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명우재 교수(정밀의료센터) 연구팀이 음주 문제와 다양한 정신장애 간의 유전적 연관성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삼성서울병원 원홍희 교수팀(원홍희 교수, 안예은 연구원),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재현 임상강사가 함께 수행했다. 그 결과는 정신의학 분야 최고 권위 국제 학술지인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IF 15.1)에 게재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알코올 의존 및 폭음과 같은 음주 문제는 조절력 상실, 사회적·직업적 기능 저하, 신체적·심리적 피해를 동반하며, 특히 조현병, 우울장애 등 다양한 정신장애와 함께 나타나 임상 경과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여러 연구에서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 간의 유전적 관련성이 제기됐으나, 정확한 유전변이를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연구팀은 다인종 43만 명의 대규모 전장 유전체 연관 분석(GWAS)을 활용해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 간의 공통된 유전적 구조와 원인 유전자를 정밀하게 분석했다. GWAS는 사람의 유전체 전반에 걸친 유전변이를 조사하고 특정 질환이나 행동 특성과 연관된 유전자를 찾는 분석 기법이다.
연구 결과,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는 매우 높은 유전적 연관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음주 문제는 ▲조현병 73% ▲신경성식욕부진증 65% ▲자폐스펙트럼장애 60% ▲양극성장애 50%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46% ▲우울장애 39%의 공통된 유전변이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는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가 단순히 생활습관이나 환경적 요인을 넘어 공통된 유전적 기반 위에서 발현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나아가 연구팀은 이러한 강한 유전적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이 두 질환에 공통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전자 후보들을 좁혀 나간 결과, ‘TTC12’와 ‘ANKK1’ 유전자가 공통 원인 유전자임을 밝혀냈다. 이 두 유전자는 도파민 시스템을 조절하는 핵심 요소로, 충동 조절이나 보상 시스템과 같은 뇌 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단순한 유전적 연관성을 넘어 음주 문제나 정신장애에 대한 표적 치료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번 연구는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가 독립된 문제가 아니라 유전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정밀의료 기반 맞춤형 치료 전략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명우재 교수는 “많은 정신장애 환자들이 정신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음주를 선택하지만 오히려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연구는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를 동시에 겪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치료제의 새로운 기전을 제시했다는 사실에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원홍희 교수는 “이번 연구는 대규모 유전체 분석 데이터와 최신 통계기법을 활용해 복합 질환 간 유전적 관계를 구체적으로 규명했다”면서 “이러한 연구 방향은 다양한 질환 간 유전적 연관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관계를 고려한 최적의 치료법 개발에도 상당 부분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음주 문제와 정신장애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