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중환자실의 일상
정재현(분당서울대병원)
제가 좋아하는 말을 소개합니다. ‘Bassinet’, 베지넷은 아기 바구니라는 말입니다.육백그람, 1.3키로 되는 아기들이 29도의 온도와 60프로의 습도에서도 스스로의 몸을 따뜻하게 지켜낼 수 있는 1700그람 정도의 몸집이 되면, 비로소 인큐베이터에서 아기바구니로 나올 수 있습니다.
아기 바구니의 최고 장점은 단언컨대 아기를 만지고, 안아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베테랑 엄마들은 아기들을 사뿐히 안습니다. 눈을 맞추고, ‘알콩이’,‘건강이’ 같은 태명을 다정하게 부릅니다. 처음 엄마가 된 분들도 있습니다. 멸균가운을 입고 비닐장갑을 끼고 있느라 땀이 나도 더운 줄 모르고 포에 돌돌 싸매어져 있는 아가를 품에 안아보는 엄마들의 얼굴을, 저는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떨리는 마음에 ‘저는 내일 안아볼게요, 선생님..’하고 웃으며 순간을 미루는 분들도 있습니다. 미래 ‘딸 바보’ 아빠들의 탄생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엄마 아빠의 이런 표정과 몸짓을 저장해두고 아이가 자라나서 보여주면 이 위험천만한 세상살이가 거뜬해질 것만 같습니다. 엄마 아빠는 아기들 사진 찍기에 열성입니다. 면회시간에만 아기를 볼 수 있으니 아마 집에 가서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실 듯 합니다.
내 인생의 무게는 몇 그람 정도 될까?
아기 몸무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드렸는데요. 저는 아직 만 스물 넷뿐이 안된 제 나이에 비해,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버겁다는 어리광을 꽤나 자주 하게 됩니다. 삶과 죽음 앞에 나이가 어디 소용이 있겠는가 싶지만은, 나는 그냥 홍대, 연남동, 상수동 좋아하고 예쁜 옷 입고 데이트 하고 금요일 밤에 맥주 마시고 놀고 매주 수요일 저녁 8시에 배운다는 작사수업도 들어보고 싶은데……. 어린 생명들의 시작과 끝을 마주하는 곳에서 일하는 내가 갖는 인생의 무게는 몇 그람 정도 될까 저울질 해봅니다. 유독 책임감과 고민이 깊어지는 때는 아기의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때 입니다.
아기의 손톱도 길게 자라난다는 사실
‘DNR’(Do not resuscitate; 본인 또는 가족의 의사결정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는 것)을 받고 연명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아기를 한창 담당하고 있는 때였습니다. 아이의 몸에 침범한 완치 불가능한 바이러스 때문에, 아기는 하루하루 몸무게는 늘고 자라가지만 크게 호전되는 상태는 없이 그저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아이 상태 크게 달라진 것 없죠?”
매일 면회오는 아빠의 첫 질문도 늘 같았습니다. 담당 교수님은 아기를 떠나 보내는 것에도 두, 세달 가량의 시간은 필요할 것이라고 보호자에게 설명을 한 상태였습니다. 아빠가 오면, 저는 어제보다 아기 몸무게가 얼마나 늘었는지, 오늘은 분유 용량을 어떻게 먹고 있는 지와 같은, 다소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내용들을 단조롭게 설명했습니다. DNR 서명을 한 이후로는, 보호자가 그저 시기의 문제일 뿐 덤덤하게 아기를 떠나 보낼 준비가 되었겠지 짐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번은 아기 아버지가 아이 배꼽을 가리키며 제게 물었습니다.
“만약 아기가 크면 이 배꼽이 작아도 지는 건가요, 선생님?”
이 질문에 태연하게 대답하고 나서 되짚어 생각해보니 저의 생각이 완전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 아기 일로 마음 아파하는 엄마에게는 더 이상 아이 보러 오지 말고 정 떼라고 모질게 해두고선, 당신께서는 아이가 삐칠까 걱정돼 매일 1등으로 저녁면회를 왔던 모습, 1시간 동안 아이가 눈 뜨기만 기다리면서 혹시 이 아이가 살아서 자라나면 어떻게 될까를 그려봤을 그 분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아이가 아픈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그저 아이가 너무 힘들지 않고 편해졌으면 싶었기에 DNR 서명을 했을 뿐, 여전히 아이를 사랑하고 있는 그 마음이 애틋했습니다. 다음 번 면회에서는 엄마, 아빠가 함께 와서 원래는 주저했던 시술 중 하나를 다시 동의하고 싶다며 말을 꺼냈습니다. 주치의는 보호자의 마음이 왜 바뀌었나 갸우뚱거리고, ‘계속 보다 보니까 또 애가 예쁜가 봐요….’ 나직하게 저에게 말하고 갑니다.
아이는 살짝 몸을 건드려도 온 몸에 힘을 주면서 몸에 순환이 거의 멈추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산소수치 하락을 알리는 빨간 불의 알람소리에 심장이 철렁해 달려가는 것이 하루에도 여럿이었습니다. 또, 혹시 돌처럼 굳어지는 아이 모습을 엄마, 아빠가 보고서 충격을 받지 않을까 면회시간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엄마 아빠가 와서 아기를 만지작거리며 이름을 부를 때에는 아기가 통상 편안히 잘 있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모두가 신기해 했습니다.
