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시 황둔면의 한 보건진료소. 지난겨울, 심정지로 쓰러진 한 노인을 살리기 위한 사투가 벌어졌다. 119에 신고가 접수됐지만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15분,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기까지는 40분이 걸렸다. 보건진료소장은 현장에서 심폐소생술과 제세동기를 적용했지만 끝내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응급 상황에서 기본 처치는 가능했지만, 그 이상은 제도적으로 막혀 있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보건진료소가 농어촌 주민들에게 단순한 ‘진료소’를 넘어 ‘생명선’이 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 50대 남성은 조현병과 당뇨발로 건강 상태가 악화돼 사실상 돌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의 90세 부친과 함께 살아가는 집에는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보건진료소장은 매일 방문해 혈당을 확인하고 인슐린을 투약했으며 상처 소독과 교육을 병행했다. 행정복지센터 및 복지기관과 연계해 요양보호사와 생활지원사를 붙여준 것도 보건진료소의 역할이었다. “월 1~3회 방문하는 민간 의료기관만으로는 이 환자를 돌볼 수 없었다. 결국 매일 방문할 수 있는 보건진료소가 유일한 희망이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80대 여성은 거동이 불편해 보건진료소에서 고혈압 약을 처방받길 원했다. 그러나 보건진료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고혈압 약은 단 두 종류뿐. 의사의 직접 진단과 처방 없이는 투약이 불가능하다. 환자는 결국 불편한 몸을 이끌고 3개월마다 병원을 찾아야 했다. 보건진료소장은 “의사의 영역을 침범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주민 곁에서 필요한 약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싶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돌봄 영역에서도 보건진료소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94세 여성 환자는 오랜 와상 생활로 욕창이 악화됐지만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가정간호사조차 이를 관리하지 않았다. 결국 보건진료소장이 직접 주 2~3회 환자를 찾아가 상처를 소독하고 피부관리 교육을 진행했다. 보호자와 함께한 이 치료 덕분에 환자는 다시 일상적인 돌봄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현행 농어촌의료법은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에게 24주 직무교육만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은 전문간호사 수준의 임상교육과 법적 권한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보건진료소장의 승진은 ‘무보직 6급’이 한계여서 근무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진료소는 임시로 세워진 제도가 아니라 여전히 농어촌 주민의 건강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이제는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해야 할 때입니다.”
응급처치 현장부터 만성질환 관리, 돌봄 연계까지—농어촌 보건진료소는 오늘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민의 건강을 지켜내고 있다. 그러나 제도 개선 없이는 이 ‘작은 진료소’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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