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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간호문학상 - 소설 가작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7-12-19 오후 04:31:43

고추 먹고 맴맴

최혜지(대구가톨릭대 4학년)

 

잠결에 빗소리를 들었다. 열어놓은 창문 새로 얼핏 물비린내가 났다. 새벽녘 비가 한줄기 쏟아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흐리던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개었고, 아스팔트 위를 적시던 물기도 내리쬐는 열기에 대기 중으로 흩어져버렸다. 요즘 들어 이런 날이 잦았다. 하늘은 감질나게 드문드문 비를 뿌려댔다. 빌라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빛이 주차해놓은 세단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차 에어컨을 틀자, 참던 숨을 토해내듯 더운 열기가 터져 나왔다. 공기가 냉각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창문을 열어두었으나 밀고 들어오는 바람마저 미적지근했다. 거추장스럽게 등 언저리에 달라붙는 머리칼을 질끈 묶었다. 잠깐 사이 허벅지에 땀이 찼다. 덥고 습한 공기가 치덕거리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다른 말로, 고추가 익기 시작하는 철이었다.

출근 시간에 맞물려 도로가 막혔다. 흔한 풍경이었다. 평소라면 나 역시 앞차의 꼬리를 물고 기어가고 있었겠지만, 오늘은 시원스레 뚫린 반대편 도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어제 저녁, 다짜고짜 팀장실 문을 열고 들어선 나를 보며 팀장은 야근으로 충혈된 눈을 부라렸다. 사정은 간결했고, 호소는 옅었다. 나는 가엾은 척 목소리를 굴리는 짓은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팀장의 숱 많은 갈매기 눈썹이 언짢은 듯 한참을 씰룩거렸고, 몇 마디 짜증 섞인 잔소리를 쏟아내었으나 결국 허락이 떨어졌다. 그의 부모도 저 어디서 농사를 짓는다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것이 낙장이 있는 샘플로 수학 참고서 1쇄를 찍어내게 만든 장본인을 찾느라 흉흉한 와중에 연차를 낸 말단사원의 패기를 이해하는데 일조한 모양이었다.

톨게이트를 두 번, 터널 열댓 개를 빠져나와 달리기를 한참이었다. 비포장도로로 들어서며 차의 속도를 줄였다. 창문을 내리자 더운 바람과 함께 거름 냄새가 풍겨왔다. 고추밭이 가까웠다. 볕을 받아 쨍한 진녹색 사이로 붉은빛이 언뜻 눈에 띄었다. 고추가 무르거나 곰팡이 핀 것 없이 싱싱했다. 올해는 병마 없이 무사히 넘어간 모양이었다. 지난해 농사가 시원찮았던 탓에 올봄 모종을 심을 때부터 신경을 쓰던 엄마와의 통화를 떠올렸다.

“이놈의 썩을 고추밭 팔아치우든가 해야지, 원……” 몇 해 전부터 엄마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물론 말뿐이었다. 땅에 심어진 손바닥만 하던 모종은 어느새 허리께까지 자라있었다. 제 반년의 결실을 주렁주렁 매단 자태를 뽐내며. 애초에 두 외삼촌에게 소금 타작까지 하며 지켜낸 밭을 두고 하는 말이라 썩 믿음 가는 다짐은 아니었다.

엄마가 젖먹이 시절, 할머니는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땅에 고추를 심었다. 전쟁 통에 할아버지를 잃은 할머니는 제 품의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부족한 일손 탓에 엄마는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무렵부터 밭일에 동원되었다. 위로 둘 있는 형제들이 학교에 가고부터는 그들 몫까지 해내야 했다. 일은 고되었고 할머니는 하나 있는 딸에게 늘 엄했다. 고추밭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지긋지긋하게 비가 내리던 해, 병마가 휩쓸어 누렇게 문드러진 고추가 일렁이는 밭 앞에 섰을 때는 어린 마음에 기쁘기까지 했다.

