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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규모와 환자 수에 따라 일정 비율의 간호사를 확보하도록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 기준은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감독과 제재가 미비한 탓에 법적 장치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피해는 결국 환자와 간호사에게 돌아가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는 “야간 근무 시 간호사 2명이 환자 40명을 돌본다”며 “응급 상황이 생기면 즉각 대처하기 어려워 늘 불안하다”고 말했다.
지방 중소병원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최소한의 간호사만 채용하거나, 아예 간호보조인력을 대신 투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환자 간호의 질이 저하되고 의료 현장의 피로도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법은 있지만, 지키지 않아도 처벌은 드물어
현행 법은 병원급 의료기관에 일정 비율 이상의 간호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기준이 모호하다. ‘환자 수 대비 일정 비율’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수치가 없어 현장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간호사 배치기준 위반으로 행정 처분을 받은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규정은 있으나 감독과 제재가 따르지 않아 ‘있으나 마나 한 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다보니 상급종합병원은 간호사 1명이 평균 10명의 환자를 본다. 종합병원 이보다 두배에 달하는 20명 정도를 맡고 있다. 일반병원의 경우는 35명 정도를 본다. 일본(7명)이나 미국(5명), 캐나다(4명), 호주(4명) 등 다른 나라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숫자다.
간호사 부족은 단순히 근무 환경의 문제를 넘어 환자 안전을 위협한다. 간호사 1명이 돌보는 환자가 많아질수록 낙상, 욕창, 약물 투여 오류와 같은 사고 위험이 커지고, 위급 상황에 즉각 대처하기 어려워진다.
이 같은 환경은 간호사의 이탈로 이어진다. 병원간호사회가 매년 조사 발표하는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를 분석한 최근 자료를 보면 병원을 사직한 간호사의 80.6%는 5년 미만의 경력자였다. 사직자 중에는 경력 1년 미만이 43.4%로 가장 많았다. 1년 이상∼3년 미만 20.5%, 3년 이상∼5년 미만 16.7% 등으로 경력이 짧을수록 사직하는 비율이 높았다.
병원을 그만둔 이유로는 ‘과다한 업무와 업무 부적응’이 20.8%로 가장 많았다. 타병원으로 이직 14.4%, 질병 11.2%, 직종 전환 10.8%, 교대근무 및 야간근무 6.3%, 일 가정 양립 어려움 5.8%, 급여 불만족 3.7% 등의 답변도 나왔다. 질병으로 인한 사직자 비율은 2018년 9.6%에서 2022년 11.2%로 5년 새 1.6%포인트 늘었다.
해외는 ‘명확한 기준·강력한 제재’로 대응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간호사 1명당 환자 수를 병동별로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일반 병동은 1:5, 중환자실은 1:2로 규정하며, 이를 위반하면 병원에 벌금을 부과한다.
호주 빅토리아주는 단계적 인력 확충을 법제화하고, 병원이 매년 충족 여부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인력이 부족한 병원에 정부가 직접 재정 지원을 제공한다.
이처럼 선진국은 명확한 기준, 강제적 제재, 재정적 지원을 통해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 “한국도 구체적·강제적 제도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병상 수 대비 간호사 비율을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는 병원에 대해 실질적인 행정처분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병원 간호사 인력 현황을 정기적으로 조사해 공개하고, 정부 차원의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지방과 중소병원일수록 인건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정부 지원 없이는 인력 충원이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 때문이다.
간호사 임금과 근무 환경 개선 역시 필수 과제로 꼽힌다. 과중한 업무와 낮은 보상은 간호사들이 현장을 떠나는 주된 이유이므로,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장기적 인력 확보는 불가능하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지금의 배치 기준은 법전에만 존재한다”며 “환자 안전을 지키는 최소 장치로서 강제력 있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간호사 배치 기준 강화는 단순한 노동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다. 환자 안전을 위한 제도적 대책 마련이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