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결정 자율성 없다 34% … 동료에게 업무가 가중되기 때문
모성보호 노동여건 좋을 때 업무 자긍심과 직장 만족도 높다
◇ ‘의료기관 간호사 모성보호 실태와 해결방안’ 토론회
◇ 주 최 : 김상희·진선미·김세연·이명수·윤소하·김광수 국회의원
◇ 주 관 : 대한간호협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 간호사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장 분위기상 신청할 수 없어서’ 및 ‘인력이 부족해 동료들에게 불편함을 끼칠 수 있어서’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 의료기관의 모성보호와 일-가정 양립을 위해 ‘모성정원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매년 임신과 출산, 육아휴직으로 발생하는 결원 인력을 미리 책정해 별도정원으로 정규직으로 채용해 대체인력으로 투입하자는 것이다.
‘의료기관 간호사의 모성보호 실태와 해결방안을 위한 토론회’가 9월 2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국회의원과 진선미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김세연 국회의원과 이명수 국회의원, 정의당 윤소하 국회의원, 민주평화당 김광수 국회의원이 주최했다. 대한간호협회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주관했다. 일자리위원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에서 후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의료기관 간호사의 모성보호 노동여건 현황’ 주제발표를 한 안종기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기획조정실장은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모성보호(제도) 관련 노동여건을 개선하는 데 장애요인으로 인력부족에 따른 업무부담과 직장 분위기가 꼽혔다”면서 “노동여건 개선을 위해 근본적으로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종기 실장은 노동문제연구소에서 최근 3년 내 임신·출산한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응답한 간호사가 36.7%로 나타났다. 임신 결정의 자율성이 없다고 한 경우도 33.9%에 달했다. 또한 임신·출산·육아(휴직)로 인한 불이익을 경험했다 21.0%, 임신 중 초과노동 경험이 있다 38.4%, 야간노동 경험이 있다 19.1%로 나타났다.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는 ‘직장 분위기상 신청할 수 없어서’(33.8%)와 ‘인력이 부족해 동료들에게 불편함을 끼칠 수 있어서’(25.6%)가 꼽혔다.
임신 결정의 자율성이 없는 이유로는 ‘동료에게 업무가 가중되기 때문에’(64.1%)가 가장 많았고, 이어 ‘부서 내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 여성이 있어서’(25.1%)로 나타났다.
안종기 실장은 “모성보호 노동여건이 긍정적인 조직의 간호사가 자신의 일터, 업무, 관계 등 모든 면에서 자존감이 높고, 조직원으로서 강한 애착과 뚜렷한 정체성을 보유하게 된다”고 말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임신·출산·육아(휴직)로 인한 불이익 경험이 없을 때 업무 자긍심, 업무의 장래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 직장의 인력수준 만족도, 직장 분위기 만족도 등이 높았다. 반면 이직의도는 낮았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제외한 다른 모성보호제도 사용 정도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모성보호제도에는 유급 태아검진시간, 임신 중 1일 2시간 노동시간 단축, 임신 중 쉬운 업무 전환 요구, 육아기 노동시간 단축, 유급수유시간, 난임치료휴가 등이 있다.
‘간호사의 모성보호권리 확보를 위한 제도적 방안’ 주제발표를 한 오선영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육아휴직을 동료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육아휴직에 따른 업무 공백을 줄이고, 육아휴직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으로 ‘모성정원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모성정원제는 매년 임신과 출산, 육아휴직으로 발생하는 결원 인력을 병원별로 미리 책정해 별도정원으로 정규직으로 채용하자는 것”이라며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발생 시 사전 배정이 가능하고, 인력 공백 없이 바로 숙련된 대체인력 투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보건의료인력은 환자의 안전과 생명이며, 최상의 의료서비스 제공에 필수”라면서 “모성보호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는 병원간호사들이 모성보호의 법적 보호와 권리를 자유롭게 누리기 위해서는 모성정원제가 필수”라고 말했다.
