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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규모 연구가 간호사 인력 부족이 환자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수치로 입증했다. 전문가들은 이 연구 결과가 간호사 인력난이 구조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한국 의료 현장에도 중요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교 간호학과 피터 그리피스(Peter Griffiths) 교수 연구팀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영국 내 4개 급성기 병원에 입원한 62만6313명 환자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등록 간호사(RN) 인력이 평균보다 부족한 날이 하루 늘어날수록 환자의 사망 위험이 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입원 후 첫 5일 동안 등록 간호사의 간호 시간이 1시간 늘어날 때마다 사망 위험은 3% 감소했다. 즉, 병상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의 ‘시간’이 곧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의미다.
연구는 또 간호 보조 인력(Nursing Support staff)의 증원이 등록 간호사 부족의 부정적 영향을 상쇄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이는 단순한 인원수 확대가 아니라, 전문성과 임상 판단 능력을 갖춘 간호사의 역할이 핵심임을 보여준다.
그리피스 교수는 “등록 간호사 확보는 환자 안전을 위한 최전선의 보호막”이라며 “비용 절감을 이유로 숙련된 간호사를 줄이거나 보조 인력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결국 환자 생명에 부담을 지우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의 현실은?
이번 연구 결과는 한국의 병원 현장에도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간호사 1인당 환자 수가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로 병원 규모에 따라 간호사 한 명이 10명에서 많게는 30명 이상의 환자를 동시에 돌보는 경우도 흔하다.
실제로 대한간호협회와 보건의료노조 등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병원 간호사의 상당수가 인력 부족으로 인한 과중한 업무와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그 결과 경력 1~3년 차 간호사의 이직률이 40%를 넘는 병원도 드물지 않다.
간호계에서는 “간호사 부족은 단순히 근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 안전과 생명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숙련된 간호사의 장기 근속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보조 인력 확충’, 해답 아냐
영국 연구팀의 결론처럼, 보조 인력의 단순 투입은 간호사 부족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
최근 한국에서도 간호법 시행과 함께 간호사의 진료지원업무 제도화 논의가 활발하지만 전문가들은 등록 간호사 중심의 체계적 교육과 자격 관리 없이는 환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사의 전문 역량은 단순한 업무 수행을 넘어 환자 상태를 판단하고 즉각 대응하는 고도의 임상 능력을 포함한다”며 “이 부분은 단기간 교육이나 보조 인력 확충으로 대체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간호사에 대한 투자는 환자 생명에 대한 투자
이번 연구는 간호사 확보가 단순한 인건비 문제가 아니라 국민 생명과 직결된 정책 과제임을 보여준다.
정규 간호사 1시간의 돌봄이 환자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병원과 정부 모두가 인력 배치 기준을 재검토해야 함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간호사 인력의 충분한 확보와 공정한 근무 환경, 그리고 숙련된 간호사 양성 체계 구축이야말로 의료의 질을 높이고 환자 안전을 지키는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