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임종실
허수정 (명지병원 암통합치유센터)
대장암 말기의 엄마를 1인실로 모신 뒤부터 하나 밖에 없는 딸은 밥을 제대로 못 먹는다. ‘오늘은 뭘 좀 먹었냐’고 물으면 늘 힘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다. 간혹 좋아하는 빵과 커피를 사다 주면 ‘엄마한테 미안해서 먹기 힘들다’며 울먹이곤 했다. 어쩌다 아주 잠깐 컵라면을 밖에서 먹고 총알같이 들어 와 앉아 있곤 했다.
임종을 기다리는 1인실에서 가족들은 밥 먹는 것을 미안해한다. 미안한 것을 넘어 죄책감까지 든다고 한다. 사랑하는 엄마나 아빠가, 남편이나 아내가, 또는 내 아이, 형제가 죽어가고 있는데 배가 고프다고 짐승처럼 때마다 밥을 챙겨 먹는다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죄인처럼 말을 하곤 한다. 혹여 가족이 여러 명 계신 경우, 교대로라도 식당에서 밥을 드시고 오라고 하면 임종을 못 지킬까봐 또 불안해서 자리를 뜨지 못한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조차 불안해한다. 그래서 임종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가족도 지치고 없던 병도 생길 수 있다.
대한민국 병원의 1인실(임종실)은 대부분 방 하나에 화장실 하나이다. VIP 특실이 아닌 이상, 방 하나에 환자 침대와 보호자 소파 겸 침대, 테이블, 그리고 작은 냉장고와 TV가 있다. 그나마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은 집과 같은 분위기를 내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보기 좋은 소품들과 벽지와 커튼의 색들을 고려해 장식하고 있을 뿐, 대부분 비슷한 구조에 가구들이 배치되어있다. 호스피스 간호사라는 직업의식 때문인지 많은 병원의 1인실을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임종환자의 가족들이 밥 한 끼 편히 먹을 수 있는 임종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내가 한 곳의 임종실을 보기 전까지는.
봄볕이 따사로운 어느 날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을 견학하게 되었다. 병원은 오래된 건물로 외관은 많이 낡았지만, 호스피스 병동은 몇 년 전에 리모델링을 해서 아주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 시설인증 기준에 맞추어 1인실과 임종실이 있었는데 1인실은 타 병원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구조에 시설물들이 있었지만, 임종실의 1인실은 조금 달랐다.
칸막이 하나를 세웠을 뿐인데 햇살이 잘 비치는 임종실은 쾌적함과 안정감으로 아늑했다. 물론 그곳도 내가 상상한 만큼의 완벽한 임종실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가족들이 환자의 임종을 지키지 못할까봐 불안해서 밥을 먹지 못하거나 밥을 먹으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런 곳이 한 군데라도 있다는 것이 너무나 착한 발상이라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칸막이는 중간 문처럼 환자 침대와 테이블을 나누어 놓았다. 1인실이 마치 두 개의 방처럼 보였다. 산소부착 벽면의 안쪽은 침대와 옆의 소파가 있고, 미닫이식 중간 문 역할을 하는 칸막이 입구 쪽은 4인용 테이블과 의자, 작은 냉장고가 있었다. 칸막이의 상부는 유리, 하부는 나무로 된 구조였다. 앉은 채로 살짝만 고개를 돌리면 환자의 침대가 보였다. 4인용 테이블과 의자는 식사와 서류작업 등이 가능했다. 미닫이문의 칸막이였기에 냄새도 차단되었다. 병원들이 처음부터 임종실의 특수성을 고려해 건축설계를 했다면 임종환자와 사별 전 가족의 고통이 한결 덜어졌을 것이다. 현재의 1인실이나 임종실을 보면 건축설계자는 가족 중 환자의 임종을 간병한 적이 없거나, 이런 임종실에 관심이 아예 없거나, 대부분은 병원이 시키는 대로 만들었을 것이다.