그 예쁜 아기의, 제법 길게 자라난 손톱을 잘라주었습니다. 제가 자발적으로 먼저 확인해 긴 손톱을 잘라주는 ‘전인간호’를 하는 그릇이 못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엄마 아빠가 아기 손톱 긴 것을 보시고 당신들께서 직접 잘라주어도 되겠냐고 물으셔서 제가 잘라주겠노라고 대답한, 비자발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두 달 병동에 있다 보면 아기들의 작은 손톱도 제법 길게 자라난다는 것이 처음에는 신기했습니다. 조심조심하며 그 작은 손의, 더 작은 손톱을 다듬습니다. 어떤 날은 아기가 퇴원하는 꿈을 꾸었는데, “다시는 여기 돌아오지 말아, 진짜로!”하고 엉엉 울다가 잠에서 깼습니다.
새롭게 생긴 나의 습관들
혼잣말이 늘었습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처음 들어온 지 9개월 남짓 된 이후 새롭게 생긴 습관들 몇몇 중에 제일 비중 큰 습관입니다. 아기들도 제법 성격이 각자 다르고 눈을 뜨고 저를 쳐다보기 때문에(아마도), 아기들에게 말을 걸곤 합니다. 아기에게 ‘너무 귀여워’, ‘너 머리 숱이 되게 많다’, 혹은 ‘너 손가락 길다’와 같은 외적 모습뿐 아니라 ‘잘 잤어?’, ‘배고파?’, ‘숨을 왜 제대로 안 쉬어?’, 등의 질문도 하게 됩니다. 당연하게도, 아기는 말을 못하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결국 저는 이렇게 매일 혼자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게 됐습니다.
주기도문을 외우는 횟수도 늘었습니다. 그렇게 큰 신앙심과 믿음을 갖지는 못했지만, 기도라도 해서 큰 일은 못해내도 내 몫은 해내는 신규간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제발 실수하지 않고 정신차리게 해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며, 가끔은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방황의 늪에서도 때때로 허우적거립니다. 큰 재능이 없다고 여겨지는 일을 자고 일어나면 거의 매일 하고 있고, 또 해야’만’ 한다는 것마냥 못난 스물넷 청춘이 어디 있느냐고 곧잘 투덜댑니다. 한번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 중 한 분께 저의 무지함과 게으름으로 인해 야단맞고 얼얼한 기분으로 퇴근하니 서러움이 물 밀듯이 올라왔습니다. ‘저 선생님은 모두가 좋아하는 친절하고 똑똑한 사람이고, 신규간호사한테도 잘해주시는 분인데 나만 싫어하나 봐!’, 출구 없는 자책을 하며 서러워하면서도, 그 혼내신 이유가 참으로 사실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면서 살거야, 이 일은 아닌 거 같아.’라고 다짐하며 울다 자고 일어나니 결국 눈이 너무 부어서 동기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밖에 나가지도 못했던, 우습고도 미안한 날이었습니다.
당장은 이유를 알 수 없을지라도, 그 다음 삶의 장으로 넘어가는 일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끊임없는 위험에 처해야 하는 모든 직업에는 고귀한 무언가가 있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에 따르면, 이 일은 저의 무능함과는 대조되게 고귀한 직업인 듯 합니다. 멋진 간호사 선배들 제 시간 안에 일을 잘하는 것은 물론 응급상황에서도 일당 백을 해냅니다. 그 모습에 존경스럽다가도 역시 나는 그만둬야 할까 싶다가, 문득 처음 이 부서에 들어오게 됐을 때 엄마가 했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네 동생이 있었던 곳에 이제는 네가 가서 애들을 살리겠구나! ‘
제 동생은 신생아 중환자실에 20여일 남짓 있다가 곧 퇴원 예정이었는데, 첫눈처럼, 예상치 못한 때에 우리 곁에 살며시 왔다가 홀연히 하늘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이유 모를 돌연사였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했던 말을 회상했습니다. 이 말은 꽤 위로가 되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아이가 떠난 날이 돌아올 적마다 울었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살아났더라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아픔과 어려움이 있었을 거니,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이 아이를 먼저 데려가신 것일 거야.”
그러고 보니 저는 손톱을 잘라주고 로션을 발라주었던 아기가 어쩌면 살았을 수 도 있는 그 동생과 비슷하다고 여겼던 듯 합니다. 지금의 의학기술이라면 살려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살았더라면 그 동생의 모습이 꼭 지금 제가 돌본 아기와 같은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어 더 마음이 갔던 것 같습니다. 왜 동생이 죽었는지, 꼭 그런 일이 생겨야만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매 순간의 이유와 의미를 알아야만 한다는 피곤한 강박이 또 없겠지만 서도, 어떤 일은 너무 마음이 아프니까 이유를 되묻는 질문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는, 그 여린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엄마는 떠난 아이를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지만 더 이상 아기가 떠난 날을 기억하며 울지는 않습니다. 저보다 6살 어린, 온 집안의 사랑을 받는 귀엽고(때로 사나운) 막내 동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떠나 보낸 아기가 막내와 꼭 닮았다며 잃어버린 아이가 다시 돌아온 것만 같다고 했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던 밤 근무가 끝나고 한참을 자고 일어나서, 간호사가 되고 싶어하는 동생을 위해 ‘좋은 간호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심오한 질문들에 황송하게 답변을 적어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내가 잘하지 못함이 자명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이 병원에서 나를 내쫓지는 않고 있으니 저는 우선 계속 다녀봐야겠다, 마음을 돌립니다. 이 일이 너무 버거워서 때로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때에도 나를 미쁘게 여겨주는 사람들이 못내 고맙습니다. 한번 더 용기를 내볼 충분한 이유입니다. 또, 이렇게 뭐라도 쓰는 새벽이 있으니까 저는 좋습니다. 이곳이 좋아요. 추석용돈을 부모님께 드릴 수 있으니 좋아요. 아기들을 씻겨주고 발라주는 향기로운 베드타임 로션냄새가 저는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