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제마부대 간호장교들의 편지
흙먼지 속에 핀 아름다운 사랑
[편집국] 제마부대간호장교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3-08-14 오전 09:38:08

낡은 예배당 건물에 야전용 간이침대를 펴고 물품을 꺼내자마자 다급한 소리와 함께 총상환자 세 명이 실려 옵니다. 누군가 주유소에 총을 난사했다고 하네요. 바지가 온통 피로 물들었지만 다행히 뼈나 혈관에는 이상이 없어 보입니다. 상처를 세척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한쪽에서는 또 다른 총상환자를 간호하는 손길이 바쁩니다.
차도르를 두른 여인이 힘겹게 간이침대에 올라 눕습니다. 의무병을 내보내고 군의관과 간호장교만이 자리한 가운데 몇 번을 망설인 끝에 가슴을 보여줍니다. 한쪽 가슴이 염증으로 얼마나 부어 올랐는지.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그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8년을 살았다고 하네요.
꼬마아이가 다리를 접니다. 자세히 보니 발목 부근 혈관에 언제 꽂았는지도 모를 정맥주사 라인이 흙에 뒤범벅이 돼 있습니다. 아이는 통증과 불편함으로 절름발이 아닌 절름발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주사바늘을 빼주면서 얼마나 마음이 저려오는지. 주사 바늘을 빼고도 아이는 발을 접니다. 제가 손짓, 발짓을 써서 똑바로 걸으라고 말을 하고 난 후에야 왼쪽 오른쪽 바른 걸음을 걷기 시작합니다.
여기는 이라크 나시리야입니다. 이곳에 오기 전 쿠웨이트에 잠시 머물며 적응 기간을 가졌습니다. 흙먼지가 가득한 침대에 몸을 눕히고 뜨거운 열기와 냄새가 가득한 재래식 간이화장실을 사용하면서 감히 "적응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나시리야에서는 바람만 조금 불면 풀썩거리던 흙먼지가 먼지폭풍이 되어 우리를 괴롭히며, 드럼통을 자른 후 그 위에 합판으로 대어놓은 변기는 한국에 있었다면 참으면 참았지 차마 사용하지 못할 수준입니다.
그래도 사람이 못사는 법은 없나 봅니다. 어떻게 그렇게 적응력이 좋은지, 어쩌면 그렇게들 재주가 좋은 지 뚝딱뚝딱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텐트 밑에 합판도 깔고, 화장실도 만들고, 앉아 있을 만한 근사한 의자도 만들어졌습니다.
이곳에 와서 병원이 개원하기까지 이라크 현지 주민을 위한 대민 순회의료지원활동을 펼쳤습니다. 아침 7시에 나가 200여명의 환자를 보고 오면 오후 두 시가 넘어가기 십상입니다. 원래 오전에만 의료지원을 하고 돌아와서 점심을 먹는 걸로 계획돼 있지만 밀려드는 환자들을 돌보다보면 어느새 점심 생각은 잊어버리고 만답니다. 50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전투복과 방탄모를 착용하고 방탄조끼까지 입은 채 의료지원을 다녀오면 옷은 물에 들어갔다 나온 듯 땀으로 푹 젖고 오후 내내 녹초가 될 만큼 지쳐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들에겐 가장 뜻깊고 보람된 일입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왔을 때는 하루가 흐뭇하고 스스로가 대견스럽게 느껴진답니다.
멀리 타국에서 낯선 이라크 아이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듯 한국의 간호사들도 여러 모양으로 헌신적인 간호를 베풀고 있겠지요? 사람을 돌보는 일을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지내온 것에 보람과 행복을 느낍니다. 대민 순회의료지원 때 봤던 유방염이 걸린 여인의 눈물 젖은 눈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심한 고통에도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던 화상 입은 아기의 커다랗고 맑기만 한 눈동자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니 지우면 안 되겠지요. 마음에 새기고 간호활동을 해야겠지요. 우리는 이곳에 그들을 간호하고 사랑을 전하기 위해 와있으니까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내 아이가 자라서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겨준다면 6개월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의 고단함도 달기만 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 계신 가족, 간호계 선후배님들, 친구들 모두 모두 정말 그립습니다. 작으나마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무사히 돌아가겠습니다.
(제마부대 간호장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