환자의 투병과 임종을 지키는 시간은 가족에게 고뇌의 시간이며 체력전이다. 말기암 환자의 경우 진단과 동시에 투병기간이 짧으면 환자와 가족들 모두 충격과 분노, 억울한 임종이 된다. 반대로 투병기간이 길어져 간병과 경제적인 어려움, 가족갈등이 발생하면 임종이 빨리 진행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특히 죽음을 수용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환자 옆에서 음식을 씹는 소리는 잔인한 소리가 될 수 있다. 이유는 임종이 가깝더라도 청각기능은 마지막까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도 환자의 마음을 알기에 그저 한 끼를 급히 때워버린다. 그리고 임종실은 환자의 징후를 알리는 모니터의 경고음이 수시로 울리기도 하며, 환자의 몸에 삽입된 여러 관에서 나오는 냄새와 암성 분비물 냄새로 악취가 발생하기도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 음식은 김치 등 발효음식과 마늘을 사용하는 음식들이 많아 음식 냄새가 더 심한 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열악한 임종실에서 밥을 먹는 이유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과 간병을 위해서이다.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이기 때문이다. 환자를 위해서라도 돌보는 가족에게는 잘 챙겨 드셔야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요즘은 핵가족과 이혼부부가 많다보니 부모, 부부, 자녀의 죽음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바로 옆의 휴게실이나 배선실, 또는 5분이면 내려갈 식당도 불안감에 가기를 망설인다.
우리나라는 부정적인 죽음문화로 죽음을 오랫동안 회피해 왔기에 임종실의 이러한 문제는 생각할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웰빙, 힐링, 웰다잉 바람이 불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넘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디서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지만 여전히 호스피스전문기관도 임종실의 분위기만 신경을 쓰지 가족을 위한 실제적 기능들은 두루뭉술한 상태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고 시범사업도 시작되었지만, 아직은 품위 있는 임종간호의 질과 임종과정의 장소로써 임종실 환경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이 아닌 이상 ‘임종실’이라는 이름은 병원에 없다. 대부분 1인실이 임종실의 역할로 대체된다. 사실은 이름보다는 온전한 기능으로서의 임종실이 몹시 필요한 때이다. 내가 존경하는 건축설계자 분들이 시작해 주신다면 좋겠다. 건축설계가 종합예술인 것처럼 한 사람의 삶과 죽음도 종합예술로 만들어진 임종실에서 마지막 생을 완성해 드렸으면 좋겠다. 아니 꼭 그분들이 아니더라도 건강한 삶과 품위 있는 죽음을 희망하는 전 국민의 소망을 담아 우리 간호사들과 전 국민이 임종문화환경 개선에 동참하면 어떨까. 그래서 쾌적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환자는 품위 있는 임종을 맞이하고, 가족들은 배고픔 없이 건강하게 환자와 따뜻한 이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따뜻한 인사, “밥 먹었니?” “밥 한번 먹자!” 라는 말에는 많은 함축적 의미가 담겨있듯이 임종실에서도 힘들지만 가족들이 서로 위로하는 따뜻한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가신 대장암 말기 치매 어르신의 손녀딸이 생각난다.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서 어릴 적부터 자신을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다른 것은 다 잊어 버리셨는데 한 가지 말은 되풀이 하신다며 눈물을 연신 닦았다. 자기만 보면, “밥 먹었어?” 라고 자꾸 묻는다는 것이다. 병실에 손녀딸과 함께 들어서자 정말 할머님은 아주 따뜻하고 친밀한 목소리로, “밥 먹었어?”라며 몇 번을 되물으며 밥을 먹으라고 하셨다. 자그마한 체구에 말라서 겨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였지만 손녀딸을 사랑하는 애정이 ‘밥’이라는 단어에 한가득 담겨 있었다. 6.25를 겪으며 모진 가난 속에서도 자녀들을 키워내신 할머니에게는 ‘밥’이라는 단어는 생존이자 뿌듯한 행복이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유언 같은 마지막 말,
“밥 먹었어?”
손녀딸이 할머니의 곧 다가올 임종을 지켜야 할 때 지금의 임종실에서 과연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할머니의 존엄성이 존중 받고 손녀딸과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는 임종실이다. 짧게는 1일에서 3일, 길게는 일주일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미리 1인실에 들어가 환자와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우리의 1인실이 비용대비 효율성만 논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수준 높은 웰다잉 임종실로서의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부디 다음 세대가 오기 전, 대한민국 손자손녀들은 개선된 쾌적한 임종실에서 할머니의 바람처럼 상실의 슬픔을 잘 치러내도록 밥은 굶지 말기를 희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