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글 - 홍신영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며
[편집국] 편집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1-10-18 오전 09:33:29
20세기 초인 1915년에 탄생하셔서 87년 생애중 65년간을 한국의 간호와 연세대학교의 간호를 위해 헌신하시고 2001년 10월 5일 생신에 즈음하여 10월 9일 소천하신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지난 6년 4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계시며 65년간 가르치셨던 것보다 더 많은 교훈과 사랑을 교감하시며 전해주셨습니다. 의식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저희들이 방문할 때마다 몸짓으로 표정으로 눈물로 음성으로 반응하시며 계속 교류하셨던 모습이 가슴에 새겨있습니다.
선생님의 인품은 단아하시고 냉철하신 성품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시는 통찰력으로 저희들을 지도하셨습니다. 교단에 서시면 교실 전체 학생들을 한눈으로 전부 꿰뚫어 확인하시고 칼칼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모든 학생들을 각성시키시면서 간호가 곧 인생살이의 기본철학이라고 강조하시던 선생님. 당신은 삶 속에서 오로지 간호만을 실천하시고 가르치시며 헌신된 삶의 모습으로 유난히도 깨끗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사시면서 저희에게 모델이 되어주셨습니다.
비전있는 행정가로서의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선생님께서는 1960년대 연세대학교 간호학과장으로서 고 백낙준 총장님의 배려로 학장이 아님에도 이례적으로 학장단 교무위원회에 참석하시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셨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이는 선생님의 간호대학 승격을 위한 열망이 간절함과 함께 매우 겸손한 마음으로 임하셨던 것을 엿보게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선구자 역할을 하셨기 때문에 그 어려운 역경에서도 간호학을 과학에 근거된 학문으로 성장시키는 토대를 마련하셨습니다
선생님 또 기억합니다. 1968년도에 저희 간호학과가 간호대학으로 인가와 동시에 간호대학 건물을 신축했을 때에 봉헌예배를 위해 당시 이대 총장 김활란 박사님의 축사와 광성고등학교 악기부의 축하연주는 전국적인 축하분위기를 자아내었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단합된 감격을 느꼈고 이러한 합심되고 헌신된 마음에 대하여 선생님께서도 감사의 표시로 어떠한 말씀보다 더욱 진한 미소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그 큰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간호를 위해 일하셨던 선생님! 1960년대 7년간 대한간호협회 회장으로 계셨을 때 국내에 유일한 전문가단체회관을 건립하신 개척자이셨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조직적인 대한간호협회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한국의 간호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대한간호협회 건축헌금 모금시에도 모든 이의 중론을 모아서 진행하시기 위해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거치되 갑론을박 시간이 지연되더라도 인내하시고 필요시에는 휴정을 결정하여 피로를 풀어주시는 부드러움과 한편으로는 모두 협력할 수밖에 없는 카리스마를 갖고 계셨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우리 대학을 정년퇴임하시고 예수간호대학으로 부임해 가셨을 때도 학생기숙사를 건축하시고 흐뭇해하시면서 제2의 세브란스로,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을 만드신다고 자랑스러워 하셨었습니다.
선생님, 고희를 전주에서 맞이하셨을 때 저도 선생님을 축하하러 가서 드린 말씀에서 우리 선생님 마음도 튼튼, 몸도 튼튼이라고 축사를 드릴 때 파안대소하시며 공감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건강과 생활리듬을 철저히 조절 통제하셨고 자신을 통제하시는 건강관리자의 모델이 되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장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듯이 선생님이 남기신 간호의 업적은 영원합니다. 1996년에 우리 간호대학을 새로 건축하였을 때 선생님의 생신을 맞이하여 축하하는 시간을 마련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휠체어를 타시고 오시어 말씀으로 표현되진 않으셨지만 온몸으로 기뻐하시고 만족해하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나타납니다.
선생님 6년여를 병상에 계시면서 우리가 일을, 학생교육을, 환자간호를 잘하나 지켜보시면서 우리를 채찍질하셨습니다. 더 잘하라고 그래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격려하셨습니다. 선생님을 돌보는 동안 저희는 모든 환자를 선생님을 돌보듯 해야만 되겠다고 결심하게 만드셨습니다.
선생님 비록 육신은 저희를 떠나셨으나 평생에 가르치심과 충성되고 변절되지 않는 흔들림이 없는 마음은 저희 속에 남아 살아움직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퇴직 후에 생애 유일하게 소유하셨던 집을 형제들과 합하여 처분하시고 5억을 마련하시어 전액을 간호대학에 희사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생애는 몸과 마음과 사상과 재물 등 모든 것을 간호 후학들을 위해 남겨주시고 진정 빈손, 빈마음으로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품에 온전히 안기시고 평안 누리시옵소서.