망연자실한 할머니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냥 안도했다. 그해 겨울, 살을 에는 추위와 속이 끊어질 듯한 배고픔을 경험하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를 했다. 눈 덮인 산에는 흔한 산나물 하나 나지 않았다. 형제들은 뻣뻣한 나무껍질을 벗겨내고 그 안의 하얀 속살을 잘라 가져왔다. 그것을 끓여 먹으며 끼니를 연명하던 나날, 질긴 나무줄기를 씹어 삼키며 작년 밥상에 올라왔던 푸른 고추를 떠올렸다. 다음 해부터 제 발로 밭일에 나섰다. 좋고 싫고를 생각할 여력 따위는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한 일이었다. ‘먹고 살기 위한’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그맘때가 엄마 나이 고작 일곱이었다.

 

고향 집 마당 한 편에 붉은빛이 형형했다. 다른 것들보다 때 이르게 익어 수확했을 고추 무리였다. 몸값 비싼 태양초로 거듭나겠지만 팔 만큼의 양은 아니었다. 저것들은 결국 나와 동생의 식탁에 올라갈 것이었다. 볕 좋은 시간에 나가 널어, 틈틈이 시간을 내어 뒤집어 말린, 손이 많이 가는 그것은 가루가 되고 장이 되어 나와 동생이 먹는 음식에 바탕이 되었다. 엄마는 가장 먼저 익는 고추를 수확할 때면 늘 그렇게 했다. 건조기도 있는데 귀찮게 뭐 하러 그러느냐 싫은 소리를 내보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쪼그려 앉아 투명한 비닐에 덮인 그것들을 살짝 눌러보았다. 버석한 모양새를 보니 거의 마른 것 같았다. 며칠 동안 무더위가 기승이었다. 그만큼 볕도 강했다. 그 아래에서 고추를 뒤집어 널었을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왔나?”

집채 뒤쪽에서 걸어 나오는 엄마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달 만에 보는 딸의 얼굴임에도 꼭 그저께 본 마냥 무심한 투였다. 살갑지 못한 것은 내 쪽도 피차일반이었다. 잘 지냈냐는 상투적인 인사 하나 없이 “올해 건조기 벌써 다 씻었어?” 묻는 말이 먼저 나갔다. 뒷마당에는 업소용 냉동고처럼 생긴 대형 건조기가 두 대 있었다. 그것을 쓸 때가 아니고서야 엄마가 그쪽으로 발길을 둘 일은 없었다.

한 해 가량 잠들어있던 건조기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묵은 때를 벗겨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첩첩이 쌓인 선반을 꺼내어 먼지를 씻어내고 수세미로 고추 진물을 벗겨내는 일은, 나와 동생에게는 아주 어릴 적부터 도맡아온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상경을 하고 난 뒤로 때를 놓치는 일이 잦았다. 수확철이면 늘 걸려오는 전화를 웃으면서 받을 여유가 없었다. 막 세상에 던져진 사회초년생에게 중요한 것은 고향 집의 연례행사가 아니었다. 과제, 시험, 자격증, 면접, 취업. 피곤한 나날이었다.

“올해는……” 어두를 트는 엄마의 말을 채 듣기도 전에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기 일쑤였다. 난 바쁘니까, 내가 아니라도, 동생이 있으니- 갖은 핑계를 대며 합리화를 했다. 그렇게 철을 넘기고 나서야 동생과의 안부 전화로 알게 되는 것이었다. 너도 바빴구나, 난 네가 갈 줄 알았지, 너라도 좀 시간을 냈으면- 서로에게 잘 못을 미루며 혼자 선반을 나르고 수세미를 들었을 엄마를 떠올렸다. 울컥 솟는 죄책감에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기다가도, 다음 날이면 바쁜 일상에 치여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한 해가 흐르면 무뎌지는 감정은 매해 같은 실수를 낳았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늙어갔다. 농사일을 하며 볕에 그은 얼굴은 건조기에 꼬박 나흘을 새고 나온 고추 같았다. 말라 비틀어져 볼품없는, 칙칙한 색의 그것 같았다.

“혼자 했어? 순이 이모가 도와준 거야?”

“이 거두는 기나 도와라.”

“올해는 왜 전화도 안 하고…….”

