된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