고고하신 우리 선생님, 이젠 더 이상 육신을 뵈올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천상
선생님께서는 지난 6년 4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계시며 65년간 가르치셨던 것보다 더 많은 교훈과 사랑을 교감하시며 전해주셨습니다. 의식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저희들이 방문할 때마다 몸짓으로 표정으로 눈물로 음성으로 반응하시며 계속 교류하셨던 모습이 가슴에 새겨있습니다.
선생님의 인품은 단아하시고 냉철하신 성품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시는 통찰력으로 저희들을 지도하셨습니다. 교단에 서시면 교실 전체 학생들을 한눈으로 전부 꿰뚫어 확인하시고 칼칼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모든 학생들을 각성시키시면서 간호가 곧 인생살이의 기본철학이라고 강조하시던 선생님. 당신은 삶 속에서 오로지 간호만을 실천하시고 가르치시며 헌신된 삶의 모습으로 유난히도 깨끗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사시면서 저희에게 모델이 되어주셨습니다.
비전있는 행정가로서의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선생님께서는 1960년대 연세대학교 간호학과장으로서 고 백낙준 총장님의 배려로 학장이 아님에도 이례적으로 학장단 교무위원회에 참석하시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셨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이는 선생님의 간호대학 승격을 위한 열망이 간절함과 함께 매우 겸손한 마음으로 임하셨던 것을 엿보게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선구자 역할을 하셨기 때문에 그 어려운 역경에서도 간호학을 과학에 근거된 학문으로 성장시키는 토대를 마련하셨습니다
선생님 또 기억합니다. 1968년도에 저희 간호학과가 간호대학으로 인가와 동시에 간호대학 건물을 신축했을 때에 봉헌예배를 위해 당시 이대 총장 김활란 박사님의 축사와 광성고등학교 악기부의 축하연주는 전국적인 축하분위기를 자아내었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단합된 감격을 느꼈고 이러한 합심되고 헌신된 마음에 대하여 선생님께서도 감사의 표시로 어떠한 말씀보다 더욱 진한 미소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그 큰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간호를 위해 일하셨던 선생님! 1960년대 7년간 대한간호협회 회장으로 계셨을 때 국내에 유일한 전문가단체회관을 건립하신 개척자이셨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조직적인 대한간호협회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한국의 간호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대한간호협회 건축헌금 모금시에도 모든 이의 중론을 모아서 진행하시기 위해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거치되 갑론을박 시간이 지연되더라도 인내하시고 필요시에는 휴정을 결정하여 피로를 풀어주시는 부드러움과 한편으로는 모두 협력할 수밖에 없는 카리스마를 갖고 계셨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우리 대학을 정년퇴임하시고 예수간호대학으로 부임해 가셨을 때도 학생기숙사를 건축하시고 흐뭇해하시면서 제2의 세브란스로,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을 만드신다고 자랑스러워 하셨었습니다.
선생님, 고희를 전주에서 맞이하셨을 때 저도 선생님을 축하하러 가서 드린 말씀에서 우리 선생님 마음도 튼튼, 몸도 튼튼이라고 축사를 드릴 때 파안대소하시며 공감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건강과 생활리듬을 철저히 조절 통제하셨고 자신을 통제하시는 건강관리자의 모델이 되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장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듯이 선생님이 남기신 간호의 업적은 영원합니다. 1996년에 우리 간호대학을 새로 건축하였을 때 선생님의 생신을 맞이하여 축하하는 시간을 마련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휠체어를 타시고 오시어 말씀으로 표현되진 않으셨지만 온몸으로 기뻐하시고 만족해하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나타납니다.
선생님 6년여를 병상에 계시면서 우리가 일을, 학생교육을, 환자간호를 잘하나 지켜보시면서 우리를 채찍질하셨습니다. 더 잘하라고 그래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격려하셨습니다. 선생님을 돌보는 동안 저희는 모든 환자를 선생님을 돌보듯 해야만 되겠다고 결심하게 만드셨습니다.
선생님 비록 육신은 저희를 떠나셨으나 평생에 가르치심과 충성되고 변절되지 않는 흔들림이 없는 마음은 저희 속에 남아 살아움직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퇴직 후에 생애 유일하게 소유하셨던 집을 형제들과 합하여 처분하시고 5억을 마련하시어 전액을 간호대학에 희사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생애는 몸과 마음과 사상과 재물 등 모든 것을 간호 후학들을 위해 남겨주시고 진정 빈손, 빈마음으로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품에 온전히 안기시고 평안 누리시옵소서.
고고하신 우리 선생님, 이젠 더 이상 육신을 뵈올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