‘간호사의 모성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적 인프라 구축방안’ 주제발표를 한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의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정책과 추진체계 등은 ‘간호사 등의 인재확보 촉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이뤄지고 있다”면서 “일본에서도 간호인력 처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을 계기로 법률이 제정됐으며,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정책과 안정적 재정지원 등을 통해 간호사 처우가 개선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독립법률을 제정해 법과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으며, 현재 간호법안 등이 발의돼 있다”면서 “간호인력의 처우개선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독립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 대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간호정책TF를 간호정책담당관(과)로 확대 개편해 업무의 지속성과 안정성, 체계성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제발표에 이어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지정토론이 진행됐다.
유재선 대한간호협회 이사는 “간호사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적자원이며, 20∼30대 가임기 여성이 70% 이상이어서 모성보호 및 일-가정 양립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면서 “가임기 간호사의 이직으로 결원이 발생하면 신입간호사로 충원하게 되고 이는 간호사들에게 과중한 업무부담으로 이어지는 노동행태의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간호사의 모성보호를 위해 근로기준법, 모자보건법, 고용보험법 등이 의료현장에서 준수되도록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면서 “임신, 출산, 육아를 하는 간호사들을 배려하는 조직문화가 구축되도록 정부가 유관기관과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을 위해 간호 독립법률이 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부회장은 “모성보호는 병원계 혼자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정부는 모성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가 병원에서 잘 정착될 수 있도록 관련 장애요인을 함께 검토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원 여성가족부 인력개발과 사무관은 “모성보호제도를 잘 활용하는 기관을 인증하는 가족친화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다”면서 “현재 3000여개의 기관이 인증을 받았는데 의료기관은 50여개에 불과하며, 이중 절반은 인증이 의무화돼 있는 공공기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이 다수인 의료기관에서 가족친화인증이 확산되고 조직문화가 개선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영덕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 사무관은 “모성보호제도의 수준이 높아지고 강화되고 있는데 이를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면서 “모성보호제도 알리미 서비스 등을 통해 제도를 홍보하고, 스마트 근로감독 실시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홍승령 보건복지부 간호정책TF팀장은 “일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되고 간호사들의 지속근무가 가능해야 환자 서비스의 질이 높아진다”면서 “적정 간호인력 확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기관을 일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대한간호협회, 대한병원협회와 함께 논의하고, 정부 부처 간에 협업하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토론회 개회식에서 개회사를 한 김상희 국회의원은 “간호사들이 임신, 출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어 의료기관을 떠나거나 업무만족도가 떨어진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라며 “오늘 토론회에서 제시된 내용들이 국회에서 입법과 예산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진선미 국회의원은 “간호사들의 지속근무는 개인의 모성보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과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라면서 “현안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이명수 국회의원은 “간호인력 수급, 과도한 업무부담 문제 해결을 통해 모성보호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면서 “모성보호제도가 현장에서 실행될 수 있도록 함께 논의하고 결실을 맺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광수 국회의원은 “축하받아야 할 임신이 눈치 보는 일이 되거나 동료의 업무과중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인사말을 한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은 “환자안전과 국민건강을 위해 숙련된 전문간호인력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 간호사의 모성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모성보호를 위한 대체인력 문제가 확실히 해결돼야 하며, 오늘 토론회에서 논의되고 제안되는 대안이 바로 시범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병원은 여성이 70% 이상인 대표적인 여성사업장이지만 간호인력 부족으로 모성보호 사각지대,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대표적인 사업장이기도 하다”면서 “일할 맛 나는 병원을 만드는 것이 의료서비스 질을 향상시키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해 정부는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 대책을 발표했으며, 이후 일자리위원회 차원에서 간호사 교육 관리체계 구축과 근무여건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특히 교육전담간호사 등 정부의 계획과 지원이 시급히 필요한 과제는 보건의료일자리특별위원회의 집중적 논의를 통해 조속히 실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축사 순서에서는 조경태 국회의원, 윤종필 국회의원 등이 참석해 간호사들을 격려했다.
정규숙·이진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