나는 홧홧거리는 얼굴 탓에 괜스레 야단이었다.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 널어놓은 고추를 거두기 시작했다. “비가 뿌리지 싶다.” 혼잣말하듯 내뱉는 말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둡고 두터운 봉우리 구름이 산 중턱에 걸쳐있었다.

 

“뻘건 것만 따, 뻘건 것만. 아직 푸르스름한 건 놔둬.”

고추는 꼭지가 난 방향 반대로 젖혀 들면 힘을 주지 않아도 톡톡 잘 따지는 작물이었다. 그러나 개중 줄기에 제 머리채를 매단 채 발악을 하는 것들이 몇몇 있었다. 맘처럼 따라주지 않는 모양새에 짜증이나 무심결에 힘을 주어 당기면, 아직 덜 익은 고추 두어 개가 주렁주렁 달린 가지까지 따라 오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 모습에 기겁하며 “멀쩡한 가지를 왜 뗘!” 하며 열을 냈다. 조심한다고 신경을 쓰는데도 어느새 세 번째 가지가 손에 들려있었다. 이런 것 하나도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었다.

“엄마는 이 일이 좋아?”

엉덩이 한 번 붙일 새도 없이 옷을 갈아입고 나선 길이었다. 엄마가 입던 밭일용 바지들은 죄다 고무줄이 늘어나 자꾸만 골반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것을 붙잡아 올리며 커다란 포대 자루 안에 고추를 따 넣었다. 고추 줄기들은 여기저기로 팔을 뻗쳐 다른 나무들과 잘도 뒤엉켰다. 그렇게 이어진 행렬이 수십 개였다. 그 끝을 눈으로 찾아 헤느라 넋을 놓고 서 있길 몇 차례. 챙 넓은 모자 밑으로 땀이 비죽 흘러내려 얼굴이 가려웠다. 밭에 나온 지 겨우 두어 시간 만에 허리가 아파왔다. 고된 일이었다. 그래서 무심결에 물었다. 농사짓는 것이 좋으냐고, 좋아서 하는 일이냐고. “염병!” 질문하기 무섭게 고추 하나가 얼굴로 날아들었다. 맞은편 줄에 앉아 고추를 따는 엄마를 넘어다봤다.

“좋기는 뭐가 좋아. 지긋지긋하지.”

툭툭 고추를 따 포대에 담는 손길이 무심했다. 그러다 고추나무 줄기 하나를 쥐고 이게 왜 떨어지고 지랄이여- 하며 역정을 내는 모습에 웃음이 샜다.

“이놈의 썩을 고추밭 팔아치우든가 해야지, 원……”

어느새 버릇된 말이었다. 결국은 실현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일까, 엄마는 그 말을 거리낌 없이 툭툭 내뱉곤 했다.

내가 열 살 무렵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다음 해, 농사철에는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던 외삼촌들이 고추밭을 찾아왔다. 엄마는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담갔던 매실청을 다과상에 내놨다. 외삼촌들은 그것을 마시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서더니 밭도랑에 서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뒷짐 진 팔을 펼쳤다 접었다, 손을 모았다 벌렸다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엄마는 묵묵히 고추밭 가운데서 일만 했다.

그날 저녁 안방에 둘러앉은 외삼촌들이 어두를 텄다. 밭을 팔자. 평수가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볕이 잘 들고 지리가 좋으니 값이 나쁘지 않다더라. 너도 그동안 저놈의 밭 때문에 얼마나 고생이었니. 인제 그만 농사일 접고 다른 일을 배워봐라. 큰 외삼촌이 덧붙였다. “병원비도 많이 들었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지만 엄마는 용케 그것을 알아들었다. 할머니는 때 이른 눈이 내리던 겨울날 돌아가셨다. 노환으로 기력이 쇠약해져 입원하셨고, 일주일로 시작했던 병원살이는 날이 이어져 끝내 퇴원하시지 못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던 그해 농사까지 모두 지으셨다. 불편한 거동으로, 침침한 눈으로, 마지막까지 고추밭을 떠나지 못했다.

