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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간호사] 정미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3-04-24 오후 13:56:23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좋아하던 국어선생님을 뒤로한 채 눈물의 졸업식을 치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자주 찾아 뵙지는 못하더라도 1년에 한번 스승의 날 만큼은 꼭 찾아 뵙겠노라고 다짐했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지금까지 찾아 뵙는 걸 미루어왔다. 간호사가 되어 병원에 들어와 적응하는 힘든 시간동안 예전의 꿈 많았던 그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좋아하던 선생님 책상에 남몰래 편지며 꽃들을 가져다 놓던 기억들. 아마 사춘기 시절 선생님을 좋아해 보았던 사람들이라면 이런 아련한 기억으로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고등학생 시절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국어선생님. 이제는 얼굴에 하나 둘 주름살이 늘고 옛날의 멋진 모습은 세월의 뒤로 가려졌겠지만 내게 힘이 되어 주셨던 선생님의 기억은 생생하다.

　돌이켜보면 난 유난히도 국어 시간이 좋았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국어보다는 국어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햇살이 쏟아지는 교실에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들려주시던 시도 좋았고, 쓸쓸히 낙엽이 쏟아지는 창 밖 풍경을 배경 삼아 읽어 주시던 수필도 좋았다.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겐 어쩌면 선생님의 그 수업 방식은 대학 입학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 보니 선생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했던 건 어느 대학에 가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아름다운 시를 느낄 줄 아는 행복이었던 것이다.

　간혹 웃음소리마저 싱그러운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버스를 탈 때가 있다. 간간히 들려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요즘은 선생님들이 설 자리가 많이 없으시겠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을 잘 찍어주시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느끼기엔 너무나 여유가 없어져 버린 듯 싶었다. 사랑의 회초리를 맞으며 선생님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쓴 미소가 입가에 퍼진다.

　소중한 사람은 떠난 뒤에 더욱 그 소중함을 안다고 했던가? 인생의 조언자가 될 수 있는 스승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배워야 할 것이다.

정　　미(삼성서울병원 간호사)