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혈관 침범 간암’이라도 환자의 위험도를 정밀하게 분류해 맞춤형 치료를 적용하면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삼성서울병원 방사선종양학과 박희철·유정일·김나리 교수 연구팀은 혈관 침범이 있는 간암 환자 526명을 대상으로 치료 방법에 따른 예후를 분석, 환자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위험도 예측 모델’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방사선종양학(Radiotherapy and Oncology)’ 최근호에 발표됐다.
간암 세포가 간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인 ‘간 문맥’ 등을 침범하면 진행성 간암(BCLC C기)으로 분류된다. 암이 간 전체로 퍼지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될 위험이 크고 간 기능도 급격히 나빠져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치료가 어려운 영역으로 꼽힌다.
특히 동일한 치료를 받더라도 환자에 따라 생존 기간이 5.8개월에서 98.4개월까지 극명하게 갈려, 환자 상태에 맞는 최적의 치료법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연구팀은 환자의 간 기능, 종양 크기, 침범 형태, 간 외 전이 여부 등을 종합한 정밀 예측 모델을 구축했다. 이 모델을 통해 환자를 초저위험부터 고위험군까지 분류한 결과, 초저위험군의 생존 기간 중앙값은 47.3개월인 반면 고위험군은 6.6개월로 나타나 예후 예측의 유효성을 입증했다.
특히 새 모델은 기존 표준 모델(IMbrave150)과 비교했을 때, 치료 후 1~3년 경과 시점의 생존율 및 재발 예측 정확도가 모두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의 핵심은 위험도에 따라 최적의 치료 조합이 다르다는 점을 밝혀낸 데 있다.
분석 결과 초저위험 및 저위험군에서는 기존의 ‘간동맥화학색전술(TACE)과 방사선치료(RT)’를 병행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반면 중등도 및 고위험군에서는 면역항암제(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 기반의 치료가 월등한 효과를 보였다. 특히 면역항암제에 방사선 치료를 병행할 경우(AB+RT), 기존 치료 대비 병의 진행 위험은 43%, 사망 위험은 24% 감소했다. 방사선 치료가 암세포를 파괴하며 면역 체계를 활성화하는 일종의 ‘백신 효과’를 일으켜 면역항암제의 효능을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연구는 진행성 간암 환자들에게 일률적인 치료 대신 ‘위험도 기반 맞춤 치료’를 적용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유정일 교수는 “혈관 침범 간암은 임상적 특성이 매우 다양해 단순히 병기만으로 치료법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며 “이번에 개발한 위험도 모델을 통해 환자 개개인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치료 조합을 찾는 것이 생존율 향상의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