외삼촌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방으로 가 자그마한 단지 하나를 들고 왔다. 구석에서 놀고 있던 나와 동생은 외삼촌들의 고함과 둔탁한 파열음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 잔뜩 얼굴을 붉힌 외삼촌들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신을 구겨 신을 때까지 엄마는 그들에게 하얀 가루를 뿌려댔다. 아주 작은 자갈처럼 굵고 단단한 입자들이 외삼촌들의 머리와 옷가지, 마룻바닥에 떨어지며 철썩철썩 아픈 소리를 냈다.

“누나, 소금은 음식에 뿌리는 거 아니야? 엄마는 왜 그러는 거야?” 어린 동생이 내 팔을 붙잡으며 순진하게 물어올 때까지, 나는 성난 엄마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지켜낸 밭이었다. 겨울이면 땅을 뒤집고 날이 풀리면 모종을 사들여 간격 좋게 심을 것을 안다. 내년 이맘때 즈음이면 또 붉게 익은 고추들을 따고 있을 것이다. 이놈의 썩을 고추밭…… 버릇이 된 말을 중얼거리며.

“근데 왜 농사를 지어?”

“왜 짓긴,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 하는 거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목장갑을 낀 손등으로 땀이 흐르는 턱을 쓸어 올렸다. 낡아빠진 장갑에서는 매운 내가 났다. 눈이 시큰했다.

 

쿠르릉, 두어 번 내숭을 치던 하늘에서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식 못할 정도로 한 두 방울 떨어지던 비가 툭툭 고추나무 잎을 때리며 미끄러졌다. 공기가 선선해졌다. 요 며칠 무섭도록 끓어오르던 여름의 열기를 잠시 식혀줄 단비였다. 트이는 숨통에 폐부 깊숙이 들숨을 삼켰다. 짙어진 풀내와 흙내가 뒤섞였다. 맑은 내음이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 흙바닥에 내팽겨 앉아 있던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어갔다. 도시였다면 바지 밑단 조금 젖는 것도 싫어 근처 상가로 뛰어들었을 터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젖어도 상관없는 옷차림에 무너져 내릴 화장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땀이 났던 몸을 적시는 미적지근한 빗물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비 뿌린다. 이만 접어라.”

반 정도 찬 포대가 꽤나 묵직했다. 먼저 길을 나서는 엄마를 따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 사이 물줄기가 굵어졌다. 내리는 비를 쫓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잿빛 구름이 덕지덕지 묻은 사이로 채도 낮은 푸른빛이 살짝 비췄다. 여러 색이 뒤섞여 혼탁해진 물에 제 색을 고이 내는 물감 몇 방울을 떨어트려 놓은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넋을 놓은 채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평소에는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거의 없었다. 늘 그 자리에 있지만, 그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더 많았다. 문득 고개를 들다 그것을 발견하는 날이면 실감하는 것이다. 늘 그 자리에 있는 하늘조차 낯설게 느껴질 만큼, 나는 왜 이리 바쁘게 살아가고 있나-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 선택한 직업이었다. 각종 기기와 전자책의 발달로 종이책을 찍어내는 출판업계의 장래가 밝지 않음은 알고 있었다. 돈을 얼마 벌지 못할 것도 예상했다. 그럼에도 책이 좋았다.

어릴 적, 다락방 한편에 누렇게 빛이 바랜 책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그것들은 주로 불을 지필 때 땔감 따위의 용도로 사용되곤 했는데, 종류는 소설책부터 전문서적까지 다양했다. 할머니나 엄마는 책을 읽는 치들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 책들의 주인이 막연히 할아버지나 외삼촌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아궁이 앞을 지키는 역할은 주로 나였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일은 매우 지겨웠기에 나는 자연스레 땔감용이었던 책들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재밌지만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있었고, 한자와 섞여 있어 아예 읽는 것이 불가능 한 책도 있었다. 중간 중간 삽화로 들어있는 그림만 보고 불 속에 던져 넣기도 했다.

