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병원은 대형병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임금 수준으로 인해 간호사 유출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간호사 한 명이 감당해야 하는 환자 수가 많아 업무 부담이 과중하다는 점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병원간호사회가 실시한 ‘2024년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병동 근무 간호사 중 퇴직한 비율은 상급종합병원보다 종합병원은 1.9배, 병원은 2.6배 더 높았다. 반면 복직율은 각각 상급종합병원의 75%, 21%에 불과했다.
쉽게 말해, 어렵게 채용하고 교육시킨 신규 간호사들이 1~2년 내에 대학병원이나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이직하는 일이 흔하다는 뜻이다. 만성적인 인력난 속에 남아 있는 간호사들의 피로도는 극에 달하고 있다.
한 중소병원 간호부장은 “근무 이력이 짧은 간호사는 채용하기 꺼려진다”며 “중소병원이 대학병원으로 가기 위한 ‘경유지’로 전락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간호 인력난은 오랜 문제지만, 근무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대형병원과의 임금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병원 규모 따라 벌어지는 ‘몸값 격차’
간호사들이 중소병원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임금과 복지제도’다. 병원간호사회 조사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과 병원 간 간호사 연봉 차이는 평균 904만 원에 달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실제 체감 격차가 2배 이상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특히, 근속연수가 길어질수록 임금 격차는 더 커진다. 예를 들어 2023년 통계에 따르면 30대 대기업 근로자의 월급은 중소기업의 1.8배, 50대는 2.2배에 달한다. 경력이 쌓일수록 ‘몸값’이 올라야 하지만, 중소병원에서는 그 기대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복지제도도 선택의 기준이다. 상급종합병원은 높은 급여뿐만 아니라 특수부서 수당, 야간수당, 성과급 등 수당 체계가 더 정교하게 마련되어 있다. 반면, 중소병원은 급여 수준도 낮고 수당 체계도 미비한 경우가 많다.
환자 중증도가 높은 상급종합병원은 업무 강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지만,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법적 기준을 지키려는 노력 덕분에 비교적 안정적이다. 또한, 교육과 훈련 기회가 많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비율도 높아 근무 환경 개선 여지가 있다.
반면, 일부 연구에 따르면 중소병원 간호사의 노동 강도는 상급종합병원보다 7배 이상 높다는 결과도 있다. 주요 원인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인한 1인당 환자 수 과부하다.
복리후생에서도 △진료비 감면 △기숙사 제공 △사학연금 가입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 등에서 상급종합병원이 중소병원보다 앞서 있다.
“나이트 끝나도 울리는 전화벨”… 일과 삶의 붕괴
중소병원이 간호사들에게 외면받는 이유는 단지 임금 문제만이 아니다. 열악한 근무 여건 자체가 간호 인력 유출의 핵심 요인이다. 인력난으로 인해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렵고, 쉬는 날조차 업무 전화에 시달리는 문화는 간호사들을 지치게 만든다.
최근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직한 김 모 간호사는 “인력 부족으로 대체 인력이 없어 연차 중에도 병원에서 연락이 오거나 출근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며 “경영난을 이유로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 결국 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2024년 조사 기준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상급종합병원이 10명인 반면, 종합병원은 20명, 일반 병원은 35명 이상에 달했다. 이처럼 과도한 업무는 스트레스와 탈진으로 이어지며, 이직과 퇴사를 부추긴다.
간호사가 ‘머물고 싶은 병원’을 만들기 위해
간호 인력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정부, 병원, 간호계가 함께 근무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우선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 수 기준을 법제화해, 과도한 업무 부담을 줄이고 환자에게 질 높은 간호를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간호사의 노고에 상응하는 적정 임금 지급이 필수다. 단순한 인건비 절감이 아닌, 환자 안전과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필수 투자로 간호사 처우 개선을 바라보아야 한다.
비현실적인 교대근무와 근무시간 체계도 간호사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다. 유연하고 합리적인 근무시간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규 간호사들의 현장 적응을 돕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과 멘토링, 숙련 간호사들의 장기 근속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 마련도 시급하다. 예를 들어 경력 개발 기회,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정책, 정신건강 지원 프로그램 등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