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디지털 헬스 앱이 정작 건강 관리가 시급한 이들에게 외면받는 주요 원인이 ‘디지털 헬스 리터러시(Digital Health Literacy)’ 부족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내 성인 4명 중 1명 이상이 디지털 환경에서 건강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고령층과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서 심각한 격차를 보였다.
삼성서울병원 임상역학연구센터 조주희 교수와 암환자 삶의 질 연구소 윤정희 교수 연구팀은 디지털 헬스 분야 국제 학술지 <저널 오브 메디컬 인터넷 리서치(JMIR)>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1041명을 대상으로 연령별 설문 및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조주희 교수팀이 개발한 34개 문항의 ‘디지털 헬스 리터러시 평가도구(DHTL-AQ)’를 활용해 역량을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이 도구는 실제 앱 활용, 정보 검색, 신뢰성 평가 등 과제 기반으로 점수화한 것이 특징이다.
조사 결과 연구 참여자의 전체 평균 점수는 73.8점(100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27.8%(289명)가 디지털 헬스 리터러시 역량이 ‘낮음’으로 분류됐으며, 이들의 평균 점수는 31.5점에 그쳤다. 나머지 72.2%(752명)는 ‘높음’으로 평가됐으며, 이들의 평균 점수는 90.3점으로, 양 그룹 간의 격차가 매우 큰 것으로 확인됐다.
정보 활용 능력의 격차는 곧 새로운 형태의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연구팀의 심층 분석 결과 디지털 헬스 리터러시 역량이 낮은 그룹은 60세 이상 고령층, 월 소득 200만원 이하 저소득층, 무직 등 사회적 취약 계층이 주를 이뤘다.
특히 60대 이상의 경우 취약성이 두드러졌다. 60대 이상(250명) 중 디지털 건강 문해력이 ‘높음’으로 평가된 사람은 22%(55명)에 불과했다. 이는 20~30대, 40~50대 등 다른 연령대에서 ‘높음’ 역량을 가진 사람이 주류인 것과 크게 대비된다.
실제 조사 항목을 기준으로 리터러시 역량이 낮은 사람은 건강 관련 앱 찾기에 19.4%만 성공했고, 회원가입은 17%만 가능한 것으로 평가돼 디지털 헬스로 가는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연구를 주관한 조주희 교수는 “건강정보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역량 자체에서 격차가 나타난다”며 “고령층과 취약계층에 맞춘 맞춤형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 직관적이고 단순화된 앱 설계, 검증된 건강정보 제공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단순히 기기 보급을 넘어, 사회적 교육 프로그램, 공공 차원의 디지털 접근성 지원, 그리고 의료 현장에서의 맞춤 안내 서비스까지 포괄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디지털 시대, 기술을 쓰는 능력이 곧 건강을 지키는 능력”이라며 “앞으로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적 지원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질병관리청과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국민 건강정보이해능력 조사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