그러다 재밌다 여겨지는 책들이 생겨났다. 글을 음미하는 법을 깨우치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그 생경함에 빠져 웃고 울었으며, 잘 정돈된 문장을 읽는 순간의 희열에 중독되어 갔다. 몇몇 책들이 불길 대신 다락방 안으로 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나 둘 내가 골라낸 책들이 늘어나며, 나는 그것들이 좋아졌다. 표지를 펼칠 때마다 풍겨오는 종이 냄새가 좋았고, 일정한 간격으로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글자들의 향연이 좋았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평생을 살고 싶었다. 그까짓 돈,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풍족해 본 적 없는 삶이었다. 그것이 익숙한 인생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매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 막연히 자위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지금 다니고 있는 출판사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출판사의 문턱을 넘어 다녔으며 얼마나 많은 지원서를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매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달려드는 인력은 들이닥치는 파도처럼 쏟아지는데, 그들을 받아주는 빈자리는 한정적이었다. 도전을 하고, 좌절을 하고, 또 용기를 내고, 다시 절망을 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를 준비하고, 타인을 견제하며, 끝내 어디든 상관없으니 취업이라도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보는 눈을 낮추고, 자신의 가치마저 낮춰 입사한 작은 출판사였다. 열정을 대가로 치르는 일은 혹독했다. 연장 근무는 일상이었고 주말까지 바쳐야 하는 날이 허다했다. 말단 신입사원에게 주어진 잡일은 꿈꾸던 커리어와는 사뭇 달랐다. 입사하자마자 배운 것은 책을 포장하는 일이었다. 배송을 위한 책들을 박스에 담고, 그마저 사이즈가 없을 때는 종이를 자르고 덧대어 만들기도 했다. 온종일 커터 칼을 붙잡고 허리를 숙였다 들며 사무실 구석에서 날을 보냈다. 눈앞에 책들이 쌓여 있었지만, 표지에 쓰인 제목 한 번 읽는 일도 드물었다. 쳐내야 할 업무의 연속이었다.

책이 되기 전의 글은 미완성이었다. 그것을 다듬는 것이 편집자의 일이었고, 그들이 교열해 놓은 글을 확인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붉은 펜이 지나간 자리들과, 그를 바탕으로 수정된 인쇄물들을 비교해가며 다른 그림 찾기를 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오탈자가 나왔다. 전에 읽을 때는 보지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완전무결하다 자신하고 인쇄소에 넘겼던 샘플에서 발견되는 일도 허다했다. 그날은 상사에게 죽도록 깨지는 날이었다. 밤을 새우며 같은 글들을 번갈아 읽어 내렸다. 수십 번을 넘게 읽었다. 종내에는 글을 읽는 것인지 글자를 발라내고 있는 것인지 가늠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어 하나하나가 따로 놀며 머릿속에 박혀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문장을 해석하고 담긴 의미를 음미하며 글의 분위기에 함빡 취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졌다. 책 속에는 더는 희로애락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도 없었다. 건조한 활자만 있었다.

돈은 늘 부족했다. 아껴 쓰고 뭐 하나 허투루 소비한 적 없음에도 그랬다. 들어오는 월급은 말마따나 쥐꼬리만 한데, 돈이 나가야 하는 곳은 끝이 없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졸라매다 제 목까지 졸라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집으로 들고 온 샘플에 낙장이 없는지 살펴보던 중이었다. 테이블 위 머그잔에는 식어 빠진 인스턴트커피가 바닥을 보였고, 꼭 그 마냥 허무하게 사라진 주말을 체감하며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책 속에는 활자만이 있었다. 숨이 막혔다.

‘먹고 살기 위한’ 일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아 이 일을 선택한 것인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다들 살아가고 있는데, 저만 죽지 못해 아등바등 마지못해 사는 것 같았다. 허망했다. 그런 날이면 기분이 하릴없이 침몰했다. 가본 적도 없는, 세상에서 제일 깊은 바다라는 마리아나 해구의 아래로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한 치의 빛도 들지 않는 심해 아래로, 천천히, 깊숙이, 수압에 눌려 암흑의 구덩이 속으로, 삼켜지는 것만 같았다.

사실 도망친 것이었다. 수확철이고 뭐고 다 핑계였다. 엄마를 도와주기 위해 연차를 쓸 만큼 나는 효녀가 되지 못했다. 그저 일에 치여, 꿈꾸던 이상과 다른 현실 앞에 숨이 막혔을 뿐. 그 와중에 생각난 것이 붉게 익어가고 있을 고추밭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릴 적에는 밭일에 손을 더하는 것이 가장 귀찮고 고된 일이었는데, 왜 그곳이 그리워진 걸까.

 

덜, 덜, 덜-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가 요란했다. 규칙적으로 고요를 찌르는 귀뚜라미 소리가 덧입혀지며 묘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시골의 밤은 늘 조용한 듯 소란스러웠다. 소음이 사라진 적막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듣게 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깜빡이며 그 음과 함께 숨을 쉬었다. 오랜만에 고된 밭일을 했더니 사지가 늘어졌다. 그러나 정신은 그 어느 밤보다 맑았다. 영문 모를 일이었다.

옛 가옥을 개조하고 보수해가며 사용하고 있는 일一자형 집이었다. 어릴적, 여름이면 미닫이식 문을 열고 방충망만 쳐놓은 채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누웠다. 훔쳐갈 것도, 훔치러 올 사람도 없는 시골집의 풍경이었다. 나와 동생이 사춘기에 접어들고부터는 두 개 밖에 없는 방으로 각자 흩어졌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오순도순 삼베 이불을 나눠 덮고 별을 헤다 잠이 들곤 했었다. 지붕 처마에 가려 반쯤 조각난 하늘이었지만 박혀있는 별은 쏟아질 듯 넘쳤다. 매일 보던 것이니 당시에는 아름다운 줄도 몰랐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귀한 풍경이 두 시골 꼬마들에게는 그저 잠자리 양에 불과하던 나날들. 모든 것이 그랬다. 지나보니 특별했고, 돌아보니 귀했다.

“일이 많이 힘드나?”

나란히 덮은 삼베 이불이 엄마가 돌아누움에 피부에 쓸렸다. 창 너머 별을 세던 눈을 틀어 모로 누운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삼베처럼 거칠한 손이 내 이마와 볼을 어루만졌다. 어둠 속에서도 투박함이 그려지는 손. 농사일은 단 하루만 해도 티가 났다. 챙이 넓은 밀짚모자에 목장갑까지 무장했음에도 얼굴은 어느새 그을리고 손톱에는 검은 때가 끼었다. 그런 것이 지독하게도 오래갔다. 며칠 동안 때를 벗기기 위해 손을 문질러 씻다 결국 제 손으로 손톱 사이 여린 살을 파내어야만 했다.

엄마의 손은 평생 농사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티를 냈다. 거칠하고 거무튀튀한 손은 마른 주름으로 가득했다. 손톱 사이는 본래 제 색을 알 수 없을 만큼 검었다. 어릴 적에는 그것이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그 손으로 내 얼굴을 쓸어내릴 때면 검은 때가 분을 바른 것처럼 묻는 줄 알았고, 머리를 묶을 때면 손톱 사이사이로 파고든 제 머리칼에 땟가루가 묻어나는 줄 알았다. 머리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것은 절대 씻겨나는 것이 아니었고 어딘가 묻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 검은 때는 이미 손톱 일부였다. 엄마의 일부였다. 한평생을 바친 농사일의 전리품이었으며, 고추밭이 새겨놓은 흉터였다.

“어릴 때는 그놈의 고추가 왜 그리 싫던지. 전축으로 드라마 좀 들을라치면 네 할머니 불호령에 마지못해 밭일을 나갔지. 오라비들은 학교도 다니고 읍내도 나가고 해도 아무것도 안 시키면서 나한테만 어찌나 엄하게 구는지, 억울하고 섧고. 날은 덥고, 네 할머니는 무섭고.”

엄마는 종종 이렇게 가마득한 시절 이야기를 했다. 그럴 때마다 희끄무레한 색을 띤 눈동자로 저 먼 곳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을 했다. 종종 엄마가 보고 있는 곳이 어딜까 궁금했다. 아마도 지금보다 고추밭이 조금 더 푸르렀으며 싱그러웠을 곳. 나는 그곳에 살던 한 소녀의 모습을 남몰래 상상해보곤 했다.

걸음마를 뗀 이후로 쭉 농사만 짓던 삶이었다. 두 형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상경을 해 직업을 찾고, 장가를 들어 자식을 낳을 때까지도 고추밭에 남아있었다. 봄이면 모종을 심고, 여름이면 고추를 따고, 가을이면 장을 담그고, 겨울이면 땅을 뒤집으며 해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살다 때늦은 중매로 시집을 갔다.

상대는 읍내에서 구두를 손보는 수리공이었다. 어릴 적 구두닦이로 가게를 오가며 어깨너머 배운 기술로 먹고사는 이였다. 실력이 괜찮아 손님 발길이 잦았고, 상대하는 이들이 대부분 양복쟁이다 보니 몸에 밴 태도가 신사적이라 마음이 가드랬다. 선물이랍시고 여자 구두 한 켤레를 내밀기에 “신을 선물하면 신고 도망간다던데.” 했더니 “그럼 그 신 신고 나랑 이곳저곳 다니다 밑창 떨어질 때 즈음 가시오.” 하는 것이었다.

결혼하고서 어느 날, 혼인 전에 밑창이 떨어지면 어찌하려 했느냐 물으니 “밑창이 떨어질 때 즈음 몰래 찾아가 고쳐놓고 오려 했지.”하며 능청스럽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쉽사리 들어서지 않는 아이 때문에 시댁에서 구박을 받을 때면 늘 말없이 손을 잡아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얀 눈이 소복 내려 시야를 아리게 만들던 겨울날 내가 태어났다. 어렵사리 얻은 아이였으나 시댁에서는 딸이라는 이유로 거들떠보지 않았다. 엄마는 제 평생 고추만 먹고 살았는데 가랑이 사이에 그거 하나 달고 나오는 것이 어렵냐며 나를 원망한 적도 있었더랬다. 그러나 결국 배 아파 낳은 제 새끼라고, 우는 것을 보면 안쓰러웠고 배냇짓을 하면 사랑스러웠다. 입술을 오물거리면 젖을 물렸고 보채면 품에 안아주었다. 아들을 못 낳아 구박하면 막아주는 남편도 곁에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살면서 가장 행복했다 꼽을만한 나날.

사고가 난 것은 내가 돌잡이를 할 즈음이었다. 눈조차 내리지 않아 유독 더 추웠던 그해 겨울. 말없이 늦을 사람이 아닌데 자정이 가까워지도록 기별이 없는 남편 때문에 엄마는 발만 동동 굴리던 중이었다. 그날따라 심하게 보채는 나를 떼놓을 수가 없어, 등에 엎쳐 메고 천 보따리를 둘둘 감고서 밖으로 나섰다. 길에 가로등 불빛 하나 없던 시절, 그렇게 남편을 찾아 한겨울 추위에 떨며 읍내까지 마냥 걸었다. 굳게 닫힌 가게와 개미 한 마리 없는 상가의 모습에 허탕을 치고는 해뜰녘에야 시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아침, 꽁꽁 언 채로 숨을 거둔 남편이 논두렁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탁주 몇 잔을 걸치고 가는 길에 발을 헛디딘 모양이라며, 함께 술자리를 했던 치들이 혀를 끌끌 찼다. 술을 많이 마셔 몸을 가눌 수 없었던 것인지, 단단히 언 땅에 머리라도 부딪혔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잔뜩 몸을 옹그리고 얼어있는 남편을 보며,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허망해도 그리 허망한 객사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너무나 허망해 눈물도 채 나오지 않았다. 시댁에서는 여자가 잘못 들어와 서방을 잡아먹은 것이라며 쫓겨났다. 몇 안 되는 살림살이와 나를 품에 안고 그렇게 친정으로 돌아왔다. 고추밭으로 돌아왔다. 배 속에 아이가 들어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후로 몇 달이 지난 후였다. 남편도 없이 혼자 아이를 낳고, 가랑이 사이에 달린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사내아이의 성기를 보며, 서러움이 북받쳐 그제야 눈물이 났다 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고추보다 맵다지만 이리도 매정할 수 있느냐고. 이리도 안타까울 수 있느냐고.

이전에 할머니가 그러했듯, 엄마 또한 우리 남매를 키우기 위해 고추밭만 바라보며 수 번의 계절을 났다. 봄이면 모종을 심고, 여름이면 고추를 따고, 가을이면 장을 담그고, 겨울이면 땅을 뒤집으며. 그렇게.

“그래도 마냥 싫기만 했다면 지금까지 어찌 버텼을까.”

“……”

“농사일이 자식 키우는 것 같다고 네 할머니가 자주 그랬었는데, 너랑 네 동생 키워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힘들고 고생스럽고 어떨 때는 다 때려치울까 싶다가도, 예쁘게 영그는 거 보면 기특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농사지은 거 내 새끼들 입에 들어가는 거 보면 좋고, 그래.”

고향에 내려오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내 입으로 꺼낸 적 없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쉬이 털어놓을 수 없는 한탄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뛰쳐나가 놓고, 육십 년 세월에 비하면 티끌도 안 될 시련에 무너진 패잔병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알량한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결국 이렇게, 사춘기를 막 거치는 어린 딸을 대하듯 자식의 마음을 더듬어 보며, 이리도 조심스러운 위로를 건네는 것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미숙한 삶의 불안들로 변색되는 시간 틈에서 도망치고 싶었다는 것을. 그렇게 고추밭으로 숨어들어 왔다는 것을. 어릴 적 동생과 제 키만 한 고추 줄기 사이에서 숨바꼭질하던 때 마냥,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게 꼭꼭 숨고 싶었다는 것을. 그러고 보면, 그 시절 술래인 동생 대신 몸을 웅크리고 숨어있던 나를 찾아내는 것은 항상 엄마였다.

투박한 손이 등을 두드렸다. 불규칙한 엇박자였음에도, 어째서인지 마음이 놓였다.

 

흐리던 날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개어있었다. 엄마는 아침부터 내리쬐는 볕에 거두었던 고추를 마당 한 편에 다시 널었다. 자리를 펼치고 고추를 뒤집는 것을 옆에서 묵묵히 도왔다. 조금만 더 마르면 완전히 건조될 모양새들이었다. 아마 오늘 안에 거두어 가루를 낼 것이었다. 내일 돌아가는 내 보따리를 조금 더 무겁게 채우기 위한 양식이 될 터였다.

아침상을 준비하는 엄마의 옆에서 밑반찬을 덜고 수저를 놓았다. 밥솥이 김을 한 차례 내 뿜고 뜸이 들기를 기다리다, 쌀알을 살려 보기 좋게 밥을 펐다. 어제 저녁에 끓여 먹고 남았던 뭇국도 데웠다. 엄마는 잠시 마당을 보고 오겠다며 나서더니 손에 고추 몇 개를 들고 돌아왔다. “익은 고추 생 거로 안 먹어봤제?” 묻는 말에 국자로 국을 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익은 고추는 말려서 가루를 내고, 장을 담가 먹기만 했다. 엄마는 막 밭에서 따와 흙먼지가 묻은 그것들을 깨끗하게 씻어 하얀 대접에 담았다. 푸른 것이 아니라, 붉은 것들이었다.

“네 아버지가 익은 고추를 그렇게 좋아했다. 친정에서 익은 고추를 얻어다 상에 올리면 아주 잘 잡쉈어. 고추가 안 맵고 달다고, 맛있다고.”

“고추에서 단맛이 나?”

“고추가 익기 전에는 매워도, 익고 나면 덜큰하다.”

속는 셈 치고 빨갛게 익은 고추 하나를 손에 쥐었다. 한 입 베어 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아릿한 매운 내 끝에 정말로 단맛이 났다. 들이치는 바람에 흔들리며, 쏟아지는 비에 젖어가며, 작열하는 볕에 데어가며 그렇게 온몸을 붉힌 것이.

정말로, 단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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